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왕”…단단한 생명력 깃든 ‘시금치’ [전원생활 I 계절농산물]

김민선 기자 2026. 2.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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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1월호 기사입니다.

시금치는 찬 공기와 서릿발을 맞으며 땅에 바짝 몸을 붙인 채 자란다. 싱그러운 초록빛 자태는 보는 이의 마음까지 푸르게 물들인다. ‘채소의 왕’이라 불릴 만큼 효능도 뛰어난 이 작물.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시금치를 소개한다. 

시금치는 우리에게 친숙한 채소다. 만화영화 <뽀빠이> 속 주인공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 전 시금치 통조림을 먹는 장면, 한 번쯤은 봤을 법하다. 시금치는 김밥·비빔밥·된장국, 나물 반찬까지 수많은 요리에 활용된다.

익숙한 이 채소에는 깊은 맛이 숨어 있다. 떫거나 밍밍하다고 느낀다면, 겨울 시금치를 아직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금치의 산뜻한 단맛과 은은한 풀향은 입안에 자연을 머금은 듯한 감각을 남긴다. 맛뿐만 아니라 효능도 뛰어나다. 눈 건강과 빈혈·암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외양이 화려하진 않지만, 속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이방인 채소에서 밥상의 단골로
오늘날 시금치는 세계 곳곳에서 재배된다. 아시아와 유럽의 북부 온대 지역은 물론, 아열대나 열대 고지대, 심지어 시베리아의 한랭지에서도 자란다. 시금치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로 알려져 있다. 이란 지방에서 오래전부터 재배되다가 이슬람 문화권을 따라 동서로 퍼졌다.

7세기 무렵에는 페르시아에서 중국으로 전파됐고, 11세기 무렵에는 아라비아,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로 확산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527년에 편찬된 최세진의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에 한자 이름인 ‘菠薐(파릉)’이라는 단어가 기록돼 있어, 이 무렵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역에서 온 귀한 채소로 여겨졌던 시금치는 오랜 세월을 거쳐 우리 땅에 깊이 뿌리내렸다.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주로 즐기던 채소였지만, 재배 기술 향상과 품종 개발이 이루어지며 이제는 사계절 내내 만날 수 있게 됐다. 

그중 겨울에 나는 것이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추운 환경 속에서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스스로 당분을 축적해 깊은 단맛을 만들어낸다. 경남 남해 ‘보물초’, 경북 포항 ‘포항초’, 전남 신안 ‘섬초’가 겨울 시금치의 대표 주자다. 이 가운데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보물초는 산뜻한 단맛과 부드럽고 아삭한 식감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경남 남해에서 생산한 ‘보물초’
빈혈과 뼈 건강에 특효
시금치는 명아줏과에 속하는 1~2년생 식물이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 영양가가 높아 미국 매거진 <타임지>를 비롯한 여러 건강 매체가 슈퍼 푸드로 꼽았다. 조선시대 의서 <동의보감>에는 ‘시금치가 혈액을 생성하고 출혈을 막으며 눈을 맑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시금치는 건강 식재료로 주목받는다. 함유된 엽산과 철분이 빈혈 예방에 도움을 주고, 뼈 건강을 지켜준다. 생시금치 100g당 철분 2.5~3.7㎎이 들어 있어 풍부한 편이다. 베타카로틴·페놀 성분과 엽록소는 항암 작용을 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일조한다. 시금치를 매일 반 접시씩 꾸준히 섭취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장암 발생 위험이 75% 낮았다는 국립암센터의 연구 결과도 있다.

이 외에도 루테인과 비타민 A는 눈을 보호하고, 사포닌과 식이섬유는 장운동을 활성화해 변비를 해소해준다. 녹황색 채소에 함유된 클로로필 성분은 활성산소를 제거해 노화를 늦추고, 피부에 탄력과 윤기를 더한다. 시금치의 열량은 100g당 29㎉ 정도로 낮으며, 체내 노폐물과 나트륨을 배출해주는 칼륨이 풍부해 다이어트 식재료로도 제격이다.

시금치에 대한 오해도 있다. 많이 먹으면 결석이 생긴다는 것이다. 시금치의 수산(옥살산) 성분이 칼슘 이온과 반응해 요로 결석을 유발할 수 있지만, 이는 매일 1kg 이상 섭취했을 때 이야기다. 적당량을 다양한 채소와 함께 균형 있게 먹는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뿌리부터 잎까지 남김없이 활용하자
양질의 시금치는 대체로 잎이 진한 녹색을 띠고 두꺼우며 윤기가 난다. 뿌리는 굵고 붉을수록 좋고, 총길이는 15~18㎝가 적당하다. 잎이 마르거나 황갈색으로 변한 것은 신선도가 떨어진 것이니 구매하지 않는 게 낫다. 요리 용도에 따라 무침용과 국거리용으로 나눠 고르면 편하다.
잘 자란 시금치는 뿌리 쪽에 약 1㎝ 여유를 두고 잘라 수확한다.

뿌리의 단맛을 활용하기 위해 무침용은 뿌리에 붉은 색이 도는 것을, 부드럽게 익히기 위해 국거리용은 잎이 넓고 줄기가 연하고 긴 것을 선택한다. 손질할 때는 뿌리의 붉은 부분을 최대한 살린다. 이곳에 영양이 가장 풍부하므로 겉껍질만 살짝 긁어내는 게 좋다.

