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인사이드] “내 돈으로 산 차” 러시아로 보냈다가 범죄자 될 수도

유병훈 기자 2026. 2.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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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26년 2월 6일 오후 5시 00분 조선비즈 RM리포트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내 돈으로 산 차를 되파는 게 왜 범죄죠?

부산에서 자동차 딜러로 일하는 A(53)씨는 요즘 차량 계약에 앞서 고객에게 ‘동의서’부터 내민다. ‘러시아·벨라루스·중앙아시아 등으로 불법 재수출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되팔기(리셀)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특정 국가로 차량이 흘러갈 경우 곧바로 수출통제 위반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9일 자동차와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에서 신차를 현금 완납으로 구입한 뒤 등록 직후 ‘중고차’로 위장해 제3국을 거쳐 러시아·벨라루스로 보내는 밀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2년부터 고가 차량의 러시아 수출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 틈을 타 인접 국가로 수출한 뒤 육로로 러시아에 넘기는 불법 리셀러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BMW 전시장에 ‘러시아, 벨라루스, 중앙아시아 지역으로의 차량 불법 재수출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고성민 기자

한 IT 기업에 근무하는 A씨는 2021년 BMW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5 30d를 약 1억원에 구입했다. 이후 4만3000km를 주행한 뒤 지난해 리셀러에게 9300만원에 되팔았다. 4년간 사용했지만 감가액은 700만원에 그쳤다.

A씨는 “수입차 동호회 카페 등에서 러시아 리셀러를 쉽게 찾을 수 있고, 고성능 모델은 웃돈을 얹어 파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실제로 스페인 매체 엘파이스는 2023년 10월 모스크바의 한 병행수입 업체가 BMW 520i M 스포츠 세단을 한국 판매가보다 4000만원 이상 비싸게 거래한 사례를 소개했다.

법조계는 쟁점이 ‘내 돈으로 샀는지’가 아니라 ‘어디로, 어떤 절차를 거쳐 반출됐는지’라고 본다.

한국은 2024년 2월 시행된 ‘제33차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등에 따라 러시아·벨라루스로 배기량 2000cc를 초과하는 승용차를 수출하려면 산업통상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허가 없이 반출하면 대외무역법 위반이 되고, 수출 과정에서 허위 신고가 있으면 관세법 위반까지 함께 문제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로 향하는 한국산 중고차는 급증했다. 한국무역협회와 러시아 측 집계에 따르면 2022년 이전 연간 1000여 대 수준이던 물량은 2023년 2만6955대, 2024년 5만5496대로 늘었고, 2025년에도 1~8월에만 6만1573대가 러시아로 향했다.

처벌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부산지법 형사17단독은 지난 5일 허가 없이 배기량 2000cc 이상 중고차 39대, 약 40억원어치를 러시아·벨라루스 등으로 수출한 혐의로 기소된 키르기스스탄 국적 2명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1명에게는 17억여원의 추징금을 명령했다. 이들은 세관에는 제3국행으로 신고한 뒤 실제로는 러시아로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자동차 업계가 동의서 징구는 물론 계약 해제나 출고 보류까지 거론하는 배경에도 이런 법적 위험이 있다. 제재 회피 거래에 연루됐다는 의심 자체가 부담인 데다, 내수용 차량의 보증·사후서비스(A/S)를 둘러싼 해외 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팰리세이드 구매자의 주소지를 근거로 수출 목적을 의심해 현대차 본사가 출고를 정지시켰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토요타자동차는 2023년 8월부터 영리 목적의 해외 매각·수출을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받고 있다.

법무법인 대진의 안슬아 변호사는 “제조사가 불법 수출 사실을 알면서도 차량을 공급하면 방조 책임이 문제 될 수 있고, 법인 업무로 이뤄진 위반 행위는 법인 책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회 수출 과정에서 신차급 차량을 ‘중고차’로 신고하면 관세법상 허위 신고 책임까지 추가될 수 있다”고 했다.

동의서를 어겼다고 곧바로 사기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출하지 않는다는 점이 계약의 전제였는데도, 처음부터 해외 수출을 목적으로 허위 진술이나 중요한 사정의 은폐로 계약을 체결했다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 안 변호사는 “단순한 계약 위반만으로는 사기죄로 보기 어렵지만, 허위 설명이나 거짓 서명으로 거래를 성사시켰다면 기망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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