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쓴 책이 '내 세금' 턴다? 논란의 이면 [AI 책 딜레마①]
AI 책의 딜레마① 납본과 보상금
책 영구 보관하는 제도 ‘납본’
도서관 책 기증하면 보상금 지급
AI로 도서 범람해 혈세 논란인데
세금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것

# 그런데, 이런 책의 불문율이 깨지고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혼란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몇초 만에 몇십 페이지 분량의 글을 쏟아내니 '창작의 고통'은 이제 옛말이 된 듯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적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제도마저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최근 수면 위로 부상한 '납본納本 보상금 논란'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지금 출판업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더스쿠프가 AI 도서와 납본 제도를 둘러싼 이슈들을 취재했습니다. 視리즈 AI가 쓴 책의 딜레마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지식과 이야기가 책으로 묶여 나오고 있습니다. 그 양은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2024년 6만4306종의 도서가 발행됐습니다. 하루 평균 176종의 책이 세상에 나오고 있는 셈입니다(대한출판문화협회).
도서관은 이 많은 책을 어떻게 수집하고 보관할까요? 세계 국가 대부분은 이 과정 자체를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지식을 보존하고, 미래 세대에 온전히 계승하자는 취지에서입니다. 흥미로운 건 세계 각국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공통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고요? 바로 '납본納本(legal deposit)'입니다.
생소한 단어지만, 뜻은 어렵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도서관법 제21조 '도서관자료의 납본'에 따르면 누구든지 책을 발행하거나 제작한 경우, 30일 이내에 해당 책을 국립중앙도서관에 제출해야 합니다. 발행 주체가 알아서 책을 납부하므로 국가가 장서藏書(책을 간직함)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납본의 장점입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외에 국회도서관도 국회도서관법에 따라 납본 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방식은 이렇습니다. 책 같은 일반도서는 2부를 내야 합니다. 전자책(e-Book)은 예외 대상이지만, 국립중앙도서관으로부터 '책 주민등록번호'인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부여받았다면 온라인으로 파일을 제출해야 합니다. 페널티도 있습니다. 납본하지 않으면 도서 정가의 10배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물론 도서관이 공짜로 책을 가져가는 건 아닙니다. 해당 책의 '정가 1부'만큼의 금액을 보전해줍니다. 가령, 1만원짜리 책 2부를 납본하면 1만원을 주는 식이죠. 전자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 | 뉴시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9/thescoop1/20260209120427111wmcw.jpg)
도서관 납본 규모가 최근 부쩍 늘어난 것도 논란에 불을 지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따르면 2021년 16만9000권에서 2024년 17만7000권으로 3년 새 8000권 증가했죠. 납본 보상금도 같은 기간 14억4212만원에서 16억3597만원으로 13.4%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납본 규모와 보상금 역시 18만6326권, 17억817만원으로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자 출판업계에선 "마우스 클릭 몇번에 만들어지는 '딸깍 도서' 때문에 세금이 낭비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AI 기술이 고도화한 시점에 공교롭게도 납본 통계마저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으니, '누군가 납본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의심이 나올 만합니다. 일부 미디어는 한술 더 떠 '납본 보상금 다 쓸어가는 AI 도서' '국민 세금이 AI 껍데기 책 사는 데 쓰였다' 등 제목의 기사도 쏟아냈죠.
정말 AI 도서가 납본 보상금을 싹쓸이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건 출판사 '루미너리북스'입니다. 이 회사는 2024년 8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1년간 9000권에 달하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는 휴일 없이 매일 24권씩 책을 만들어야 가능한 수치입니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루미너리북스는 지난 2일 홈페이지에서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생성형 AI로 책을 대량 만든 건, 이를 AI 언어모델의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겠다는 회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AI가 만든 데이터를 AI 학습에 쓰는 걸 '지식 증류'라고 하는데, 이는 AI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기법이다. AI 도서를 납본 신청한 건 단순히 이행하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을 우려해서였다. 해당 신청서들도 올해 1월 국립중앙도서관에 의해 전부 비승인 처리됐다. 루미너리북스는 납본 보상금을 단 한푼도 받지 않았다…."
![[사진 | 뉴시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9/thescoop1/20260209120428501gvah.jpg)
[※참고: 국립중앙도서관은 지난해 7~9월 루미너리북스가 납본 신청한 전자책 395건을 분량 미달과 공개자료 편집, 내용 반복 등의 이유로 납본 제외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밝혀지지 않은 속사정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중요한 쟁점인 '보상금' 문제에선 양측 진술이 맞아떨어집니다. 출판사는 '받지 않았다'고 했고, 도서관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으니까요. 몇몇 미디어가 의혹을 제기한 '납본 보상금 싹쓸이 사태'는 현시점에선 과장됐을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진위를 차치하고, 그럼 최근 납본 규모가 부쩍 늘어난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 물음에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기준을 충족하는 납본 신청량이 많아졌기 때문"이란 원론적인 답을 내놨습니다. 왜 납본 신청량이 많아졌느냐는 질문엔 "그것까진 알 수 없다"면서 말을 아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질문의 답은 출판업계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남기선 도서출판 쿵 대표는 "자료 수집을 AI가 상당 부분 도와줘서 책 쓰기가 편해졌다는 얘기를 작가들한테서 많이 듣는다"며 "표지 디자인, 레이아웃 추천 같은 제본 작업도 AI가 도와주니까 책, 특히 전자책 만드는 속도가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다"고 말했습니다.
AI 덕분에 책 출판 과정이 획기적으로 단축했고, 그것이 납본 신청 증가로 이어졌다는 논리입니다. 소폭이긴 합니다만, 2024년 신간 발행 종수가 6만4306종(대한출판문화협회)으로 전년 대비 2.3% 늘었다는 걸 감안하면 어느 정도는 맞는 분석인 듯합니다.
![[사진 | 뉴시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9/thescoop1/20260209120429860oumz.jpg)
이런 상황은 몇몇 질문을 떠오르게 합니다. "납본 시스템이 AI 도서를 잘 솎아내고 있고, 보상금도 주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주장을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까요? 보상금만 막아냈다면 그것으로 끝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납본 보상금 논란에 담긴 함의含意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한편에선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돕는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제도의 허점을 파고드는 도구로도 악용될 수 있는 'AI의 양면성'이 이번 논란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視리즈 'AI 책의 딜레마' 2편에서 이어 나가보겠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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