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고 깨뜨려, 새로움 얻는 K-도자” 류인권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 [인터뷰]

이나경 기자 2026. 2. 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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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문화 틀 깨고 ‘경험·소비’ 향해 민간과 협업
온오프라인 판로 확대로 젊은 세대 접점 늘려
참여형 공간 탈바꿈…도자공예 거점 전국 확장
지난 달 27일 이천 도자지원센터에서 만난 류인권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는 국내 도자문화를 혁신하며 도민이 일상 가까이 도자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나경기자

“반도체의 공정은 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흙을 빚고, 불을 견디며 탄생하는 오랜 유산에는 선조의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이처럼 선조의 지혜가 담긴 여러 유산이 오늘날 ‘K-콘텐츠’, ‘한류’라 불리며 세계를 이끌고 있습니다. 값싼 중국산 도자가 물밀듯 밀려오며 혹자는 위기라 말하지만, 여백의 미를 강조한 달항아리처럼 우리 도자 고유의 정신엔 흉내 낼 수 없는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도자에 유연함의 정신을 장착해 다양한 플랫폼에서 다양한 세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겠습니다.”

고온의 열을 다루는 기술은 이 도시에서 낯설지 않다. 수원과 이천, 용인과 평택으로 이어지는 경기도의 풍경은 첨단 산업의 언어로 익숙하지만, 그 뿌리를 따라가면 또 하나의 ‘세라믹’이 있다. 흙을 빚고, 불을 견디며, 수천 도의 온도를 몸으로 기억해 온 도자다. 1,000도를 훌쩍 넘는 열을 다루는 도자의 세계는 반도체 공정의 물성과 맞닿아 있고, 경험과 축적으로 온도를 맞춰온 전통 가마의 기술은 현대 산업의 원형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류인권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는 최근 이천 도자지원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재단의 청사진과 방향성을 자신 있게 내비쳤다. 그는 오랜 기술을 현재형으로 불러냈다.

류인권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 한국도자재단 제공


류 대표는 우선 “만져보고, 던져보고, 깨뜨려보는 전시를 하겠다”라고 밝혔다. 도자를 ‘귀하게 모셔두는 문화’가 아니라, 다시 경험하고 소비되는 문화로 돌려놓겠다는 것이다. 류 대표는 한국도자재단의 역할을 ‘문화경제’라는 단어로 정리했다. 도자문화가 전시와 향유에 머무르지 않고, 유통과 소비, 지역경제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그는 “문화를 키워서 산업을 일으키는 방식이 아니라, 팔리는 것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값싼 중국산 도자에 밀려 한국 도자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상황에서 시장에 나가야 소비자의 반응을 알고, 자원을 어디에 써야 할지 보인다는 논리다.

이 같은 인식은 적극적인 판로 개척 전략에서 구체화된다. 온라인에서는 10·20세대와 친숙한 쇼핑 플랫폼 무신사 29CM, 오늘의집, 네이버 등 민간 플랫폼과 협업한 기획전을 확대해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넓힌다. 오프라인에서는 서울 코엑스 등 대형 공간 활용과 함께, 경기광교청사 내 경기문화라운지에 ‘경기도자상점’을 조성해 상설 판매 거점으로 키울 예정이다.

류인권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가 도자문화 활성화를 위한 방향성을 밝히고 있다. 한국도자재단 제공


올해와 내년을 잇는 핵심 무대는 2026 경기도자페어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콘텐츠와 함께, ‘달항아리 100인전’ 같은 특별전을 통해 도자문화의 상징성과 실제 유통 성과를 동시에 겨냥한다.

공간의 성격도 달라진다. 경기도자박물관과 도자미술관은 관람 중심에서 참여형 문화공간으로 확장된다. 미술관에서 준비 중인 ‘뮤지엄 크리에이티브 랩’은 도자를 만지고, 실험하고, 때로는 깨뜨리는 과정을 통해 재료의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한다. 류 대표는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은 경험에서 나온다”며 “특히 오는 가을 열리는 국제 도자예술 행사 ‘경기도자비엔날레’는 한국 도자의 위상을 확장할 핵심 사업으로 단기 행사가 아니라, 예술성과 산업성이 함께 작동하는 문화경제 플랫폼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예술감독은 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감독이자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로 활동해 온 이대형 감독이 선임됐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글로벌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경험을 가진 이 감독은 도자를 전통 공예가 아닌 동시대 예술과 산업, 대중문화가 만나는 매체로 확장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주·이천·광주에 집중된 도자 지형을 31개 시군으로 넓히는 확산 전략도 세웠다. 경기북부권 도자·공예 복합문화센터를 시작으로 권역별 거점을 만들고, 각 지역이 스스로 도자문화를 축적하도록 지원한다. 이는 문화 향유의 기회를 고르게 나누는 동시에, 지역 기반 산업을 키우는 전략이다.

류인권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 한국도자재단 제공


류 대표는 도자공예의 미래를 ‘커뮤니티 비즈니스’로 확장해 바라본다. ‘도자공예는 청년뿐 아니라 경력단절 여성, 은퇴 세대에게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설비나 자본 없이도 지역 안에서 창작과 생산이 가능하고, 취미가 곧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류 대표는 이를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한 형태로 바라봤다. 그는 “도자문화는 K-컬처의 핵심 자산”이라며 “장작가마에서 축적된 경험의 과학, 그리고 한국 도자에 깃든 ‘여백의 미’, 여백을 이해할 때 한국 도자의 가치도 함께 이해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 “여백을 품은 한국 도자는 결국 생활이자 문화이고, 그 자체로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콘텐츠”라며 “도예인이 안정적인 창작 환경 속에서 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도민들께는 전시와 교육, 축제 등 다양한 문화 접점을 통해 도자문화를 일상에서 경험할 기회를 확대해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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