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광기의 시대가 남긴 아버지의 초상
박영서 2026. 2. 9. 17:42

아버지의 광시곡
조성기 지음 / 한길사 펴냄
파란만장한 아버지의 초상화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그늘을 응시하는 소설이다. 저자는 경쾌하고 해학적인 문체를 앞세워 아버지의 삶을 그리지만, 그 웃음의 결은 가볍지 않다. 그것은 시대의 폭력 속에서 부서진 한 인간의 존엄을 기억하려는 문학적 태도다.
교사이자 교원노조 활동가였던 아버지는 5·16 쿠데타 이후 ‘혁명정부’의 탄압으로 하루아침에 기약 없는 미결수가 됐고, 출감한 후에는 날마다 술에 취하는 실직자가 됐다. 중앙정보부의 감시는 출감 이후에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저자는 이 몰락의 과정을 ‘역사가 토해놓은 구토물’을 뒤집어쓴 아버지의 모습으로 형상화한다. 그러나 소설은 비극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닮은 기행, 아들의 진로 선택에 격분해 러닝셔츠를 찢고 뛰쳐나가는 모습 등 소설은 유머와 애잔함을 교차시킨다. 이는 아버지를 희화화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끌어안는 방식이다.
소설은 각각이 완결성을 가진 46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기억은 언제나 그렇게 불쑥 찾아온다는 듯, 소설은 직선적 서사를 거부한 채 파편의 형식으로 과거를 호출한다. 독자는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페이지든 펼칠 수 있다. ‘광시곡’이라는 제목처럼 소설은 일관된 선율보다 격정과 변주로 이루어진 기억의 합주에 가깝다.
소설이 마음에 오래 남는 이유는 ‘사랑받는 아픔’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다정다감하지 않지만, 작가는 그 기억을 꾸미지 않는다. 소설은 아버지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질문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삶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를 어떤 태도로 기억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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