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중국 자본 앞잡이’? 쿠팡 주주들의 속셈은

“쿠팡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의 거대 물류기업들로부터 시장점유율을 빼앗아오기 시작했다. 이 중국 기업들은 중국 정부,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과 긴밀한 유착 관계(close ties)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반(反)헌정 세력 혹은 ‘윤 어게인’ 유튜버들이나 내뱉을 소리로, 사실관계부터 어긋나는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그러나 엄정한 국제 법률 문서에 기록된 문구이기도 하다. 지난 1월22일 미국의 쿠팡 주주들(손해배상 청구인)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ISDS(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절차) 중재의향서에 버젓이 적시되어 있다.
ISDS는 해외에 투자한 기업이나 사람이 그 나라 정부의 부당한 조치로 불이익을 봤다고 판단할 때 해당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중재’ 절차다. 중재의향서는 ‘이제 ISDS로 들어갈 테니 엄청난 손해배상금을 물어주기 싫으면 내 요구를 수락하라’는, 일종의 협박으로 보면 된다. 중재의향서를 발송한 뒤 일정한 기간 동안 양측의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본격적인 중재 절차가 시작된다.
한국에서 물류 사업을 영위하는 쿠팡㈜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주식회사로 등록한 쿠팡Inc의 100% 자회사다. 쿠팡Inc로 들어오는 자금 흐름은 대부분 쿠팡㈜, 즉 한국의 소비자들로부터 비롯된다(〈시사IN〉 제958호 ‘권한 100% 책임 0%, 기이한 면책 회로’ 기사 참조). 쿠팡Inc는 뉴욕 증시에 상장되어 있으며 이 회사의 주가는 쿠팡㈜의 영업실적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인다.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한국 정부는 개인정보 관리·세무·공정거래 등에 걸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한국 정부에 중재의향서를 보낸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투자회사로 쿠팡Inc의 주주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조사 때문에 쿠팡Inc의 주가가 지난해 말 대비 30% 정도 떨어지면서 엄청난 투자 손실을 봤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손해를 한국 정부가 배상하라는 것이다.
그린옥스 대표인 닐 메타는 쿠팡Inc 이사회 멤버다. 쿠팡 상장 당시 20%에 가까운 지분 가운데 대다수를 매각해 수조 원대의 투자수익을 달성했다. 지금은, 팔고 남은 쿠팡Inc 지분(3% 정도)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알티미터 대표인 브래드 거스너는 실리콘밸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헤지펀드계의 거물이다. ‘테크 기업 규제’를 반대하며 미국 정부와 싸우는 파이터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중재의향서에서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를 “전례 없는 공격(unprecedented assault)” “괴롭힘(harassment)”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회적 폐해를 일으킨 기업이 정부로부터 조사받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이 대목에서 청구인들은 기상천외한 논리를 제시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한국 정부가 쿠팡을 ‘괴롭히는’ 근본적 이유는 이재명 정부와 집권 민주당이 ‘반미-친중’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리인은 미국 유력 로펌인 커빙턴 앤드 벌링(커빙턴)이다.
중국이 한국 시장을 장악했다는 망상
중재의향서는 통상적으로 ‘상대방의 법률 위반’ ‘사실관계’ ‘손해 규모’ 등을 건조하게 적시하는 법률 문서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린옥스와 알티미터의 중재의향서는 적대감과 근거 없는 추측을 서슴없이 내보인다. 법률 문서라기보다 정치적 선동 문건으로 읽힌다.
청구인들은 중재의향서의 수신인을 이재명 대통령으로 지정했다. 한국의 국가원수를 법적 분쟁의 직접 당사자로 지명한 것이다. 법률적 효력보다 정치적 모욕을 노린 도발에 가깝다.

