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OB 말뚝 그리고 골프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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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서 가장 말이 없는 물건이 있다면 단연 OB 말뚝일 것이다.
이상하게도 OB 말뚝은 늘 드라이버가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날, 자신감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이번엔 넘겨도 돼"라는 속삭임이 들릴 때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래서 골프에는 OB 말뚝이 필요하다.
OB 말뚝이 없는 골프는 규칙 없는 자유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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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한국] 골프장에서 가장 말이 없는 물건이 있다면 단연 OB 말뚝일 것이다. 하얀 기둥 하나. 아무 설명도, 감정도 없다. 그러나 그 앞에 서는 순간 골퍼의 마음은 요동친다.
OB 말뚝은 단순한 규칙 표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나아가려 하는지 묻는 물음표다.
이상하게도 OB 말뚝은 늘 드라이버가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날, 자신감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이번엔 넘겨도 돼"라는 속삭임이 들릴 때 그 자리에 서 있다. 말뚝은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내 마음뿐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경계를 싫어한다. 경계는 자유를 제한하고, 가능성을 끊는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말뚝을 적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문제는 말뚝이 아니라 그 너머를 넘보고 있는 나 자신이다.
OB는 대부분 기술 부족이 아니라 판단의 오류에서 비롯된다. OB 말뚝 안쪽이 넓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확률이 낮다는 걸 알면서도 '잘 맞으면 괜찮을 것'이라는 가정에 몸을 맡긴다. 이는 골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에서도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이번엔 예외겠지." OB 말뚝은 그 말에 대한 냉정한 답변이다. 예외는 없다.
OB는 처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호 장치다. 코스를 보호하고, 사람을 보호하고, 무엇보다 골퍼의 마음을 보호한다. 만약 이 경계가 없다면 골퍼의 욕망은 끝없이 팽창하고 질주할 터이다. 끝없는 도전은 곧 무모함이 된다.
OB 말뚝은 묵시적(默示的)으로 말한다. "여기까지가 네 몫이다." 냉정하지만 자비로운 이 문장은 들리지 않고 보인다. 다만 골퍼가 OB 말뚝이 전하는 문장을 읽지 못할 뿐이다.
경계를 존중하는 골퍼는 흔들리지 않는다. 노련한 골퍼는 OB 말뚝을 보지 않는다. 대신 안쪽의 여백을 본다. 그들은 경계를 피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가장 멀리 가는 길임을 안다. 이는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만이 흔들리지 않고 오래 간다.
OB 말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골퍼에게 항상 같은 질문을 던진다. '너는 지금 무엇을 믿고 있는가? 확률인가, 희망인가? 절제인가, 허영인가?'
공이 OB 말뚝을 넘는 순간 우리는 그때야 비로소 깨닫는다. 넘은 것은 공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골프에는 OB 말뚝이 필요하다. OB 말뚝이 없는 골프는 규칙 없는 자유와 같다. 골프는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을 때 가장 품격을 드러낸다. 하얀 말뚝 하나가 서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어쩌면 코스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장치다.
OB 말뚝 앞에서 주저하는 순간, 골프는 이미 스윙을 넘어 인간의 심리학이 된다. 그리고 그 심리를 다스리는 사람만이 결국 가장 멀리, 가장 오래 간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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