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스릴·멜로의 황금비율… 한국영화 흥행 불씨 되살릴 류승완의 '휴민트'
제작비 235억 투입 상반기 한국영화 기대작

액션은 건조한 듯 화끈하고, 멜로는 애틋하며 쓸쓸하다. ‘액션 장인’ 류승완 감독이 멜로 연출에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영화. 존 르 카레의 첩보 스릴러를 연상시키지만 실은 홍콩 누아르에 가까운 ‘휴민트’가 11일 개봉한다. 마케팅 비용을 제외한 순제작비 235억 원이 투입된 올 상반기 한국영화 최고 기대작이다.
사람(Human)과 기밀, 정보(Intelligence)의 합성어인 제목처럼 영화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정보원을 둘러싼 남북 요원의 대립과 공조를 그린다. 두 요원의 정보와 두뇌 싸움 중심으로 펼쳐진다면 익숙한 스파이물이 되겠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로맨스와 북한 측 내부 갈등이 색다른 변주를 유도한다.
북한산 마약의 한국 유입을 수사하던 국정원 소속 조 과장(조인성)은 북한 여성을 상대로 한 러시아 마피아의 인신매매 정황과 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 공관 개입 가능성을 파악하고 현지로 떠난다. 북한 당국도 국경 지역에서 북한 여성이 실종되는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보위성 요원을 러시아로 파견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박건(박정민)은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을 의심하며 증거 수집에 나선다. 문제는 조 과장에게 포섭된 채선화(신세경)가 박건의 옛 약혼녀였다는 점. 황치성이 채선화를 스파이로 지목하면서 세 인물 간의 긴장도 점점 팽팽해진다.

‘휴민트’는 삼각형 구도의 영화다. 채선화를 중심에 두고 조 과장 박건 황치성이 삼각형을 이루며 각자의 이유로 다른 두 인물과 대립하며 양손으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다. 정보원을 지키지 못한 조 과장의 죄책감과 옛 연인에 대한 박건의 사랑, 황치성의 무자비한 악마성은 액션의 타격감과 첩보물의 긴장에 감정의 충돌을 더하며 영화의 세 축을 형성한다. 장르적으로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설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을 흡인하는 건 이 삼각 구도가 힘의 균형을 이루며 직선적인 플롯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류 감독도 4일 언론 시사 후 “인물들의 관계가 촘촘하게 세워지지 않으면 액션의 폭발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멜로적 요소뿐 아니라 여러 인물들의 관계가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인물 간의 관계와 감정 중심의 영화지만 류승완 감독은 과도한 설명이나 표현 대신 핵심 정보만 전달하며 배우의 표정 연기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게 한다. 시종일관 차갑고 어두우면서 무거운 분위기로 일관하기에 유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액션 시퀀스는 장르적 기대치에 따라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주요 장면마다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마지막 액션 시퀀스는 약간의 아쉬움마저 상쇄할 만큼 화끈한 전개로 대미를 장식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다. 중년의 중후함을 탑재한 조인성은 적절한 무게감으로 플롯의 흐름을 이끌고, 박정민은 그보다 비중은 적지만 신경질적이면서도 예민하고 감성적인 연기로 감정의 동선을 이끈다. 박해준은 빈정거리며 히죽대는 악당 연기로 갈등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소화한다. 다만 신세경은 세 인물이 서로 총을 겨누도록 하는 기능적인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데 연기의 문제라기보다 극 구성이 갖는 제약 때문으로 보인다.
‘휴민트’는 톡톡 튀는 젊은 감각의 영화와는 거리가 먼, 첩보물과 액션, 로맨스 장르의 고전적 매력을 쌓아 올린 중후한 영화다. 류 감독의 전작 ‘밀수’와 ‘베테랑2’에서 아쉬움을 느낀 관객이라면 이 영화로 그의 건재를 다시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류 감독의 이전 작품인 ‘베를린’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어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지점도 있다.
국내 영화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창작자 중 하나로 꼽히는 류승완 감독이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한 이래 ‘베테랑2’(2024)까지 13편의 영화로 거둔 관객은 통산 5,200만여 명. 역대 국내 영화감독 중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한국영화계가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는 크다. ‘휴민트’가 위기의 한국영화에 희망을 안길 수 있을까. 9일 낮 12시 현재 예매 관객수 15만1,000여 명, 점유율 40.7%로 일단 청신호는 켜졌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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