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산불 30년] 4. 재난의 반복

최현정 2026. 2. 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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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규모 따라 지휘기관 제각각 ‘컨트롤타워가 없다’
고성산불, 국가 산불대응체계 시작점
30년 간 진화차·장비 대폭 강화에도
2022년 울진·삼척, 지난해 경북 등
대형산불 초동대응 실패 지적 잇따라
시군구·산림청·소방당국 지휘권 분산
중앙정부 재난관리 시스템 부재
복잡한 대응 매뉴얼 현장 혼선 가중
분산된 명령권 일원화 구조변화 시급
국가 단위 통합 지휘센터 도입 제언

고성산불은 산불이 재난이 될 수 있음을 알린 사고다. 1996년 산불에 이어 2000년 고성산불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정부는 대형산불의 위험성을 인지해 산불 대응 예산을 크게 늘렸다. 고성산불은 정부가 산불 대응 체계를 갖추게 된 ‘시작점’인 셈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진화 장비와 인력 등이 대폭 강화됐지만, 지난해 경북에서 ‘괴물 산불’로 불린 초대형 산불이 발생하면서 현 대응 체계의 한계점이 드러나게 됐다. 산불 대응 체계를 일원화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지난해 3월 25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 연합뉴스

■ 대형 산불 대응 체계 미흡의 결과

1996년 고성 산불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산불 진화 장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지자체 임차 헬기가 없어 산림청과 군 헬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산불 진화차도 없었다. 진화대원들도 등짐 펌프 등 필수 장비가 한정됐다. 대형 산불 매뉴얼은 없었다.

이 같은 인프라의 부족은 대형 재난의 씨앗이 됐다. 1996년 4월 23일 오후 12시 55분쯤. 산림청 헬기가 양양에서 산불 진화를 마치고 고성 산불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통신이 전달됐다. 고성 산불감시초소로부터 산불 발생 신고가 들어온지 약 30분 만이었다. 당시만 해도 강한 바람이 불지 않아 불길은 처음 산불이 시작된 군부대 안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20분이 지나도 헬기가 도착하지 않자 당시 심우석 고성부군수는 산림청과 군에 헬기 지원을 재차 요청했다. 약 1시간이 지난 오후 2시 30분쯤 도 상황실은 ‘평창 대형산불 진화지원으로 산림헬기 지원 불가’를 통보했다.

이날 강원지역에는 고성뿐 아니라 평창, 양구, 인제 등에서도 산불이 동시다발로 발생해 한정된 헬기를 어디에 먼저 투입해야 할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 안중걸 전 강원도청 산림국장

당시 도청 상황실에서 산불 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안중걸 전 강원도청 산림국장은 “고성 산불은 초반만 해도 현장에 바람이 거세지 않았고, 군부대 화재는 비교적 자주 발생해 긴급성이 낮게 판단됐다”며 “반면 인제 진동 계곡 등은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보호 가치가 높아 헬기를 그쪽으로 돌리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고성군은 전 직원이 현장에 투입돼 군부대 주변에 소방차와 함께 방화선을 구축했다. 그러나 야간이 되며 거세진 강풍으로 인해 연기가 자욱해졌고, 불이 붙은 솔방울이 사방으로 튀면서 방어선은 금세 무너졌다. 이날 오후 5시 10분쯤 산림청 헬기가 뒤늦게 투입됐지만 강한 바람과 일몰로 2시간 뒤 철수하면서 불은 대형화되기 시작했다.
▲김영석 고성군 산림조합장

당시 고성군 산불 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김영석 고성군 산림조합장은 “초기 진화가 안돼서 좀 지연됐는데, 야간이 되면서 갑자기 초속 18m의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며 “불과 몇 시간 만에 바다까지 내려왔으니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전선이 불에 타 통신망이 끊기는 고립 상황까지 벌어지게 됐지만, 김 조합장이 통신 가능한 지역으로 초소를 옮기는 기지를 발휘해 도와 다시 연락이 이어지게 됐다.

