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뉴스] 잠에서 깨어난 ‘백제피리’, 발견부터 연구 과제까지

조영호 2026. 2. 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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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전]

■ 프로그램명: KBS대전 생생뉴스
■ 방송시간 : 오전 8시 30분(1Radio 94.7 MHz)
■ 진행 : 조영호 기자
■ 출연 : 심상육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책임연구원
■ 구성 : 한세희 작가
■ 기술 : 민경수 감독

■ 유튜브 영상 바로 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xdy_Z_9ZzI

▶ 조영호기자 (이하 조영호)
1500여 년 전 고대 백제인들은 과연 어떤 음악을 듣고 살았을까요?
최근 부여 관북 유적 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삼국시대 최초의 가로피리, 횡적이 공개가 됐습니다. 이 피리는 지난해 3월 발굴이 됐는데 이 당시의 음악 문화는 물론 백제가 어떤 나라였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생생 인터뷰에서는 피리 발견 과정과 역사적 의미 짚어보겠습니다. 심상육 공립 부여 문화유산연구소 책임연구원 나와주셨습니다. 연구원님 어서 오세요. 먼저 이 피리 여쭤볼게요. 이번에 발견된 유물이 횡적, 가로로 부는 피리라고 하죠.
이번 발굴조사에서 이 횡적은 어떻게 발견되게 된 건가요?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심상육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책임연구원 (이하 심상육)
예, 지난해 초봄인 3월에 직사각형의 백제시대 구덩이를 조사하던 최건욱 연구원이 다급하게 저를 불렀습니다. 대나무가 나왔다고 그래서 깊이 1m를 넘게 판 구덩이에 들어가 보았더니 유기물 사이에서 대나무가 보이는 거예요. 또 대나무에 구멍이 뚫려 있는 거예요. 이거 피리, 관악기 구나 했죠. 그래서 위에 보고해서 보존과학 담당자가 현장에서 수습하여 국립 부여문화유산연구소 보존과학실로 옮겼습니다. 피리는 이렇게 발굴이 되었습니다.

▶ 조영호
이게 처음에는 대나무다. 그러니까 그전에도 이제 이 피리를 대나무로 만들었나 보죠? 그래서 이제 심상치 않다. 이제 이런 느낌이 이제 있으셨을 텐데 이 유적 유물 연구를 많이 하시니까 이 횡적이 발견된 곳이 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논하던 조당 공관 인근 구조 구조물이라고 이제 들었는데 우선 횡적이 어떤 악기인지 형태와 특징 뭐 지금 대나무 이렇게 소개를 해 주셨는데 좀 어떤 악기인지 한번 소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심상육
간략하게 횡적은 가로피리입니다. 가로 횡자와 피리 적자가 붙어 있어서요.
현재 대금 중금 소금류처럼 입에 관악기를 가로로 붙이고 불어서 연주하는 악기를 말합니다.

▶ 조영호
근데 이게 지금 이제 대금 이런 거 말씀하셨잖아요. 피리라고 이렇게 하신 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심상육
아 피리라고 하는 것이 조금 백제의 그 악기가 그렇게 많이 지금 나와 있지 않고 삼국사기에도 그렇게 많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금동대향로에 오학사 중에 세로로 부는 피리가 종적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발굴 초반에는 이 대나무 악기가 아 저기 금동대향로에 나오는 오악사의 종적이다.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종적은 앞뒤가 다 구멍이 뚫려 있는 악기를 말하는 거고 이 횡적이라고 하는 것은 한쪽이 막혀서 그 가운데로 이렇게 불어서 이제 옆으로 부는 악기라고 해서 저희가 횡적인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 조영호
이게 서양 악기의 플루트 그런 거 그런 형태인 거죠.

▷ 심상육
그런 거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조영호
알겠습니다. 이게 지금 앞서 말씀드렸지만 1500여 년 고대 백제 때 유물이지 않습니까?
긴 시간 동안 나무로 만든 악기가 땅 속에 남아 있다는 남아 있었다는 점도 이 놀라운데 발견 당시 모습과 보존 상태 어땠습니까?

