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육성시스템·집요한 10대 연구…케이팝 주류로 끌어올린 힘[K-빅사이클]

최수진 2026. 2. 1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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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 수출액 해마다 증가하며 22조원 규모로 성장
하이브·SM엔터·YG엔터 주가 1년새 20% 이상 올라
대형 IP(아티스트) 경쟁력 인정받은 결과

[커버스토리: 빅사이클 올라탄 한국의 주력산업]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블랙핑크 로제가 브루노 마스와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1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장. 축하공연의 오프닝을 위해 블랙핑크 로제가 미국의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히트곡 ‘아파트(APT.)’를 부르며 그래미상의 개막을 알렸다. 아파트는 수상에 실패했지만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레코드’ 후보에 올랐다. 로제는 그래미 무대에 오른 첫 K팝 아티스트가 됐다.

이어 본상 시상식에서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골든’이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 부문을 수상했다. 케이팝의 첫 그래미상 수상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글로벌 장르(K팝)의 오랜 갈증을 마침내 해소했다”고 평했다. 영국 가디언은 “K팝이 미국 주류 음악 시상식의 본상 후보로 논의된다는 자체가 상징적”이라고 썼다.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그래미상은 BTS도 받지 못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그래미에서 본상 수상은 K팝의 위세를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다. 

한때 K팝 정점론이 문화계의 화두였다.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BTS의 공백에도 K팝은 세계인의 문화로 자리 잡으며 성장했다. 올해는 BTS가 완전체로 컴백하고 블랙핑크도 돌아온다. K팝을 필두로 한 K컬처가 슈퍼사이클에 재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 수출산업, 자본시장의 주요 섹터가 되다

K컬처 수출은 해마다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2023년 132억 달러, 2024년 151억 달러(약 22조원)를 기록했다. 가전제품, 2차전지보다 더 큰 규모의 수출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2025년 기준 국내 콘텐츠 산업 전체 매출은 165조원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K팝이 이끄는 주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주가도 지난 1년간 상승세를 보였다. 하이브는 57.14% 올라 시가총액 16조원에 육박하며 50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이 밖에 지난 1년간 SM엔터 24.09%, YG엔터 37.21%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두 회사는 각각 시가총액 2조5000억원, 1조3000억원대를 기록하며 주식시장의 중요 섹터로 자리 잡았다. 이는 IP(아티스트) 경쟁력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K팝 특유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다.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결과다. K-아이돌 육성시스템은 한국의 ‘발명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H.O.T. (사진=한경DB)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라는 발명품  

K컬처가 주류로 인정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30년이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최초의 아이돌이 탄생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에서 첫 아이돌이 데뷔했다. 최초로 멤버 5명 전원이 10대로 구성된 그룹 H.O.T.였다. 이들은 합숙을 통해 ‘완성체’가 될 때까지 춤과 노래, 매너 등을 철저히 훈련받았다.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출발점이었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제조업 문화와 엔터 산업의 결합’이라고 평가한다.  

두 번째 키워드는 10대다. H.O.T. 멤버 전원을 10대로 구성했다.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는 게 캐치프레이즈였다. K팝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음악 수요층이 10대라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K팝 선구자들은 이들이 20, 30대가 돼도 팬으로 묶어둘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박진영은 “한국의 기획사들은 끊임없이 10대에 대해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이것이 다른 국가들이 K팝을 따라 오기 힘든 원인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그 출발점은 H.O.T.였다. 

데뷔와 동시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아이돌’이라는 장르를 대중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H.O.T.는 체계적인 팬덤 문화를 구축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한국 가수 최초로 유료 공식 팬클럽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유료 팬클럽에 가입하면 화보와 같은 굿즈를 제공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최저시급 1200원 시절 1만~2만원대의 높은 가입비를 설정했음에도 누적 유료 회원 수는 약 22만 명에 달했다. 유료 팬클럽 제도는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을 올리는 유료 구독형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버블 등의 모태이기도 하다. 

그래픽=박명규 디자이너

◆최초는 아니어도 최고가 된다는 것

또 하나의 장면은 2000년대 나왔다. 아이돌의 인기가 아시아 지역까지 퍼지면서 내수 중심의 작은 음악 시장이 수출산업으로 변모한 시점이다. H.O.T.는 2000년 2월 베이징 공인체육관에서 한국 가수 최초로 중국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현지에서 8만 명 이상의 팬덤을 확보하며 인기를 끌자 중국 언론은 H.O.T.에 처음으로 ‘한류(韓流)’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동방신기(2003년), 빅뱅(2006년), 소녀시대(2007년) 등이 아시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문화는 아시아 시장에서만 통했다. 서구권에서는 언어와 문화적 장벽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2010년대 들어와서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 인기는 유튜브를 타고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퍼져나갔다.

