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는 합리화의 유혹… 인간다움의 선 지키려면
<23>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유만수
편집자주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오동훈, 허규형 전문의가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우리의 마음도 진단합니다.

※이 글에는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저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좋은 영화란 극장을 나선 뒤에도 계속 장면을 곱씹고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박찬욱이다. 그의 작품들은 아름답고 탐미적인 미장센으로 눈을 즐겁게 하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 떡하니 얹히는 묵직한 주제의식 덕분에 극장을 떠나고 나서도 계속 머리를 헤집어 놓는다. 그의 최근작인 '어쩔수가없다' 역시 마찬가지였다.'하루아침에 실직하게 된 가장이 재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경쟁자들을 찾아내 죽인다'라는 설정은 단순한 블랙코미디같이 보일 수 있지만,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불안과 뒤틀린 욕망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왜 '제지맨'이어야만 했을까

주인공 만수는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반려견 2마리와 함께 자신이 어린 시절 살던 이층집에서 살아가는 그의 삶은 마냥 순탄해 보인다. 그런데 한평생 몸 바친 회사가 외국계 기업에 인수되면서 그는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고 가진 것들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한다. 재취업마저 여의치 않자 그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제지업계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단순히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길이 있는데도 그는 그 길을 보려 하지 않는다. 이 점은 만수의 타깃이 되는 구범모 역시 마찬가지다. 범모도 실직 후 제지업 외에 다른 길을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술만 마시며 세월을 보낸다. 아내들이 보기엔 이들의 행동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카페를 열어 준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고, 원예나 분재를 해보자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심리는 '존재론적 불안(ontological anxiety)'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고안한 개념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세상에 아무런 설명 없이 내던져진 상태에서 오는 근원적 불안'을 의미한다. 존재론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사람들은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규명하고자 한다. 그때 가장 손쉽게 선택하는 도구가 바로 직업이다. 내가 하는 업무와 내가 갖는 직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다. 만수에게 '제지맨'이라는 정체성은 자아를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이었다. 특히 올해의 펄프맨상을 받으며 인정받았던 경험은 그를 세상에 의미 있는 존재로 확인시켜 주는 허가증과 같았을 것이다.
이 기둥이 해고라는 사건으로 뽑혀 나갔을 때, 만수는 단순히 돈을 못 버는 상황에 처한 게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길을 잃어버린 투명 인간이 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제지 전문가라는 직업을 걷어내도 만수라는 인간의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음에도 그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을 것이고, 이러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살인이라는 선택을 하게 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성벽을 지키려는 '전능 환상'의 비극