중재의향서의 서두에서부터 청구인들의 의도가 다음과 같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재명 대통령은 ‘쿠팡이 망할 것을 두려워할 정도로 혹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말했다(explicitly stated).”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2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렇게 말한 사실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경제 제재가 약하다 보니 규정 위반이 반복된다. 앞으로는 규정을 어겨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력한 경제 제재가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당시부터 ‘규칙을 어겨서 얻는 이익보다, 어겼을 때 치러야 할 비용을 훨씬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징벌적 배상론자’였다. 관련 발언도 숱하며 그 대상은 주로 한국 기업들이었다. 쿠팡이 ‘미국’ 기업이라 한국에서 차별받는다는 청구인들의 의견은 터무니없는 해석이다.
그러나 중재의향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반미-친중이기 때문에 쿠팡을 조사한다’라는 요지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이 문서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출마 때부터 “일반적으론 미국, 특별하게는 쿠팡에 대한 적대적 발언을 반복해”왔다. 지지자들 사이에서조차 한국의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지향성을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길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중재의향서는 주장했다.
더욱이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하정우 AI 미래기획수석비서관 등 네이버(쿠팡의 경쟁사) 출신들을 고위직에 임명했다. 이러한 이념적(반미)·실용적(네이버의 쿠팡 누르기) 이유로, 이재명 대통령은 쿠팡을 공격할 명분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중재의향서는 주장한다. 그런 와중에 중국인 직원에 의한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건이 터지자 이재명 대통령이 재빨리 “그 기회를 포착했다(President Lee seized his opportunity)”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인가? ‘쿠팡을 붕괴시키는 것’이라고, 중재의향서는 명쾌하게(?) 폭로한다. 청구인들에 따르면, 한국의 물류 시장은 국내 기업과 (이재명 대통령 및 민주당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가진) 중국 기업들에 지배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 기업인 쿠팡이 이 시장에 뛰어들어 점유율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쿠팡이 한국 및 중국 경쟁자들의 역사적 지배(historical dominance)를 위협하게 되자 이재명 정부는 쿠팡의 운영을 붕괴시키기 위해 행정 권력을 무기화(weaponizing the administrative power of the state)했다”는 것이다.
영웅담과 음모론의 범벅이다. 예컨대 미국 기업이 혁신과 분투로 한국 및 중국 기업들의 틈바구니를 헤치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니 친중 정부가 시장에 끼어들어 미국 기업(쿠팡)을 두들겨 패고 있다는 것이다. 명백한 역사 왜곡이기도 하다. 쿠팡이 성장하던 시기 한국 시장은 중국이 아니라 이마트, 롯데쇼핑 등 한국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청구인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중국 기업이 지배하던 시대’를 허구로 만들어내며 자신들의 논지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 같은 서술은 한국 정부의 조사를, “쿠팡을 망치기 위한 오웰적(Orwellian) 행위”로 규정하는 대목에서 숭고한 문학적 성취를 달성한다. 한국 정부의 법 집행을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배경인 ‘빅 브라더’ 체제에 비긴 것이다. 한국을 ‘전체주의 독재 감시 국가’로 낙인찍은 것과 다를 바 없다. 탈세와 불공정 거래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쿠팡이야말로 사실은 ‘부당한 독재 권력에 저항하는 자유의 투사’라는 것. 심지어 청구인들은 ‘쿠팡 조사’에 대해 ‘베네수엘라나 러시아 같은 전체주의 적대국들에서나 일어날 사태이지 한국 같은 민주주의 동맹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를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급으로 비하하며, 쿠팡에 대한 조사를 ‘민주주의 파괴’로 둔갑시켰다.

청구인들은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한국의 대통령과 집권 정당을 ‘중국 자본의 앞잡이’로 규정했다.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쿠팡을 조사하는 국가기관들은, 친중 대통령이 친중 행위를 실행하기 위한 도구로 간주된다.
그러나 청구인들이 이재명 대통령을 반미-친중으로 몰고 가는 것에는 나름 ‘합리적’ 이유가 있다. 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에 대해 ISDS를 제기하려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조문들에 기반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관세 인상과 대미 투자 강요로 한·미 FTA는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철회되지는 않았다. 한·미 FTA가 미국 투자자에게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이 협정문의 11장(투자)에 다음과 같은 ‘(국가) 면책’ 조항이 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건강·환경·안전(개인정보 포함) 등 정당한 공공복지를 위해 취한 비차별적 조치는 간접수용으로 보지 않는다.”
