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습지의 날에 되새겨보는 제주 선인들의 물 문화

할아버진 수감(水監)이셨다. 일종의 물 감독관인 수감은 과거 물, 특히 농업용수가 귀했던 제주 지역에서 물을 고르게 분배하고 관리하던 '수리계(契) 관리인'을 뜻한다. 지질 특성상 물 빠짐이 좋은 제주도의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농업용수를 통제, 관리하기 위해 마을 단위로 수감을 두었다. 마을 수리계에서 선출된 수감이 물 대기를 관리하고, 용천수나 수로를 통한 농업용수를 통제하거나 배분했다.

선흘리 상동 주민들은 1938년 봄, '용수접(接)'을 결성했다. '용수접'이란 지표수나 용천수가 없을 때, 식수로 사용하거나 소나 말이 먹을 물로 사용하기 위한 용수(用水)를 만들 때 협력하는 일종의 계(契)를 말한다.
제주의 마을은 용수를 관리하는 몇 개 공동집단으로도 나뉜다. 인근 주민끼리 땅을 내놓거나, 인력을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소들이 물을 먹을 때 사용할 연못이나 물통이 없을 때, 마을 내 몇몇 가구들이 모여 소 물 먹일 만한 곳을 만들기 위해서 협동했다. 마을 사람들이 먹을 식수를 개발하기 위해서도 모였다.
제주도는 연간 평균 1,900mm나 되는 다우지역이다. 연간 강수량은 총 33억 9천만 톤에 이른다. 하지만 그중 44%(14.9억 톤)가 지하로 빠져 버리고 37%(12.6억 톤)가 증발산량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사용할 수 있는 물이 한참 모자랐다. 오죽했으면 초가지붕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지샛물 혹은 지신물)을 받아 빨래나 생활용수로 썼을 정도였다.

중산간 마을의 물은 하천수, 봉천수, 'ᄎᆞᆷ물' 등으로 나눌 수 있지만, 어차피 수원(⽔源)은 모두 빗물이다. 취수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제주 사람들은 중산간 지대에 고인 지표수를 '죽은물(死⽔)'이라 했으며, 지하에서 솟는 샘물이 외부 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약 15도로 상온이기 때문에 '산물(생물, ⽣⽔)'이라 불렀다.

제주 중산간 마을에서도 큰 규모는 아니지만(크면 1000평 작으면 300평 정도), 늪지나 물통, 고인 지표수 등 천수(天水)를 이용하여 논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논농사 지을 만큼 물이 풍족하지 않은 지역이지만 제사나 명절 때 상에 '곤밥'을 '메(젯밥)'로 올리려고 '나록'이라 불리는 논벼(수도, 水稻)를 재배했다.

재재작년부터 중산간 마을 중심으로 화경(火耕) 농업뿐 아니라, 중산간 마을 여성의 일 역할과 물 문화, 원(原)경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조사팀과 같이 중산간을 누비면서 매번 느끼는 점은, "제주 선인들은 모두 다 전문가다!"라는 사실(史實)이다. 웬만하면 수준급 '돌챙이'고, 누구나 다 '물 소믈리에'다. 이제 우리는 제주 선인들의 지속 가능한 물 관리 비법과 물 문화를 기록하고 콘텐츠화하여 K-컬처 (K-Culture)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도록 애써야 하겠다. /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 진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