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 귀찮아” 무기력의 비밀, 뇌 안에 의욕 차단 ‘스위치’ 있다
뇌 깊숙한 곳 ‘귀차니즘’ 회로 규명
우울증 등 치료에 새로운 실마리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일을 미루지 않고 시작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는 말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금언도 비슷한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건 알면서도 의욕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의학적으론 이를 무의욕증(무기력증, avolition)이라고 부른다. 이런 증상은 특히 조현병이나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심하게 나타난다.
주어진 일이나 목표 앞에서 첫걸음을 떼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어렵게 느껴져서일 수도 있고, 두려워서 일수도 있다. 일을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팍팍 올라와 엄두가 안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고 안하고는 의지력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우리 뇌는 그 일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평가한다. 만약 노력이 너무 많이 든다고 판단하면 일할 동기가 떨어지게 된다. 뇌가 어떤 판단을 바탕으로 행동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
일본 교토대 과학자들이 원숭이 실험을 통해 동기 부여를 억제하는 뇌 회로를 발견해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화학유전학이라는 첨단 유전자 기술을 이용해 이 뇌 회로를 일시적으로 차단하자 원숭이의 목표 지향적 행동이 회복됐다. 연구진은 “뇌 회로를 억제하기 전과 후의 행동이 극적으로 달라졌다”고 밝혔다.
이전의 연구들은 동기 부여나 보상 처리에 관여하는 뇌 영역인 복측 선조체(VS: ventral striatum)와 복측 창백핵(VP: entral pallidum)을 연결하는 신경 회로를 무의욕증 행동을 유발하는 발원지 후보로 지목했다. 이 회로는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 아래쪽, 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 뇌 회로의 어느 부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예컨대 과거 연구에선 이곳을 자극한 결과 동기 부여뿐 아니라 불안감도 증폭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우울증에서 볼 수 있는 동기 결핍의 발원지
한 과제에서는 과제를 마치면 원숭이에게 물을 보상으로 줬다. 다른 과제에서는 보상과 함께 얼굴에 공기를 분사하는 벌칙을 줬다. 각 과제에서 원숭이들은 보상-처벌이 나타날 때까지 화면 중앙의 한 지점에 시선을 고정해야 했다. 원숭이들이 과제를 시작하지 못하는 빈도를 측정해 동기 부여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상대로였다. 원숭이들은 처벌 가능성이 있을 때는 과제를 시작하는 걸 망설였다. 하지만 연구진이 유전자를 이용해 복측선조체에서 복측창백핵으로 전달되는 신호를 일시 차단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보상만 주어지는 실험에서는 원숭이 행동에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공기 분사라는 처벌을 함께 주는 과제 실험에선 과제를 시작하려는 의지가 크게 높아졌다. 동기 부여를 차단하는 뇌의 ‘스위치’를 찾아낸 셈이다.
연구진은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원숭이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자세히 살펴봤다. 스트레스가 많은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은 복측선조체의 활동이 증가했다. 이는 이 영역이 스트레스 상황을 인식한다는 걸 시사한다. 반면 복측창백핵의 활동은 원숭이들의 과제 수행 의지가 약해지는 것과 함께 약해졌다. 이는 두 영역이 다른 역할을 한다는 걸 뜻한다. 둘을 종합하면 복측선조체가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감지하고 복측창백핵의 활성화를 막아 행동을 억제하는 경로가 드러난다. 연구를 이끈 아메모리 겐이치 교수(신경과학)는 “복측창백핵이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동기 결핍이나 무감정의 중심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강제로 끌어올리기보단 사회적 지원을
그러나 우리 뇌가 동기 차단 회로를 만든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차단 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일을 과도하게 해 몸과 마음이 탈진할 수 있다. 반면 차단 장치가 과도하게 작동하면 의욕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아메모리 교수는 “동기 차단 장치를 지나치게 약화시키면 위험한 행동이나 과도한 위험 감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동기 부여를 억제하는 기능에 손을 대려면 신중한 검증과 윤리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심한 생활 스트레스로 번아웃 증상까지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현대 사회에서 동기 부여는 어느 정도까지 필요할까? 연구진은 “동기 부여를 강제로 끌어올리려 하기보다는 스트레스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하려면 사회가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지에 사회적 논의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논문 정보
Motivation under aversive conditions is regulated by a striatopallidal pathway in primates.
DOI: 10.1016/j.cub.2025.12.035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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