▷ 심상육
이번에 발굴된 관악기는 전체가 남아 있지는 않았습니다. 전체 길이의 3분의 2 정도만 남아 있었는데요.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는 곳을 치구라고 하는데 치구 1개 그리고 손가락으로 열고 막아 음을 맞추는 지공이 3개 있습니다. 원래는 6개 정도가 있어야 하는데요. 그리고 이제 대나무이기 때문에 속이 비어 있어서 오랜 세월 동안 이제 그 유기물에 눌려서 그러겠죠. 이렇게 눌려 있는 상태로 출토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게 아끼다 보니까 원래가 한 30cm 정도 됐는데 그 3분의 1 정도 그걸 찾기 위해 상당히 우리가 노력했는데 그건 그 안에서 확인되지는 않았어요.

▶ 조영호
이게 1500년이면 대나무라고 말씀을 해 주셨잖아요. 이게 훼손이 되잖아요. 오랜 시간 세월 동안 이게 그래도 한 삼 분의 일 정도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참 신기하기는 합니다. 특히 많은 분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이 있을 텐데 이 피리가 일반적인 공간이 아니라 화장실로 추정되는 구덩이에서 발견됐다. 왜 그곳에 있었는지 당시 상황이 좀 유추가 가능하실까요?

▷ 심상육
예 많은 분들이 왜 화장실에서 악기가 나온 거냐는 질문을 우리 조사단에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점은 당시 상황을 그냥 우리도 추론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단순하게 이제 악기가 잘려져 있는 상태니까 용도 폐기된 악기를 화장실에 버렸다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른 한 가지는 요즘 화장실에 가면 비대 혹은 휴지를 쓰잖아요. 과거에는 이게 없었습니다. 이번 악기와 함께 출토된 하나의 유물 막대기가 조금 주목됩니다. 이 막대기는 나무 껍질을 모두 제거한 것인데요. 그런데 이러한 막대기는 고대 화장실에서 종종 확인되기도 합니다. 이름을 뒤처리개라고 합니다. 아 요즘 화장실 요즘 화장실에서 쓰는 화장지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뒤처리개의 그 막대기와 이번에 나온 대나무 횡적이 어떻게 보면 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이 악기가 용도가 폐기되고 난 다음에 뒤처리개, 고대 화장지 정도로 쓴 것이 아닐까? 우리도 한번 추정해 보긴 했습니다.

▶ 조영호
네 그때 당시에 지금 연구원님 말씀으로 용도 폐기가 된 상태에서 이제 화장실에 이제 그거를 폐기한 게 어떻게 보면 좀 더 보존 기간이 어떤 화학적 작용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 이게 좀 보존기관이라서 우리한테 이제 눈에 띈 그런 걸로도 좀 이해를 할 수도 있겠네요.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도.

▷ 심상육
맞습니다. 화장실 안이라는 공간이 습하고 유기물이 상당히 많이 있어서 사회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유기물이 많은 공간에 이런 목재들이 같이 있으면 그렇게 썩지 않습니다.

▶ 조영호
그러니까요. 그런 어떤 게 있을 수 있어서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뭐 정확한 기록이 있지 않은 한 추론을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제 그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셨을 텐데 이 피리, 백제 당시에는 어떤 용도로 좀 사용이 됐을 거라고 좀 생각이 되는지요.

▷ 심상육
삼국사기에는 백제 악기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타악기인 고 현악기인 공우와 관악기인 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적이 이번에 발굴된 가로로 부는 피리인 횡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삼국사기 백제 음악 기록은 백제 당시 궁중 음악을 연주한 악기를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번에 악기가 발견된 곳이 백제 왕궁이기 때문에 왕궁에서 왕실 음악을 사용할 저기 음악할 때 연주했던 악기 그 궁중 악기로 보입니다.

