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시작해 '뷰티·푸드'로 완성되는 세계관[K-빅사이클]

최수진 2026. 2. 10.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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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뷰티·푸드 등
3개 산업 합산 수출액 약 330억달러 추산
K뷰티 강점, 새로운 카테고리 만드는 혁신
마스크팩부터 유·무기 복합 선크림 개발까지

[커버스토리: 빅사이클 올라탄 한국의 주력산업]

2003년 당시 한국콜마 실험실 모습. (사진=한국콜마)


K-아이돌은 글로벌 시장에서 주류로 인정받고 있다. 블랙핑크 로제와 신인 걸그룹 캣츠아이는 그래미 어워즈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한국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 최초로 그래미상 수상에 성공했다. 

문화 경쟁력은 뷰티와 식품으로 뻗어나갔다. 한국인이 자기 전에 무슨 보습크림을 바르는지 서울에서 가장 유행하는 음식은 무엇인지는 전 세계 소비 선택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 사람들은 프랑스 화장품 대신 ‘메이드 인 코리아’를 선택하고 ‘라멘’이 아닌 ‘라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이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는 콘텐츠가 됐다는 방증이다. 

콘텐츠·뷰티·푸드 등 3개 산업의 합산 수출액은 약 330억 달러(48조원)로 추산된다. 한국을 떠받드는 반도체(1734억 달러), 자동차(720억 달러), 석유제품(455억 달러)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지금의 패션·뷰티를 글로벌화한 원동력은 혁신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반응을 분석하고 고객 니즈를 파악해 이전에 없던 제품을 시장에 선보였다.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와 K푸드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뷰티와 식품은 코스피 5000 시대 새로운 주인공이 됐다. 

 ◆ K뷰티, 세상에 없던 제품·세상에 없던 가격

K뷰티가 글로벌 화장품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K뷰티 수출액은 114억 달러(약 16조6000억원)를 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 1월에는 8억4451만 달러(잠정치)를 기록하며 전년 동월 대비 33% 늘었다. 특히 미국 수출이 47% 증가했다. 관세 부과로 인한 수출 단가 하락을 고려해도 K뷰티의 성장세는 견고하다는 의미다. 

세계 최대 화장품 소비 시장인 미국에서 한국은 프랑스를 제치고 해외 국가 중 판매 1위국이 됐다. 미국 수입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다. 글로벌 화장품 수출 시장에서는 프랑스, 미국에 이어 세계 3대 화장품 수출 국가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 화장품이 처음부터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다. 2010년 수출 규모는 약 6900억원에 불과했다. 2012년 처음으로 10억 달러(1조4500억원)를 돌파했지만 100억 달러(14조5000억원)를 넘기기까지 12년이 더 걸렸다. 

K뷰티 강점은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드는 기술’이다.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한국 기업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었다. 주요 기업들이 연이어 혁신 제품을 선보이며 기존에 없던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그 결과 글로벌 뷰티 거점은 한국이 됐다. 

그 시작은 시트 마스크(마스크팩)다. 부직포에 스킨을 적신 형태의 마스크팩은 1990년대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스크팩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증정품’ 형태에 머물렀다. 대부분 고가였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 기업들은 피부 온도에 반응하여 녹아 흡수되는 하이드로겔 콜라겐 등과 같은 고기능성 성분을 추가해 마스크팩을 단일 제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제닉, 메디힐, 미샤 등 주요 화장품 브랜드에서 다양한 마스크팩을 내놓았으며 1000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에 ‘1일1팩’ 트렌드까지 생겼다. 한국의 성공한 모든 산업에 공통되는 공식이 여기서도 등장한다. “최초는 아니지만 다른 제품의 장점을 흡수해 가장 경쟁력 있는 제품을 내놓는 것.”

비비(BB)크림도 한국에서 시작된 유행 제품이다. 1950년대 독일 피부과 의사 크리스틴 슈라멕이 만든 연고 ‘블레미시 밤(Blemish Balm)’을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메이크업 제품으로 만들어 대중화시킨 것은 한국이다. 2006년 푸른화장품, 한스킨, 차앤박 등이 연이어 BB크림을 출시하며 트렌드를 선도했다. 이듬해 나온 미샤 BB크림은 출시 3개월 만에 10만 개를 판매했고 당시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기념품이 될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2008년 한국에서 탄생한 ‘쿠션’도 마찬가지다. 간편하게 찍어 누르는 방식의 파운데이션은 전 세계 여성들의 화장법까지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1위 화장품 기업 로레알, 미국 최대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 등도 아모레를 따라 쿠션 제품을 출시했다. 