여기서 ‘간접수용’이란, 국가가 과도한 규제로 기업에 손해를 끼친 경우다.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이 요구될 수 있다. 그러나 한·미 FTA에선, 국가가 공익을 위한 공공정책을 펼친 탓에 외국인 투자자가 피해를 당했다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면책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사회적 폐해를 일으킨 기업을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른 책임과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엄연한 국가의 공익적 활동이다. 청구인들은 이 규정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다.
즉,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는 ‘개인정보 대량 유출’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 ‘탈세’ 등을 시정하기 위한 공익적 목표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악의(미국 기업 축출) 때문이라고 몰아가야 한다. 실제로 청구인들은 한국 정부가 “한국과 중국 물류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쿠팡을 붕괴시키려 한다”라고 중재의향서에 거듭 서술한다.
그러나 미국 시민인 청구인들이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를 두고 ‘오웰적’이라든가 ‘전체주의’ 같은 수사를 동원하는 것은 ‘내로남불’이다. 미국은 기업이 독과점으로 시민들에게 경제적 피해를 미치는 사태를 차단하기 위해 세계적으로도 가장 과격한 수준의 조치를 취해왔다. 20세기 초반에는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을 34개로 쪼갰다. 1980년대엔 AT&T를 8개로, 2020년대 들어서는 구글과 아마존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공정거래 당국이 조사에 들어가면 회의록·메신저·이메일 등 자료 수백만 건을 탈탈 털어 압수해간다. 거짓말하는 임원은 위증죄로 중형에 처한다. 미국의 기업 조사는 ‘소비자 후생과 공정한 경쟁’을 위한 국가의 정당한 역할이지만, 한국의 쿠팡 조사는 전체주의적 친중 행각이라는 것일까.
숨겨진 의도는 디지털 주권 박탈
1월27일 〈월스트리트저널〉이 ‘단독’을 달아 출고한 기사에 따르면, 지난 1월23일 밴스 미국 부통령은 백악관에서 만난 김민석 총리에게 ‘쿠팡 등 미국 테크 기업들을 처벌하지 말라’고 경고했다(warned). 이 기사는 쿠팡에 대해 “한국에서 거의 모든 사업을 전개하는 미국 기반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에 강력한 우군(powerful allies in the Trump administration and Congress)을 갖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쿠팡의 미국 내 로비 활동을 넌지시 가리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로부터 사흘 뒤인 1월2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 ‘한국 국회가 양측의 예비 무역합의를 비준하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의약품 등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다시 올리겠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1월18일)은 행정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한국 규제 당국이 쿠팡을 상대로 취한 일련의 조치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했을(prompted) 가능성이 있다”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쿠팡을 매개로 한국에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진정한 목표는 한국 정부의 플랫폼 산업에 대한 규제 권한을 무력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한·미 무역합의 결과를 백악관 측이 정리한 팩트시트(설명 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한국과 미국은 망 사용료(network usage fees)와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률 및 정책에서, 미국 기업이 차별받지 않고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 아울러 위치정보(location), 재보험, 개인정보를 포함한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을 촉진하기로 합의한다.”
한국은 안보 문제로 인해 위치정보(지도 데이터)의 유출을 금지해왔다. 개인정보 유출도 엄격하게 관리하는 편이다. 거대 플랫폼의 ‘갑질’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들도 논의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규제들을 모두 ‘무역 장벽’으로 규정하고 해제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산업은 제조업이 아니라 플랫폼이다. 사실상 쿠팡은 물론 구글·메타·넷플릭스 등 미국의 테크 자이언트들에게 ‘치외법권’을 허용하라는 요구이자, 한국의 디지털 주권을 송두리째 내놓으라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쿠팡으로 빚어진 최근 기류의 핵심은 ‘한국의 디지털 주권 대 미국 플랫폼 자본’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쿠팡은 단지 하나의 전장(戰場)일 뿐이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