▶ 조영호
네 이 연구소에서는 이 횡적을 오늘날의 소금과 비교해서 설명해 주셨는데 좀 어떤 차이가 좀 있을까요?

▷ 심상육
우리가 이제 전문가랑 그 백제의 행적을 이제 저기 연구를 해서 재현을 해보고 했는데요. 요즘에 이제 가로로 푸는 소금과 가장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길이가 현재 소금은 40cm가 넘는데 우리가 복원한 것은 31. 2cm 정도로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 조금 길이가 짧다 보니까 현재 소금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길이가 짧아서 그런지 음 높이가 하는 반 정도 높고요. 그리고 대신에 음폭이 조금 좁아서 지금 그 연주곡을 하기에는 조금 한계가 있다는 그런 소리를 들었어요.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조영호
횡적과 함께 이번 조사에서 못 간 329점이 출토된 것도 큰 성과로 꼽히고 있지 않습니까?
이 목간이 어떤 자료인지부터 한번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심상육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를 종이와 함께 나무에도 붓으로 글을 써 기록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지목 병용기라고도 하는데요. 그중에 나무에 글을 써서 적은 것을 목간이라고 합니다. 종이에 문자를 적는 것이 쉽겠지만 목간의 글을 적으면 한편으론 좋은 점도 있습니다. 그중 현재 글을 잘못 쓰거나 작성한 내용을 수정할 경우에 먹으로 종이에 쓴 것은 수정하는 것에 조금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목간의 경우에는 부숴 쓴 곳을 칼로 지우기처럼 우려내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번 관북 유적에서는 칼로 깎아낸 목간 부스러기인 삭설도 상당히 많이 발굴이 되었습니다.

▶ 조영호
네 이 목간들을 통해서 백제의 행정 운영 방식이나 사회 구조를 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좀 볼 수 있을까요?

▷ 심상육
제가 지금 설명하면 좀 일반인들이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요. 제가 한번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관북유적에서 출토된 목간 내용은 백제 중앙에 상중하 전 후의 부의 명칭과 지망 지명, 현재의 공주를 웅진군으로 위치를 알 수 없는 개비군 요비성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말하는 그 백제 십육관등 직급에 해당하는 시덕, 문독, 무독, 자군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그런데 직급 중에 중하위 관등만이 기록된 특징이 있는데 중하위 직급은 실무 행정을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것으로 현재의 주무관급에 해당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목간을 수정하거나 지휘부에 작성한 삭설이 다수 확인되었는데 삭설 내용의 직급과 이름이 나온 곳 혹은 연도를 나온 곳을 깎아낸 그 목과 삭설이 많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하위 관등과 인명 다수의 삭설 등으로 보아 이번 출토 목가는 이곳이 백제 왕국의 관청 공간이었다는 점을 알려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조영호
지금 연구원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예전에 이제 역사 교과서에서 백제의 행정 조직 뭐 할 때 지금 봤던 그거를 좀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 역사를 전문으로 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좀 생소하긴 해요. 그런데 이제 그런 거가 아무래도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고 그 역사를 알아야 또 여러 가지 연구라든지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으니까 이번에 어떤 목간이나 이런 게 훨씬 더 도움이 되겠네요. 이런 어떤 백제 행정 조직이나 백제사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요

▷ 심상육
예 그렇죠 지금 이제 백제 자신이 이제 기록한 이제 역사서가 이제 있다고 하지만 남아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제 540년대에 백제 사비 초기에 그런 실물 기록이 남았기 때문에 이 기록이 상당히 연구에 백제사 연구에 주목 저기 주목이 될 것 같습니다.

▶ 조영호
네 이번 발굴에서는 이 횡적, 가로피리와 함께 목간이 다양하게 이제 출토가 됐는데 이와 함께 다양한 부분들이 확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연구자 입장에서 보실 때 이 유적을 좀 한 장면으로 이렇게 상상해서 그려보신다면 좀 어떨까요?

