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영 의원 “김정은 위원장이 혹시 이 기사를 본다면”

남북한 정상이 만나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항구적인 평화’를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년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서다. 역대 정상회담 다섯 번 중 그해에만 세 차례 만남(4월27일·5월26일·9월18~20일)이 있었다. 종전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듯했으나, 2019년 2월27~28일에 열린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이른바 ‘하노이 노딜’) 짧고 강렬했던 한반도 평화 국면은 꿈처럼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문재인 정부 시기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모든 남북 간 실무협상에 참여했다. 남북 정상회담에도 배석했다. 최근 펴낸 저서 〈판문점 프로젝트〉를 ‘징비록(懲毖錄)’에 빗대며 당시의 공과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이재명 정부뿐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하노이 노딜의 실패를 되돌아보라”는 과감한 조언을 건넸다. 마지막 남북 정상회담으로부터 8년이 지난 2026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더욱 어지럽고 예측 불가능해졌다. 이 혼돈의 한복판에서 남북이 다시 만나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1월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윤건영 의원을 만났다.
문재인 정부 시기 남북 관계에서 가장 뼈아픈 실책은 뭐라고 생각하나.
잘못한 거라기보다,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타임머신이 있으면 바로 2018년 9월18~20일 평양 정상회담 직후로 돌아가고 싶다. 그 전까지와 달리, 회담이 끝나면서부터 뭔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10월1일 북측과 만나 약속되어 있던 서울 정상회담 일정을 합의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북한 국방상이 갑자기 “못 오겠다”고 얘기하더라. 사실 그 당시에 (남북 양쪽에) 미국 측의 압력이 있었다. 단적인 예가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내게 만나자고 하거나, 한·미 간에 워킹그룹을 만들자는 식으로 하나하나 걸고넘어지기 시작한 거다. 2018년 11월 북측 김 아무개 실장과의 만남에서 “조·미(朝美) 관계 속도에 북남 관계 속도를 맞추라는 것이 미국의 요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남북 협상 과정에서도 그런 공기가 느껴졌다. 결국 2018년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이 무산되었다. 그때 서울 정상회담을 미루지 말자고 김정은 위원장을 더 적극적으로 설득했어야 했다. 역사적으로나 그 당시 상황으로 보나 남북 관계에서 진전이 있을 때 그것이 레버리지로 작용해 북·미 관계에서도 진전을 거둘 수 있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김정은 위원장에게 남북이 순서를 제대로 잡아가야만 북·미 간 하노이 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설득하고 싶다.
2021년 9월21일 퇴임을 7개월 앞두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종전 선언’을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말뿐인 선언, ‘하노이 노딜 이후의 냉혹한 현실을 외면한 순진한 전략’이라고 비판한다.
정말 화가 나는 주장이다. 그런 비판은 책상머리에서만 사고하는 ‘루저들의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종전 선언을 제기한 시기를 반추해보면, 하노이 노딜 후 북·미 관계가 완전히 끝장난 상황이었다. 그런 데다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하고 북한에 철저히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백악관에서는 매파들이 북·미 관계를 흠집 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임기가 1년 남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화를 만들어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종전 선언이라는 절박하고도 전략적인 카드를 끄집어냈던 건데, ‘안 되니까 하지 말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한민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손 놓자고 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후 국제 정세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압송하고 그린란드에 야욕을 보이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북한 문제는 뒷전이 된 듯하다.
미국에 한반도는 항상 뒷순위였다. 미국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아주 좋은 말을 쓰긴 하지만 실상은 두고 보며 관리하겠다는 거다. 미국의 이런 관리 전략은 상수로 봐야 한다. 게다가 백악관 주류는 70여 년간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오며 북한을 아주 강하게 불신한다. 그걸 넘어서서 북핵 문제를 직접 해결하겠다고 나선 건 트럼프 대통령이 유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시절 김정은 위원장과 세 번 만났다. 자신이 김정은 위원장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다. 아마 트럼프 대통령도 하노이 노딜이란 실패에 대해 ‘그때 결렬시키지 않고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했다’고 평가하리라 본다. 하노이 노딜은 북한뿐 아니라 트럼프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만약 당시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면,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의 매파 세력이 가한 압력이나 (트럼프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의 청문회 등) 국내 정치문제 때문에 북한 문제를 풀지 못했던 데 대한 아쉬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의 2026년 국가방위전략(NDS)은 “한국이 북한 억제의 일차적 책임을 지고, 미국은 결정적이지만 제한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과연 미국이 북한과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을까.