■계속되는 참사

문제는 현재다. 이후 헬기와 산불진화차 등 진화 장비가 대폭 강화됐지만, 대형 산불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대형 산불의 대응 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다.

산불은 강풍과 건조한 날씨 속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인력과 장비를 전략적으로 배분하고 집중 투입하는 대응 체계와 전략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발생한 경북산불 현장에서도 시·군·구, 산림·소방당국 간 혼선이 발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산불 이재민들 사이에서도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대피 경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대피 명령이 지연되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중앙 부처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제31대 산림청장을 역임한 김재현 건국대 교수는 월간 시사잡지 ‘사상계’를 통해 “경북 산불의 경우 중앙정부의 시스템이 충분히 작동했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객관적으로 나타난 것을 보더라도 산불 헬기의 주력 기종인 러시아산 카모프의 부품 조달이 어려워 8대가 격납고에서 나오지 못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 정지되어 중앙 컨트롤타워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못했을 것이라 예상된다”고 했다.

2022년 울진·삼척 산불 때도 초동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 감사원이 2024년 발표한 ‘재난 및 안전관리체계 점검’ 감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산불에 ‘초동 대응 부실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재난관리체계를 손질하고 인프라를 확충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대응 혼선이 반복됐다는 설명이다.

당시 산불 발화 지점이 CCTV에 찍히고 있었지만, 감시 인력이 없어 초기에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불길이 강원도로 번지며 무선기지국이 파손돼 통신망이 마비됐다.

지자체의 대응도 미흡했다. 24시간 상황실 운영 등 제도적 틀은 갖춰졌지만 인력 부족과 형식적인 교육·훈련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행안부는 2024년 4월 모든 지자체 상황실에 전담 인력을 배치하겠다고 했지만, 감사 결과 지자체 절반은 여전히 당직자가 겸임 근무 중이었다. 당직자 중 재난 교육을 받은 사람도 20%에 채 미치지 못했다.

재난 대응 매뉴얼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감사원은 “현재 지자체별로 평균 26.9개의 매뉴얼을 관리하고 있지만, 한권당 600쪽에 이르고 재난유형별로 매뉴얼이 따로 존재해 복합·신종 재난 발생 시 어느 매뉴얼을 적용할 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각 부서의 행동 요령을 한 권으로 통합하고 실전형 불시 훈련을 강화해 훈련 결과가 현장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1996년 고성 산불 발생 직후 고성군 죽왕면 운봉산 일대. 산 곳곳의 불탄 자국이 그날의 상흔을 보여주고 있다. 고성군청 제공

■ 산불 대응 체계 일원화 필요성 대두

‘초동 대응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산불 대응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해당법 시행령에 따라 산불 대응 주관기관은 산림청이 맡고 있다.

문제는 산불 규모에 따라 지휘 기관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산림보호법’ 제37조 및 제38조에 따르면 중·소형 산불의 경우 시장·군수·구청장 또는 국유림관리소장이 맡고, 대형산불의 경우 시·도지사가 각각 산불현장 통합지휘본부장을 맡는다. 산림청은 중·소형 및 대형산불 진화 시 지휘가 아닌 지원 업무만 수행하고 있다. 1000㏊ 이상의 초대형산불이 발생한 경우에만 산림청장이 통합지휘하게 되지만, 이마저도 시·도 단위로 위임할 수 있는 구조다.

결국 산불 진화의 책임과 지휘권은 대부분 지자체에 맡겨져 있지만, 자원은 산림청에 있어 대응 체계가 일원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 산불 대응 지휘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현행대로라면 일선 현장의 지휘체계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채희문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미국의 NIFC(National Interagency Fire Center)처럼 산불 대응 지휘 체계를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며 “NIFC는 전국단위로 필요한 항공기나 인력을 모두 센터에서 조정해 배분하고, 주로 국토부와 산림청 소속 직원들로 구성돼 관계 부처 간 대응과 협력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정한 기준에 따라 누구나 대형산불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매뉴얼도 객관화하고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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