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나의 배터리ON] 해외 자본 들어온 정부 ESS 사업…이유와 과제는

[편집자주] ‘박한나의 배터리ON’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배터리 분야의 질문을 대신 해드리는 코너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을 비롯해 배터리 밸류체인에 걸쳐 있는 다양한 궁금증을 물어보고 낱낱이 전달하고자 합니다.
정부가 국내 전력망 안정화를 위해 추진 중인 ‘제2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앙계약시장’ 사업에 해외자본이 대거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제2차 ESS 입찰에 참여한 사업자 컨소시엄은 총 35개 안팎인데 이중 해외자본이 절반 가량 참여한 상황입니다.
미국계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사인 ‘코리아기가플랫폼’(KGP)이 국내 발전공기업들과 함께 구성한 컨소시엄은 약 10개로 알려졌습니다. 주주 구성상 해외 자본이 주주로 참여한 구조입니다.
또 발전사업자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BEP)는 삼성SDI, SK온과 1~2건의 컨소시엄을 별도로 구성해 입찰에 참여했습니다. BEP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누적 3810억원을 투자해 최대 주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 해외 자본은 사업을 낙찰받을 경우 투자 지분 만큼 수익을 가져가게 되는 구조입니다. 1차와 2차 ESS 정부 입찰의 사업 규모가 총 2조~3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분 구조에 따라 수익 일부가 해외로 나가는 것입니다.
입찰 사업자 절반이 해외자본과 컨소시엄 구성…“국내 사모펀드는 과도한 수익률 요구”
해외 사모펀드가 컨소시엄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ESS 사업 특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체 사업비 가운데 자기자본 비중이 낮은 데다 장기간의 정책 변수까지 감안해야 해 국내 사모펀드가 통상 요구하는 과도한 수익률 기준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국내 사모펀드는 ESS에 관심도 없는 데다 요구하는 마진도 너무 높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또 KGP 등 투자사의 경우 국내에 설립된 법인을 통해 사업에 참여하고 있어 형식상으로는 국내 투자에 해당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들 회사의 주주 구성과 자금 조달 구조를 들여다보면 해외 자본이 국내 법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한국 법인이다 보니 사업 성격을 온전히 해외로만 보기에도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전체 사업비를 100%로 놓고 보면 85%는 통상 은행권이 주도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이기 때문에 해외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사업비 대비 제한적일 것”이라며 “약 15% 정도를 국내 배터리 3사나 발전사, 해외 사모펀드가 지분을 나눠 참여하는 구조여서 수익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재원이 필요한 국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국계 자본을 하나의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라며 “물론 공공성이 강한 국책 사업이다 보니 해외 자본이 참여해 운영 수익을 가져가는 것을 두고 국민 세금으로 해외 자본의 배를 조금이라도 불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국내에 자금을 유치한 셈”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세금 투입되는 ‘조(兆) 단위 국책사업… “최종 수익처 따져볼 필요 있어”
해외 자본의 참여가 적은 지분에도 논란이 되는 이유는 ESS 시장이 일반 민간 사업이 아닌 정부가 국내 ESS 산업 활성화라는 정책 목표를 갖고 추진하는 국책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상장사의 외국인 지분 소유처럼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투자 구조가 아니라, 정부 입찰을 통해 정책 사업의 수익을 함께 배분받는 구조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정부 주도 사업에 대한 조단위 국책 프로젝트는 단순한 투자 형식보다는 사업 수익이 최종적으로 어디로 귀속되는지를 입찰에서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공공 재원이 투입되는 만큼 ‘국내 기업이 배터리를 공급한다’는 점만으로 국내 산업 기여도를 충족했다고 볼 것이 아니라, 국책 사업의 최종 수익이 어디로 귀속되는지까지 최종 평가 이후라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해외자본의 국내 투자는 자유무역기구(WTO) 제소 우려 등으로 막을 수도 없고 막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도 않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은 국내 산업 육성 관점에서 진행되는 게 원론적으로 바람직합니다”라며 “해외 자본과 해외 공급망(SCM)의 배를 불리는 일은 없도록 평가 전후 과정에서 정책 목적을 살릴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ESS 산업은 에너지 전환 시대의 핵심 기반이자 국내 제조업 경쟁력의 미래를 좌우할 전략 분야”라며 “장기적으로 입찰 경쟁의 평가 항목 가운데 국내 산업 기여도가 들어가 있는 취지를 살릴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LFP 배터리도 중국 공급망 우세…이번주 중 우선협상자 발표 예정
이와 함께 중국 의존도가 높은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급망(SCM)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2차 입찰에 참여한 컨소시엄 절반 이상이 중국산 소재 의존도가 높은 LFP 배터리를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배터리업계는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국내 공급망 구축 계획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2027년까지 각각 1GWh와 3GWh 규모의 LFP 생산능력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소재, 부품 조달도 국내에서 진행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삼성SDI도 국내 공장의 LFP 생산라인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삼성SDI는 ‘국내 SCM의 성숙도를 보고 단계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인데 LFP 공급망의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됩니다.
3사 모두 LFP를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컨소시엄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와 증빙자료 등과 다르게 사업이 추진될 경우 정부가 계약 취소는 물론 가격 조정 등 강력한 제재 조치를 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계획서에 명시한 국내 생산·조달 계획을 변경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입니다.
전력거래소는 당장 이번 주 중으로 평가위원회의 평가를 완료해 우선협상 대상자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후 이의 제기 접수 기간이 종료되면 이달 말에 확정되는 순서입니다. 비가격 평가 비중이 확대된 이번 2차 입찰에서 국내 기여도와 화재 안전성, 공급망 계획이 실제로 어떻게 평가됐는지가 1차와 비교해 향후 논쟁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한나 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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