만수의 집착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축은 유년기에 겪은 상처일 것이다. 영화 초반 아버지가 운영하던 돼지 농장이 부도가 나며 아버지가 자살하고, 이후 살던 집에서 쫓겨나 수시로 이사해야 했던 기억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련의 경험은 어린 만수에게 '세상은 언제든 나를 길거리로 내몰 수 있는 무서운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 줬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두려움에 맞서 그는 평생을 비장하게 살았고, 마침내 어린 시절 행복이 담긴 집을 되찾았다. 되찾은 집은 단순히 거주 공간이 아닌, 과거의 상처를 보상하고 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는 성벽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직은 어렵사리 쌓아올린 성벽이 다시 무너져내리는 재앙의 시작이었다.
만수의 가족 구성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싱글맘인 아내와 그의 아들, 장애가 있는 둘째 딸로 구성된 그의 가족은 겉보기엔 마냥 화목해 보이지만, 혈연의 고리가 느슨하고 소통이 어렵다는 점에서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자신의 실직으로 인해 촉발된 가족의 변화를 보며 만수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이 불완전한 가족은 금세 깨져버릴 거야"라는 위기감을 감지했을 것이다. 아내 미리가 치과의사 진호 밑에서 일하며 생계를 돕는 모습은 만수에게 안도감이 아닌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잃고, 나아가 가정 자체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그는 나만이 이 가족을 구할 수 있다는 '전능 환상(omnipotent fantasy)'에 사로잡힌다.
이런 생각이 강해질수록 그는 살인마저 가족을 위해 필요한 희생으로 포장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 살인을 계획할 때는 피해자의 사정에 안타까워하고 당황해서 어설픈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그가 두 번째, 세 번째 살인을 거치며 주저하는 모습이 점차 줄어드는 것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가 완성되어 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 번째 살인을 위해 피해자를 찾아간 만수가 술기운을 빌려 니퍼로 자신의 어금니를 직접 뽑아버리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하면서도 심리적으로 중요한 분기점이다. 실직하고 살인을 계획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심한 치통을 앓기 시작하는데, 이는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볼 때 만수의 자아를 향해 내면의 도덕적 판사 역할을 하는 초자아(superego)가 보내는 메시지로 봐야 한다. '너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 양심의 마지막 경고인 셈이다. 하지만 만수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행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대신, 고통의 근원을 물리적으로 적출해버리는 극단적인 방식을 택한다. 자신을 꾸짖고 아프게 하던 초자아의 입을 강제로 봉쇄해버린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스스로 완수한 순간, 만수의 내면에선 기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자신을 처벌하던 초자아의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합리화라는 강력한 방어기제가 빈틈없이 들어앉는다. 이제 만수에게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더 이상 죄가 아니다. 가족의 생존을 위해, 무너진 내 집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가 없다’는 정당성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만수의 범죄를 알아차린 아내 미리의 침묵 역시 서늘한 지점이다. 미리도 자신이 어렵게 일궈 온 안온한 중산층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치과에서 보조업무를 하며 마주한 현실은 차가웠고,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완벽한 남자 진호 옆에서 역설적으로 그녀는 초라함을 매 순간 확인해야 했다. 만수의 폭주는 두렵고 끔찍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안락한 집과 생활을 지켜 줄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결국 미리는 만수의 살인을 묵인함으로써 조용한 공범자가 되기를 선택한다. 하지만 피 묻은 손으로 지켜 낸 가정이 과연 이전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영화 후반부, 남편을 바라보는 미리의 묘한 거리감과 복잡한 표정은 이 가정이 이미 내부로부터 조금씩 곪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음'의 선을 지키는 존재

영화 후반부,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그토록 원하던 제지공장으로 돌아온 만수가 마주한 것은 적막하게 돌아가는 자동화 기계들이다. 그는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자리를 되찾으려 했지만, 기계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그가 차지할 수 있는 지분은 그저 미미할 뿐이다. 만수는 자신의 자리가 있음에 당장은 안도하지만, 그 안도감은 아마도 오래 가기 어려울 것이다. 머지않아 그가 다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할 존재론적 불안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굳이 언급하는 것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인공지능(AI)은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인간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만수처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오직 내가 하는 일에만 고정해 둔다면, 머지않아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계가 나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결과값을 내놓는 순간, 나의 존재 이유는 증발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인간의 가치는 AI처럼 효율적인 결과값을 내놓는 능력에 있지 않다. 오히려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괴로워하고, 밤을 새워 고민하며, 끝까지 사유를 멈추지 않는 그 비효율적 과정에 있다. 우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을 하는 사람(Doing)인가'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지키는 사람(Being)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일지라도 '이것만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지키는 나만의 선이 있어야 하며, 다른 이들에게 어떠한 온기를 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다움이다.
살다 보면 나의 선택에 대해 영화 속 만수와 미리처럼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들 것이다. 어떤 순간에는 그런 합리화가 나를 지켜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향해 계속 물어야 한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 '어쩔 수 없는' 영역인가? 우리는 결코 상황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행동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선택하고 그 선을 지키려 애쓰는 능동적인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고집스러운 사유의 근육을 잃지 않는 것만이 우리가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남을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보루일 것이다.

오동훈 연세온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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