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다이소급 혁신 없이 10년 ‘규제 탓’…대형마트의 쇠락

이주빈 기자 2026. 2. 9. 19:2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인 가구 시대 못 읽고 ‘대용량 묶음’ 고수
2025년 편의점에 점유율 역전 허용
업계 “새벽 배송 허용돼도 쿠팡 이길지”
서울 시내 대형마트의 양파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정부와 정치권이 이커머스 공룡 쿠팡을 견제하기 위해 대형마트의 새벽 시간대(자정~오전 10시) 영업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소상공인들의 생존권 위협에 대한 우려와 함께, 지난 10여년간 대형마트가 규제 탓만 하며 혁신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와 소상공인들은 국내 대형마트들이 지난 10년간 규제를 ‘성장 정체의 방패’로 삼아왔다고 지적한다. 규제 시간대 외에도 대형마트가 가진 거점 점포와 막강한 자본력을 활용해 오프라인만의 매력을 극대화할 기회가 충분했음에도 배송 시간 확대를 비롯한 ‘규제 완화’에만 매달려 혁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대형마트의 경쟁력이 약화된 원인으로는 인구구조와 생활 패턴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이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전체 가구수의 35%를 차지하는 1인 가구는 ‘차 없는 소비’와 ‘근거리 소량 구매’를 선호한다. 하지만 대형마트는 여전히 교외의 대형 매장과 대용량 묶음 판매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편의점이 ‘집 앞 냉장고’ 역할로 파이를 키우는 동안, 대형마트는 오프라인 공간만이 줄 수 있는 경험적 혁신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유통 구조를 혁신해 ‘가성비 상품’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는 다이소와 같은 시도도 대형마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기에 유통 판도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대형마트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었다. 맥킨지의 ‘2023 한국 식료품 유통 보고서’를 보면, 국내 대형마트 산업은 지난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단 1%에 그쳤다. 2017년 전체 유통 시장의 20%를 차지했던 대형마트는 2025년 기준 9.8%로 위축되며 편의점 업계에도 점유율을 역전당했다. 유통업계 내부 관계자마저 “유통법이 개정돼 새벽배송이 허용돼도 쿠팡을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배송 서비스 없이도 독자 경쟁력을 구축해 가는 해외 오프라인 유통 기업들의 혁신 사례와도 대조를 이룬다. 미국의 식료품 전문 유통업체 트레이더조는 온라인몰을 운영하지 않는다. 광고와 할인 행사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렇게 절감한 비용을 상품의 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는 데 반영했다. 이 매장에서만 살 수 있는 ‘냉동 김밥’ 등 피비(PB) 제품도 ‘품절 대란’ 사태를 일으키는 등 인기 요인이다. 오프라인 유통의 장점은 ‘발견의 즐거움’과 ‘상품의 신뢰’에 있다는 사례다. 또 독일의 알디는 품질 좋은 초저가 피비 제품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는다. 고회전 제품을 중심으로 1천여개 품목만 판매하는데, 수만개를 판매하는 다른 대형마트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일본 돈키호테는 통로를 좁게 만들고 물건을 빽빽하게 압축 진열해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물건을 발견하고 충동구매가 일어나도록 매장 구조를 설계했다. 이 ‘정글 같은’ 매장은 쇼핑을 엔터테인먼트·보물찾기처럼 느끼게 해 관광객과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해외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이커머스가 파이를 키워가는 환경에서도 혁신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며 “국내 마트들이 규제 탓만 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다수의 성공한 유통 기업들이 온라인 커머스로 전환하는 중에도 혁신 모델을 찾은 것과 달리, 국내 대형마트들은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해왔다는 지적이다.

결국 혁신 없는 규제 완화가 가져올 영향은 쿠팡보다는 오히려 골목상권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자정부터 오전 10시 사이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하루 영업을 준비하고 가장 먼저 신선식품을 공급하는 시간대다. 김진철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공동회장은 “이 시간대 대형마트 배송 서비스가 진입하면 소상공인 보호라는 유통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양창영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역시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점포만 늘려오다 위기가 오니 살길을 찾아달라고 하는 격”이라며 “배송 규제 탓에 대형마트가 부진했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