▷ 심상육
여기를 한 장면으로 상상하기에는 조금 힘들 것 같고요. 두 장면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목가는 6세기 대의 것입니다. 538년에 백제가 공주에서 부여로 도읍을 옮기고 국가 체계 정비를 하는 과정에서 중앙행정관청에서 생산한 것입니다.
그리고 횡적은 중앙행정관청 공간이 왕국 내의 핵심 공간으로 변모한 그 공간에서 나온 물품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조금 이해해 주시면 되지 않을까 조금 싶습니다.

▶ 조영호
이번 발견의 배경이 된 관북리 유적 한번 여쭤볼게요. 이 관북리 유적은 백제 사비시대 왕궁을 이해하는 핵심 유적으로 꼽히는데 저도 취재를 하기 위해서 가봤는데 거기가 좀 이 산등성이 정도는 아닌데 약간 이렇게 구릉지에서 조금 이제 올라간 형태의 어떤 거기에서 발굴 조사를 굉장히 많이 하시더라고요.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 관북리 유적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하실까요?

▷ 심상육
부여 관북리라는 지명이 있는데요. 그 관은 그 왕궁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왕궁이 북쪽에 있는 공간 그래서 관북이라는 명칭이 붙여져 있고 이 시기 대부분의 동아시아 고대 도성의 왕궁은 북쪽 중앙에 위치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관북리가 지금 부여의 북쪽 중앙에 부소산 밑에 있습니다. 그래서 백제시대의 마지막 시점에도 중심지는 이곳이었는데 현재는 뭐 그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는데 국립부여박물관의 메인 홀 중앙에 전시된 부여 석조가 관북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걸 생각하면 이곳이 백제 사비기의 가장 중심이었다. 그리고 관북 유적 뒤편에는 부소산이 있고요. 부소산에는 서울의 몽촌토성 공주의 공산성과 같은 부소산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관북 유적 바로 남편에는 정림사의 5층탑이 있는 정림사인 국가 사찰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관북 유적은 사비백제 도성의 중심 공간지였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조영호
네 지금 아까 말씀을 드렸지만 횡적, 가로피리가 지난해 발굴이 되지 않았습니까? 여러 가지 그동안에 이게 가로피리다 이런 정도로 사용이 됐을 것 같다라는 연구 진행 과정 한번 설명이 가능하실까요?

▷ 심상육
처음 3월에 나왔을 때는 이걸 이제 현장에서는 저기 계속 유지할 수 없어서 보존과학실로 바로 옮겼습니다. 보존과학실로 바로 옮겼는데 이 목재 유물 같은 경우가 이제 이미 그 내부 조직은 붕괴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걸 보존 처리하고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사진을 찍고 하는 자체도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어 이걸 보존 한편으로는 유물 자체는 보존 처리를 하고 이걸 어떤 식으로 이제 복원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유물을 3D 스캔을 했고요. 3d스캔한 자료를 바탕으로 원래 형태로 피기도 하고 그 피기도 한 것을 3D 스캔을 통해서 실물로 한번 저기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만든 걸 가지고 악기로 이제 재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국립국악원 연구자와 같이 협업을 통해서 실물 지금 현재의 재연 품 31cm 2cm 되는 재연품을 조금 만드는 그런 걸 하고 이번에 지난 2월 5일날 이걸 이제 직접 연주자가 연주하는 연주까지 한번 하는 것으로 조금 진행을 해 보았습니다.

▶ 조영호
네 마지막으로 연구원님 이번 횡적 발굴을 계기로 추가로 기대하고 있는 유물이나 뭐 다른 연구 계획 있으면 짧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심상육
일본 서기 등의 백제 음악이 일본에 전해 전래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일본에 남아 있는 관련 자료를 심도 있게 연구하고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과 비교한다면 백제 왕실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 조영호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심상육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책임연구원이었습니다.

조영호 기자 (new301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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