선크림 혁신은 한국콜마가 주도하고 있다. 한국콜마는 지난해 2월 세계 최초로 무기자차와 유기자차 성분을 완벽히 결합한 복합자외선차단제(복합자차) 안정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자외선 차단력이 뛰어난 무기자차의 장점과 발림성이 좋은 유기자차의 장점을 하나로 모은 하이브리드 기술이다. 한국콜마는 2022년 업계 최초로 ‘UV테크이노베이션연구소’를 신설했으며, 70여건의 자외선차단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혁신은 화장품에서 그치지 않았다. 기술을 접목한 홈케어 기기를 대중화한 것도 한국이다. 2025년 뷰티업계 시가총액 1위로 올라선 에이피알은 피부과나 피부관리숍을 가지 않고 집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20만원대 뷰티기기를 처음 선보였다.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글로벌 누적 400만 대를 판매했다. 헤일리 비버, 카일리 제너 등 미국 유명 인플루언서들도 에이피알 제품을 SNS에 적극적으로 인증하고 있다. 에이피알은 K화장품 대장주로 올라섰다. 최근 1년 에이피알 주가는 485.4% 뛰었다. 4만원대 주가는 26만원을 넘었다. 

이가영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K뷰티의 중요한 특징은 지금 이순간에도 스타 플레이어가 새롭게 탄생 중이라는 것”이라며 “새로이 등장하는 혜성은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비상장사일 가능성이 높다. 산업 성장의 주된 동력은 새로 등장하는 브랜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슈퍼사이클에 들어선 K뷰티의 성장세는 당분간 꺾이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K팝, K드라마, K무비와의 시너지효과에 더해 국내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 현지 맞춤 전략으로 일상 파고든 K푸드

“차로 30분을 운전해 불닭볶음면을 사왔어요.”

미국 유명 여성 래퍼 카디 비(Cardi B)의 발언이다. 2024년 틱톡을 통해 직접 조리해 먹어보는 3분짜리 영상을 게재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477만 개의 좋아요와 2만8000개의 댓글이 달렸다. 2017년 ‘매운맛 챌린지’로 관심을 받은 불닭볶음면이 단순 유행에 끝나지 않고 미국에서 스테디셀러가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K푸드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인 104억1000만 달러(약 15조원)를 돌파했다. 삼양식품은 같은 기간 2조3518억원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첫 2조원 돌파다. 매출의 80%가 수출로 발생하는 점을 고려해 단순 계산하면 K푸드 수출에서 차지하는 삼양식품 비중은 12.5%다. 해외로 나간 식품 10개 가운데 1개는 불닭볶음면인 셈이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시장에서는 불닭볶음면이 코카콜라, 맥도날드, 스타벅스와 같은 아이콘으로 올라섰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불닭 제품의 글로벌 누적 판매량은 90만 개에 이른다. 글로벌 투자은행(IB) CLSA은 삼양식품의 미국 라면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12%에서 2028년 23%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가는 5년 새 1098% 상승했다. 2021년 9만원대에서 시작해 최근 110만원에 안착했다. 지난해 9월 150만원을 돌파했지만 미국의 관세 부과 영향으로 하락했다. 여기에 농심, 오리온도 증시를 견인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1년 새 각각 19.1%, 22.2% 올랐다. 


밴드왜건 효과(특정 상품에 대한 어떤 사람의 수요가 다른 사람들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 현상)로 시작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장기화될 수 있었던 것은 콘텐츠의 힘이다. BTS와 블랙핑크의 한식 먹방(먹는 영상)을 시작으로 ‘기생충’, ‘오징어 게임’, ‘케데헌’, ‘흑백요리사’ 등이 연이어 성공하자 K푸드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다. 미국 뉴욕 중심 기사식당에는 오픈런(오픈 전부터 줄을 서는 모습)이 생기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오픈한 대형쇼핑몰 ‘자갈치’에는 한식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라면만 인기 있는 것도 아니다. CJ제일제당이 주도하는 만두도 인기다. 리서치전문업체 스태티스타는 “한국 식품의 수출 가치가 높아졌다”며 “한국의 CJ제일제당 비비고 만두의 매출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의 지난해 식품 매출 11조5000억원(추정) 가운데 해외 비중은 51.2%다. 

CJ제일제당은 현지화를 통해 만두를 주력 상품으로 키워냈다. 미국에서는 닭고기, 소고기, 고수 등을 주로 활용하고 중국에서는 옥수수, 배추 등을 사용했다. 러시아에서는 고기가 많이 들어간 만두를 선보였다. 그 결과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는 미주, 유럽, 오세아니아 등 서구권을 중심으로 지속 성장하고 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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