여기서 또 하나의 포인트가 등장한다. 한국의 제조업이 세계화라는 글로벌 정치·경제적 변화의 수혜를 입으며 사이클에 올라탔다면 K컬처는 유튜브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진화의 수혜를 입었다. 문턱 높은 미국의 방송국을 뚫지 않아도 유튜브를 통해 콘텐츠가 확산되는 시대의 최대 수혜자가 K팝이었다. 

K팝의 글로벌 시장 공략에 1차 정점을 찍은 것은 BTS(방탄소년단)다. 2017년 BTS가 빌보드 메인 차트인 ‘핫100’에 진입했고 수많은 곡들로 미국 메인 차트의 상단을 장식했다. BTS의 음악에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수용성이다. 언뜻 들으면 팝 음악과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K팝은 한국적 특징을 앞세우지 않았다. 좋은 것이 있으면 그대로 흡수해 K팝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냈다. 한국의 모든 산업도 마찬가지다. “최초는 없었지만 다른 누구의 것이건 좋은 것을 흡수해 최고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한국 산업 전반의 강점이기도 하다. 

2001년 H.O.T. 연합 팬클럽 주최로 서울 장충체육관 앞에서 토니 안 생일잔치가 열렸다. (사진=한경DB)


 
이와 함께 가족이 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든 것도 BTS의 성과다. 10대에 대한 집요한 연구의 결과인지 BTS의 세계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위로와 희망을 노래했다. 가족들은 그 음악을 함께 들었고 수요층은 확산됐다.  

BTS의 공백기는 블랙핑크와 스트레이키즈가 메웠다. 이들은 특정 가수의 춤, 패션 등을 따라하는 ‘커버문화’를 확산시켰다. 팬덤의 확산이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는 전 세계에 K팝 위상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케데헌은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콘텐츠로 등극했으며 OST ‘골든’은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8주간 1위를 기록했다. 

◆ “육성 시스템을 따라할 수 있어도 문화적 특징은 베낄 수 없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K팝의 성장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해줬다. 그는 “K컬처가 글로벌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데는 육성 시스템이 주효했다”며 “한국만의 트레이닝 시스템에 서구적인 팝 음악을 그대로 흡수한 것이 시너지를 냈다”고 설명했다. 

하 평론가는 “한국처럼 아이돌 트레이닝 시스템을 가진 곳은 어디에도 없다”며 “특히 우리는 그 시스템을 산업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른 나라가 비슷하게 따라할 수는 있어도 한국 고유의 문화적 특징을 그대로 베끼기는 어렵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30년간 발전시켜온 육성 시스템은 K컬처 산업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훈련을 통해 실력을 갖춘 IP를 만들어내고 음악적인 특색을 더해 상품성 있는 여러 ‘스타’를 주기적으로 만들어낸다. 팬덤은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아이돌을 고를 수 있으며 산업은 특정 IP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재근 평론가는 “반도체처럼 기술적으로 따라하기 어렵다고 볼 수 없지만 30년간 만들어온 시스템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팬덤을 이해한 플랫폼 사업은 자본시장에서 인정받는 산업으로 성장하는 추가 동력이 됐다. 가수와 일대일 메시지를 주고받는 형태의 버블, 위버스, 유니버스 등이 대표적이다. 버블은 SM엔터테인먼트 자회사 디어유, 위버스는 하이브가 운영한다. 플랫폼을 통해 팬덤의 일회성 소비를 반복 참여 형태로 전환시켰고 기업의 매출 변동성을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GM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팬 플랫폼 시장은 2024년 59억 달러(약 8조6000억원)를 기록했다. 2034년까지 연평균 16.3% 성장할 전망이다. 

안정적인 팬덤 확보는 매출로 이어진다. 빌보드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투어 매출 상위 40개 리스트에 한국 가수 4팀이 포함됐다. 스트레이키즈(10위), 세븐틴(17위), 제이홉(32위), 엔하이픈(37위) 등이다.

올해 엔터 산업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다. BTS 복귀 등 대형 IP 일정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올해 K컬처 산업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고 평가했다. 최민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일시적 유행을 넘어 글로벌 문화 산업 내에서 하나의 지속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한국 엔터 산업이 보유한 IP 기획력과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흥행 신뢰도를 갖춘 ‘검증된 포맷’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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