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은 아즈텍서 카카오·물·고추 섞은‘귀족 음료’… 유럽으로 전래뒤 설탕 넣어 달달하게 만들어 대중화[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2026. 2. 1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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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초콜릿
‘아즈텍 전통 방식’으로 초콜릿을 제작하는 이탈리아 모디카 초콜릿 가게. 정주영 촬영

이탈리아 시칠리아 모디카의 좁은 골목길을 한참 헤매고 나서야 그 유명하다는 초콜릿 가게에 도착했다. 1일 1초콜릿을 고수하는 애호가로 “아즈텍 전통 방식을 유지한다”는 모디카 초콜릿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첫입에서 느껴진 것은 당혹감이었다. 입안에서 사각사각 씹히는 설탕 결정.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현대 초콜릿에 익숙해진 혀에는 거친 식감이 낯설었다.

“왜 유명한 거지?”

의아함을 품고 초콜릿의 역사를 파고들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아즈텍 시대의 초콜릿은 지금처럼 달콤한 간식이 아니었다. 카카오를 갈아 물과 섞고, 거기에 고추를 넣은 매운 음료였으며, 신성한 의식용 음료이자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초콜릿이 설탕을 만나 ‘달콤함’을 얻은 것은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간 이후의 일이다.

모디카 초콜릿의 거친 식감은 바로 이 전환기의 흔적이다. 저온에서 설탕과 카카오를 섞어 설탕이 완전히 녹지 않은 채 굳힌 이 초콜릿은 공업화 이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실망스러웠던 그 ‘씹히는 설탕’은 사실 초콜릿이 귀족의 음료에서 대중의 과자로 변모하던 순간을 붙잡아 둔 화석이었다.

19세기에 개발된 공정으로 만들어진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질감은, 이제 초콜릿의 필수조건처럼 여겨진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초콜릿은 사랑과 호감, 배려 같은 감정을 가장 무해하게 전달하기에 최적화되었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이 선택된 이유다. 하지만 이 부드러움의 이면에는 엄청난 양의 설탕이 숨어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밀크초콜릿의 설탕 함량은 평균 50%에 달한다.

초콜릿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탄산음료, 시리얼, 요구르트, 심지어 식빵까지. 현대인의 식탁은 온통 첨가당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하루 첨가당 섭취량을 총열량의 10% 이내로 제한할 것을 권고했지만, 한국인의 평균 섭취량은 이미 이 기준을 넘어섰다.

지난 1월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설탕 부담금’ 제도 도입을 언급하면서 가공식품 속 설탕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멕시코,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시행 중인 설탕 부담금은 단순히 세수를 늘리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 비만, 당뇨병 등 설탕 과잉 섭취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 식품 산업의 변화를 유도하려는 정책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식품업계는 소비자 선택권 침해를 주장하고, 경제학자들은 저소득층에 더 큰 부담이 되는 역진세 문제를 지적한다. 설탕 부담금 제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뜻이다. 영양교육, 건강한 식품 접근성 개선, 식품표시제 강화 등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달콤함에 대한 선호는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문화이자 산업이며, 공중보건의 문제다. 설탕 자체는 수천 년간 인류가 소비해 온 천연식품이다. 사탕수수를 씹고 꿀을 채취하던 시절, 설탕은 귀했고 사치재에 가까웠다. 문제가 된 것은 19세기 이후 설탕의 공업화와, 20세기 가공식품 산업의 폭발적 성장이다. 설탕은 이제 단순한 감미료를 넘어 식품의 보존성을 높이고, 중독적 소비를 유도하는 산업 도구가 됐다.

모디카에서 그 거친 초콜릿을 씹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건 ‘씹히는 설탕’의 식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 본연의 맛을 느끼는 감각, 적당히 먹는 절제, 특별한 순간을 위해 달콤함을 아껴두던 문화까지. 부드럽고 달콤한 초콜릿이 일상이 되면서, 우리는 단맛에 무뎌졌고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됐다.

설탕은 죄가 없다. 문제는 우리가 설탕을 대하는 태도와, 그것을 무제한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초콜릿을 제한 없이 흡입하는 일상을 되돌아보며, 이번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이 꼭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한 스푼 더 -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으로 사랑 고백?

밸런타인데이의 기원은 3세기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초콜릿을 주는 문화는 19세기 영국 초콜릿 제조업체들이 만들어냈다.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 고백으로 초콜릿을 준다’는 공식은 1960년대 일본 제과업체의 마케팅에서 탄생해 1980년대 한국으로 유입됐다. 결국 “사랑 고백 = 초콜릿”은 제과업계의 달콤한 기획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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