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문법’과 저널리즘 [저널리즘 책무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영국의 공영방송 비비시(BBC)가 지난달 21일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와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비비시가 누리집에 올린 공지를 보면, 이번 파트너십은 자사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모두를 위한 가치’(Value for All) 전략의 일환이다. 시청자들이 어디서든 비비시의 콘텐츠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와 손을 잡은 것이다.
비비시는 이를 위해 유튜브 전용 신규 프로그램 제작에 투자하고 영국 전역에서 콘텐츠 창작자들을 양성하기로 했다. 유튜브를 통해 비비시의 핵심 프로그램을 널리 알려 자사 플랫폼 신규 이용자를 늘리고, 전세계 시청자들과의 연결을 강화해 ‘상업적 성장’을 꾀하는 데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세계 최고의 공영방송으로 꼽히는 비비시가 ‘디지털 퍼스트’를 넘어 ‘유튜브 퍼스트’ 실험에 나선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보적인 콘텐츠를 자랑하는 유수의 미디어가 유튜브를 파트너 삼아 활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팀 데이비 비비시 사장은 누리집 공지에서 “이번 파트너십이 비비시가 새로운 방식으로 시청자와 연결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비비시의 이런 방향 전환은 유튜브가 확고한 콘텐츠 소비 채널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표다. 가히 유튜브 시대라 할 만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뉴스 소비 측면에서 유튜브는 이미 기성 언론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그런 경향이 도드라진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뉴스 리포트 2025’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유튜브를 통한 뉴스 이용 비율이 50%나 된다. 조사 대상 48개국 평균(30%)보다 월등히 높다. 영국은 13%에 불과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비비시가 아니라 한국의 레거시 미디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유튜브를 대하는 한국 언론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우선, 기성 언론은 대체로 유튜브 채널을 ‘언론’으로 여기는 걸 불편해한다. ‘사실 검증’과 같은 저널리즘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지만, 그 기저엔 ‘유튜버와 동급으로 엮일 순 없다’는 엘리트 의식도 깔려 있는 듯하다. 인터넷 언론이 태동하던 2000년대 초 언론계 상황이 데자뷔처럼 스친다.
기성 언론은 유튜브를 폄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금슬금 유튜브에 발을 담갔다. 지금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지 않는 언론사를 찾기가 힘들다. 유튜브를 향해 저널리즘 차원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온 ‘정통 언론’답게 유튜브 저널리즘의 모범을 보여줬다면 좋았을 텐데,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내용과 형식 모두 정치·시사 유튜브 채널과 그다지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 ‘유튜브가 대세라고 하니…’ 하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끌려가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기성 언론의 박한 평가와 달리, 미디어 수용자들은 이미 유튜브를 언론으로 인식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9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5.5%가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고 답했다. 6년 새 그 비율이 21.8%포인트나 증가했다. 유튜브를 중요한 뉴스 채널로 인식한다는 응답도 87.1%나 됐다.(‘유튜브와 저널리즘: 계엄부터 21대 대선까지’ 보고서) 언론재단의 ‘2025 언론수용자 조사’에서는 유튜브가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 7위에 올랐다. 주요 일간지 가운데 영향력 10위 안에 든 매체는 조선일보가 유일했다.
여러 조사 결과가 말해주듯이, 유튜브는 이제 여론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뉴스 유통 채널로 부상했다. 뉴스 소비의 무게중심이 유튜브로 옮겨갔다면 언론도 적극적으로 그 흐름에 올라탈 수밖에 없다. 유튜브를 ‘비(B)급’ 취급하며 경원시하는 것은 대중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지금 필요한 건 ‘유튜브에서 어떤 저널리즘을 구현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언론재단의 ‘유튜브와 저널리즘’ 보고서에 실마리가 있다. 보고서에 실린 조사 결과를 보면, 유튜브 이용자의 75.4%가 유튜브 뉴스가 유용하다고 답했지만 허위정보(83.7%)와 편향성(81.3%)을 우려하는 의견도 많았다. 이 때문인지 언론사 채널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51.4%로 개인 시사·뉴스 채널(17.2%)보다 훨씬 높았다.
이런 조사 결과는 유튜브에서도 여전히 신뢰가 유용한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른바 ‘유튜브 문법’에 매몰돼 저널리즘의 본령을 망각한다면 기성 언론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는 함의도 던져준다. 데이비 비비시 사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튜브는 ‘저널리즘이 독자와 연결되는 새로운 방식’일 뿐이다.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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