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만든 착시 효과…그 이후엔?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호황 이후 드러날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
#뉴스 1 우리나라의 2025년 총수출은 7097억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은 미국과 독일, 중국, 일본, 네덜란드에 이어 수출 7000억 달러 고지를 밟은 세계 6번째 국가가 됐다. 영국이나 프랑스도 아직 달성하지 못한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으로 출발해 수출 7000억 달러 고지에 오른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올해 들어서도 수출 흐름은 여전히 좋다. 지난 1월 수출은 작년보다 33% 증가한 658억 달러를 기록해 8개월 연속 전년 대비 증가세가 이어졌다. 역대 1월 중 최고 실적이다.
반도체 착시 :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 가운데 반도체 한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에 달한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1734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24.4%를 차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15개 주요 수출 품목 가운데 반도체와 컴퓨터, 자동차·선박, 바이오를 제외한 나머지 10개 품목의 수출은 오히려 감소했다. 중국의 공격적인 설비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 제품 단가 하락, 여기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조치까지 겹친 탓이다. 중국과의 경쟁이 심화된 업종들의 부진은 경기 순환적 요인이 아니어서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도 별로 없다.
올해 수출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역시 반도체다. 1월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205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2개월 연속 200억 달러를 넘는 기록을 세웠고, 1월 전체 수출의 32.2%를 책임졌다.

반도체에 기댄 1% 성장률의 민낯
#뉴스 2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연간 성장률은 1.0%였다. 지난해 11월 제시한 전망치와 일치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나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연구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2%에 가까운 성장률을 예상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월 기업경기 조사'에 따르면, 전 산업의 경제심리지수(CBSI)는 전월 대비 상승했다. 1월 제조업 CBSI는 97.5를 기록하며 기준선(100) 회복을 눈앞에 뒀다. 2022년 6월 이후 3년7개월 만의 최고치다. 대기업 심리지수는 이미 100을 훌쩍 넘기며 경기가 좋다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경기선행지수는 2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착시 : 2025년 기록한 한국의 성장률 1.0% 가운데 반도체 단일 품목의 성장기여도는 1.2~1.5%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전체 성장률이 1%에 그쳤다는 것은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산업, 즉 건설과 철강, 석유화학 등과 내수가 성장률을 오히려 0.2~0.5%포인트 끌어내렸다는 뜻이다.
기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의 성장기여도는 거의 0%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은행은 올해도 반도체와 IT 부문을 제외하면 성장률이 잘해야 1.4%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본다. 기업 경기 조사에서 상승세를 이끈 것도 오로지 '수출 대기업'뿐이었다. 1월의 비제조업 CBSI는 전월보다 하락하며 뒷걸음질했다.
#뉴스 3 이재명 대통령의 '코스피 5000 시대' 공약은 취임 1년도 채 되지 않아 현실이 됐다. 코스피는 지난해 10월 4000선을 돌파한 뒤 가파르게 상승했고, 1월27일에는 종가 기준 사상 처음으로 5000을 돌파하며 새 역사를 썼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반도체 호황, 기관과 외국인의 순매수, 정부의 상법 개정과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이 주가 상승을 뒷받침했다. 대기 자금도 여전히 풍부하다. 투자자예탁금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고, 지난해 말 27조원이던 신용거래융자 잔액도 30조원을 넘었다.
반도체 착시 : 코스피의 질주 역시 반도체가 주도했다. 코스피 3300선까지는 전 종목이 고르게 올랐다고 하지만, 그 이후는 반도체가 홀로 끌어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가 없었다면 코스피는 4000선을 넘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두 회사의 코스피 상승 기여율은 40%를 넘는다.
현재 반도체 업종의 호황은 역사적으로도 드물다. 1월 메모리 평균 고정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7~8배 이상 급등했다. 이번 초호황은 AI 열풍이 촉발한 구조적 호황이란 점에서 질적으로 과거와 다르기도 하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여전히 실적 대비 주가가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2026년도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에 대한 시장 평균 전망치는 117조원이다. 6개월 전보다 200%나 늘어났지만, 주가는 6개월 전과 비교해 100% 남짓 상승하는 데 그쳤다. 주가 상승이 이익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두 회사를 제외한 나머지 상장사들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연간 영업이익이 전체 상장사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1.5%로 역대 최고 수준이 될 전망이다.

1990년대 반도체 호황이 남긴 교훈
역사적으로 메모리 반도체의 호황 사이클은 가끔 찾아왔다. 30년 전, PC 수요가 급증했던 1990년대에도 그랬다. 1993년 당시 4Mb DRAM 가격은 1992년 15달러 수준에서 1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1995년까지 우리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정부와 기업은 이를 한국 경제의 본질적인 경쟁력 강화로 오해했다. 차입 확대와 공격적 투자 기조가 이어졌다. 그러나 1996년 초, 갑자기 반도체 가격이 70% 이상 급락했다. 물론 반도체 때문만은 아니지만, 다음 해인 1997년에는 우리가 모두 알 듯이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연간 성장률 1%와 코스피 상승률 100%는 어울리는 숫자가 아니다. 알고 보면 이 역시 반도체 덕분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법인세 납부액은 약 26조원으로 우리나라 기업이 낸 전체 법인세의 약 23%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산업은 지금 사실상 성장률 제로의 늪에 빠져 있다.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대규모 설비투자를 해도 고용 효과가 크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10억원당 약 2.1명 수준으로 자동차 산업(7.4명)과 비교하면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도체 산업의 초호황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정점은 반드시 온다. 2027년쯤이면 중국의 대규모 반도체 투자도 본격 양산 단계에 돌입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유일한 엔진이 반도체다. 반도체라는 엔진이 꺼지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내수는 여전히 어렵고, 골목상권과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경기는 달라진 것이 없다.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달까지 18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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