동물원에서 태어나 숲으로...달팽이의 멸종 ‘역주행’

'그레이터 버뮤다 달팽이'는 북대서양의 섬나라 버뮤다에만 서식하는 고유종이다. 버뮤다는 약 200개의 섬으로 이뤄진 군도로, 전체 육지 면적은 54㎢ 남짓에 불과하다. 400여 년 동안 외부에서 다양한 동식물이 유입됐고, 그 과정에서 서식지 구조와 먹이망은 크게 달라졌다.
포식성 외래종 달팽이와 육식성 편형동물의 유입은 토착 달팽이들에게 특히 치명적이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그레이터 버뮤다 달팽이'는 20세기 후반 급격히 줄었고, 결국 자연에서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다.
2014년 도심 골목에서 발견된 개체들은 발견 당시 200마리도 되지 않았다. 이후 2017년에는 버뮤다 그레이트 사운드 해역의 작은 섬 '포츠 아일랜드(Port's Island)'에서 또 다른 잔존 개체군이 확인됐다. 이 지역은 외래 포식종인 로지 울프 달팽이(Euglandina rosea)의 침입을 비교적 피한 곳이었다. 모두 우연에 가까운 조건 속에서 살아남은 셈이다.


연구진은 야생에 남아 있던 포츠 아일랜드 개체군을 대상으로 서식지 이용 방식에 대한 조사를 병행했다. 2021년 국제보존저널 오릭스(Oryx)에 공개된 연구에 따르면 '그레이터 버뮤다 달팽이'는 토착 식물과 외래 식물 사이에 뚜렷한 선호를 보이지 않았지만, 호주산 소나무(카수아리나, Casuarina equisetifolia) 아래에 쌓인 마른 침엽 낙엽층은 뚜렷하게 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방사 지점을 선택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됐다.

이 같은 연구-증식-방사 과정을 거쳐, 2019~2020년을 중심으로 3만 마리 넘는 달팽이가 버뮤다 전역 9곳에 방사됐다. 방사지는 본섬뿐 아니라 외곽 섬 폐채석장, 돌담, 암석 더미 등 사람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 공간을 포함했다. 식생 조건도 토착 야자 숲부터 외래 활엽수가 우점한 해안 숲, 복원이 진행 중인 혼합 숲까지 다양했다.
이후 모니터링 결과, 현재 최소 여섯 곳에서 달팽이 개체군이 유지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단순 생존이 아니라 야생에서 번식하는 등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진은 개체군이 자립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이 내용은 최근 오릭스(Oryx)에 실릴 예정인 개체군 평가 논문에 담겼다.
이 평가는 지난 7일 '리버스 더 레드 데이(Reverse the Red Day)'를 계기로 공개됐다. 'Reverse the Red'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산하 전문가 그룹과 각국 정부, 연구기관, 동물원, 보전단체들이 함께하는 국제 보전 운동이다. 멸종위기종 수를 나열하는 데서 나아가, 실제로 개체 수 감소를 멈추고 회복 단계로 전환한 사례를 공유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레이터 버뮤다 달팽이'는 이번 보전 개입을 통해 야생 자립이 확인된 사례로 소개됐다.

달팽이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생물이지만, 숲에서는 낙엽과 식물 잔해를 분해해 영양분 순환을 돕고,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는 역할을 한다. 토착종이 사라지면 그곳 생태계 전반 구조가 흔들린다.
현재 '그레이터 버뮤다 달팽이'는 버뮤다 내 여러 방사지에서 개체군이 유지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번식과 세대교체도 확인되고 있다. 연구진은 기존 방사 지역을 중심으로 개체 수 변화와 서식 범위를 모니터링하고, 서식지 조건 변화나 침입종 영향 여부를 점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