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3전4기’ 김상겸의 투혼

이명희 기자 2026. 2. 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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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선사한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은메달리스트 김상겸이 아내와의 영상통화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상겸 인스타그램 캡처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은 2명의 선수가 블루·레드 코스를 출발해 승패를 가리는 경기다. 일대일 맞대결인 데다 코스 이탈 등 변수가 많아 보는 이들은 짜릿하다. 그러나 선수 입장에선 상대가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한순간 멘털이나 동작이 흔들려 삐끗하면 나동그라지고, 희비가 엇갈린다.

8일(현지시간)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 김상겸은 출발이 좋았다. 그는 레이스 중반 오스트리아의 벤야민 카를보다 앞서 나갔다. 하지만 카를의 막판 스퍼트에 밀려 추월을 허용했고, 0.19초 차로 승부가 뒤집혔다.

아쉬웠지만, 그가 따낸 은메달은 충분히 값지다. 사실 김상겸은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4번의 올림픽 도전 끝에 첫 메달을 거머쥐었으니 이런 기쁨이 없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첫 메달이자, 하계·동계 올림픽 통틀어 한국의 400번째 메달이어서 더 뜻깊다. 하지만 이걸 ‘깜짝 메달’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김상겸은 “나는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는 선수”라고 늘 말해왔다. 그가 강호들을 잇달아 물리치고 결승에 오른 것도 포기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은메달 확정 후 김상겸은 아내와 영상통화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힘겨웠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으리라. 비인기 종목 선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대학 졸업 직후 실업팀이 없어서 일용직 노동을 하며 생업과 운동을 병행했다. 2019년 현 소속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생계를 걱정해야만 했단다. 그렇게 나선 올림픽에서 꿈에 그리던 시상대에 오른 김상겸은 고마운 이들에게 절하는 멋진 장면을 보여줬다. 감탄하고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속도를 겨루는 스노보드 알파인 종목은 나이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금메달을 딴 카를은 41세다. 김상겸과 8강에서 겨룬 롤란드 피슈날러는 45세다. 이 선수들 모두 찰나의 순간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역경을 넘었을 테다. 이들이 세계인의 가슴을 흔드는 건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올림픽 정신을 다시금 일깨우기 때문이다. 37세 김상겸의 활약도 이제부터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마지막까지 즐기는 자가 진정한 승자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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