2018년에 비해 현재의 환경은 객관적으로 대단히 좋지 않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북핵이 2018년에 비해 너무나 고도화되어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여전히 백악관을 비롯해 미국 주류 사회가 북한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많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우 전쟁)으로 러시아의 변수가 너무 커져버렸다. 즉 북한에 너무나 큰 뒷배가 생겨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선다 하더라도 이 걸림돌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봐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특유의, 성과를 중시하는 국정운영 스타일 역시 고려해야 한다. 올 하반기에 치를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가 명시적인 업적을 거두려는 점을 겨냥해본다면, 올해 4월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움직여볼 여지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한국을 배제한 테이블이라면?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나.
2018년 가을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무산되는 과정을 우리가 잘 복기해야 한다. 북한은 (예정돼 있던 서울에서의) 남북 정상회담보다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을 먼저 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게 김정은 위원장이 한 결정적 실수라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도 그게 아쉬웠던지 2018년 12월30일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답방을 가지 못해서 아쉽고 2019년에 잘해보자고. 그런 한편으로 미국에는 빨리 만나자며 친서를 보냈다. 만약 회담 순서가 원래대로 진행됐더라면, 북한이 가져갈 수 있는 레버리지가 더 컸으리라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이 혹시 이 기사를 본다면, 하노이 노딜을 성찰해보라 말하고 싶다. 남북 관계가 제대로 될 때 북·미 관계에 힘을 가지고 풀어갈 수 있는 거라고, 그게 2018년 한반도의 봄이었다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 축으로 ‘대러·대중 관계 정상화’를 강조했다.
지금같이 국제질서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실용 균형 외교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재명 정부가 잘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갈등하는 구조에서 우리 정부가 중국과 일본을 각각 방문하면서 성과를 얻어내지 않았나. 윤석열처럼 국제질서를 블록으로 나누고 한·미·일 블록에 몰빵하는 외교정책을 펴서는 대한민국이 얻을 게 없다. 그런 식으로 하면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쪽으로 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민국은 국력 면에서 가치가 있는 나라다. 그들도 우리나라와 관계가 나빠지는 걸 원치 않는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최근 여러 움직임을 보면 북한이 러·우 전쟁에 파병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관계 개선을 하려는 본심이 확인되지 않나. 이걸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역대 대한민국 역사상 진보·보수 정부 할 것 없이 북방 정책을 펼쳐왔다. 외교로서 대한민국의 우군을 만들자는 거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걸 포기한 정부가 바로 윤석열 정부다.
북한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해,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도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선(先)평화 후(後)통일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은 남북이 서로 평화롭게 사는 게 중요하다. 한국의 치킨집이 평양 시내에 생기고, 북한의 옥류관 서울지점이 생기는 것, 부산의 밀면집이 평양에 생기는 것. 서로 사이좋게 왕래하고 지내는 게 평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통일은 좀 다르지 않은가. 지금으로선 상대를 흡수하거나 무력으로 하거나 충돌이 생기는 과정을 피하기 힘들지 않을까. 과연 우리가 통일할 준비가 돼 있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선 평화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근데 그걸 북한 측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는 할 수 없다. 다만 상대방의 체제는 인정해야 한다는 거고 통일은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만들어가자는 얘기다.
살얼음판 위에서 남북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 이재명 정부에 조언한다면.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정말 지난한 과정을 꾸준히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유엔 총회에서 발표한 한반도 평화 구상 ‘END 이니셔티브’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및 민간 대북 전단 살포 중지 등 이미 이재명 정부가 방향을 잘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에서 결정적 시기가 올 거라고 본다. 다만 그 시기가 왔을 때 (한·미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2017년 겨울 남북 관계가 단절되어 있을 때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남북 관계 해빙을 위해 내린 처방은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였다. 문 전 대통령이 훈련을 유예할 수 있다고 발표했을 때 (물론 사전 통보를 했지만) 미국 측에서도 난리가 났다. 그때 문 전 대통령이 “이제 발을 내디뎠다. 이 길을 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쨍 소리를 두려워하지 말고 감수하고 나아가야만 극복할 수 있다.
권은혜 기자 kik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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