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에세이〉단종에서 시작된 질문…오늘의 정의를 묻다
김정숙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비운의 왕' '단종애사' 우리가 기억하는 단종은 이 토막글자 속에 박제돼 있다. 당시의 집권자 세조 일당이 3년 2개월에 걸친 단종 재위 및 이후에 관한 기록을 모두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쓴 감독은 극히 짧게 언급된 역사서에서 실낱같이 남겨진 사실(史實)을 파고 들었다. 역사의 빈 틈 속에서 펼쳐낸 상상의 날개는 픽션이 아니기를 바랄 만큼, 어쩌면 그랬을지도…로 받아들여질 만큼 15세기 조선시대와 21세기 대한민국이 공감된 해학과 페이소스로 연결돼 있었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위한 계유정난의 피바람에 충신들이 스러지고 성공한 쿠데타의 공으로 권력은 한명회(배우 유지태)가 거머쥐게 된다.
12세에 즉위해 15세에 상왕이 된 단종(배우 박지훈)은 이미 산 목숨이 아니었고 그들의 수순대로 노산군으로 강등돼 귀양을 떠나게 된다.
귀향처는 강원도 영월 광천골. 이 마을 촌장 엄흥도(배우 유해진)는 노루사냥을 하다 호랑이에게 쫓기는 바람에 낯선 마을을 가게 되고 그 마을이 풍족해진 사정을 알게 된다. 양반들의 귀양처가 되면 마을에 득이 된다는….엄 촌장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3면이 강으로 막혀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광천골 청령포는 단종의 유배지가 된다.
식음을 전폐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던 단종을 멱살 잡아 호되게 꾸짖는 촌장은 궁녀 매화(배우 전미도)에게 어이없음을 안겨주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자신의 비극에 함몰돼 가까이 있는 백성들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현실적 잘못은 제아무리 왕이라도 반성해야 할 점이기는 하다.
마을사람들을 표적으로 달려드는 호랑이를 향해 단종은 쌓아두었던 내적 울분을 터트린다. 마치 한명회와 같은 정적을 대응하듯 큰소리로 포효한 후 화살로 호랑이 머리를 쏘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다.
호랑이와의 대적 신을 위해 CG를 어떻게 활용했든 영화 흐름상의 효과는 대단했다. 내 백성은 내가 지킨다는 뉘앙스가 불현듯 커졌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유약하고 무력한 군주가 아니었다. 백성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왕이었다.
아름다웠던 신은, 멀리서부터 각지에서 찾아온 백성들이 강 건너에서 "전하!"를 부르짖고 통탄해 하며 가져온 선물을 단종에게 닿게끔 강물에 던진다. 영화 '레 미제라블(2012)'에서 1832년 파리 시민들이 봉기를 하고 길에 바리케이드를 쳐야 했을 때 각 집에서 창문 너머로 가구를 던져주는 신과 같은 뭉클뭉클함이다.
역사 속 비극은 늘 소비되는 소재이지만, 주변적 소재가 되는 '그 이후'를 견뎌야 하는 시간을 깊이 있게 다룬 이 영화는 도리어 드라마가 갖는 본질, 영화적 속성에 한 발 더 접근한 것으로 비친다. 천재적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장항준 감독의 남다름이다.
기록에는 '죽은 선왕과 그의 시체를 거둔 백성 엄흥도'로만 남아 있다. 감독은 엄흥도가 죽음을 무릅쓰고 왕의 시신을 수습한 이유와 생전의 두 사람의 관계를 유추해가기 시작했다 한다.
그 결과, 왕이 아닌 한 인간 이홍위로 살아가야 했던 단종의 시간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마을 백성과의 소통, 소박한 일상에서 조금씩 관계를 바꿔가는 과정 등을 통해 백성을 위해 고뇌하는 아름다운 왕으로 입체화시켰다.
권력의 야욕에서 비롯된 탐욕스러운 쿠데타의 승자는 과연 승자로서 그들의 논리대로 화려하게 부상돼야 하는가. 희생된 자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기록조차 없어야 하는가.
그러나 강 건너 청령포를 향해 곡하는 백성들의 행렬이 있었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던 금성대군이 있었다. 역사를 알고 스토리의 결말을 알면서도 민심이 아름답고 영화 속 금성대군을 응원하는 것은 우리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꿈꾸고 지켜야 할 정의가 있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파스칼은 '힘으로 상징되는 권력과 도덕으로 대표되는 철학이 대결한 결과의 산물'이라 했다.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고도 했다.
15세기의 단종은 어린 나이에 무능할 수밖에 없었고, 쿠데타를 일으킨 세조는 폭력을 발판으로 삼았다. 21세기 현실정치에서 권력은 무능하지 않고 폭력적이지 않은 보편적 정의를 실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이 꿈꾸고 지켜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