시금치는 생으로 먹으면 영양 손실은 적지만, 수산으로 인해 떫은맛이 날 수 있다. 그러니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뚜껑을 연 채 살짝 데친 뒤 물에 헹궈 활용하자. 이 방법으로 특유의 떫은맛은 줄이고 영양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기름에 살짝 볶으면 지용성인 비타민 A의 흡수율이 높아진다.

보관법은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흙이 묻어 있다면 키친타월로 감싸 세워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장기간 보관할 때는 냉장고에서 꺼내 물을 살짝 뿌린 뒤 다시 넣어두면 신선도가 더 오래 유지된다. 데친 시금치는 비닐 팩에 밀봉해 냉동 보관한다.

[Mini Interview] 김재곤·김미희 씨 부부
경남 남해에서 시금치농사를 짓는 김재곤·김미희 씨 부부.
김재곤(66)·김미희(63) 씨 부부는 경남 남해로 귀촌해 약 10년째 시금치농사를 짓고 있다. 부부는 ‘사계절’ 품종을 노지에서 주로 재배한다. 재배면적은 7603㎡(2300평), 연간 생산량은 9.2t에 이른다. 재배는 보통 9월 말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이어진다. 이 기간에 파종·생육·수확 등 작업을 진행한다. 밭을 나눠 일주일 간격으로 파종해 수확 시기가 겹치지 않도록 관리한다. 관수와 토양 관리에도 신경 쓴다. 

“시금치는 물을 좋아하는 작물이지만 과습에는 약하거든요. 밭에 직접 호스를 설치해 물이 잘 빠지도록 관수 관리를 하고 있어요. 비료나 퇴비를 적절히 주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죠. 경남 남해 새남해농협에서 공급받은 규산질이나 석회질 자재를 사용해 토양을 알칼리성으로 맞춰주고 있어요.”

이 외에도 고르게 색이 들고, 겨울철 땅이 얼지 않도록 밭 위에 부직포를 덮어 보온한다. 저온성 작물이라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지만, 기온이 영하 8~10℃ 아래로 떨어지면 냉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노력을 거쳐 재배한 시금치는 당도가 높고 식감이 아삭하며 조직이 단단한 편이다. 

부부는 “겉모양이 조금 덜 예뻐도 잎 안 쪽이 진한 가지색을띠는 것이 대체로 맛이 좋다”고 전한다. 수확한 시금치는 선별, 단 작업, 세척 등의 과정을 거쳐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 ‘보물초’ 브랜드로 출하된다. 재배 환경과 선별 방식에 따라 ‘단묶음’으로 유통되기도 하고, 잎이 넓게 펼쳐진 ‘벌크’ 형태로 보내지기도 한다.

[시금치 요리] 시금치 실치 무침
준비하기(3~4인분)

시금치 400g, 실치 40g, 소금 1작은술, 맛술 2큰술, 양념장(고추장 2큰술, 고춧가루 1큰술, 진간장 1작은술, 다진 파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물엿 2큰술, 참기름·깻가루 1큰술씩, 소금 약간)

만들기

1 시금치는 다듬어 씻은 뒤 끓는 소금물에 데치고, 색이 선명해지면 바로 건져 찬물에 헹군 후 물기를 짠다.

2 마른 프라이팬에 실치를 볶아 비린내를 날린 뒤, 유리 볼에 옮기고 맛술을 넣어 가볍게 버무린다.

3 다른 유리 볼에 고추장, 고춧가루, 진간장, 다진 파, 다진 마늘, 물엿을 넣고 고루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4 ③에 ①, ②를 넣고 무친 뒤 참기름·깻가루를 버무려 완성한다. 기호에 따라 소금으로 간을 더해도 좋다.

[시금치 요리] 시금치 조갯살 볶음
준비하기(3~4인분)

시금치 300g, 모시조개 400g, 소금 1작은술, 양파·청피망·파프리카 ½개씩, 쪽파 3대, 식용유 약간, 양념장(물엿 1큰술, 물녹말·진간장·맛술 2큰술씩, 다진 청양고추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다진 생강 ¼작은술, 소금 약간)

만들기

1 시금치는 다듬어 씻은 뒤 물기를 턴다. 

2 양파는 굵게 채 썰고, 피망·파프리카는 사방 3㎝ 크기로, 쪽파는 2㎝ 길이로 썬다.

3 모시조개는 소금물에 담가 신문지를 덮어 해감한 후, 껍데기끼리 비비며 물에 깨끗이 씻어 건져둔다.

4 깊이 있는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③을 넣고 맛술을 뿌린 뒤 센불에서 볶아 입을 벌리게 한다.

5 ④에 ①, ②를 넣고 센불에서 볶는다.

6 ⑤에 진간장, 다진 청양고추, 다진 마늘, 다진 생강, 물엿을 넣어 고루 섞으며 볶아준다.

7 ⑥에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물녹말을 넣고 윤기 나게 볶아 완성한다.

[시금치 요리] 시금치 베이컨말이 구이
준비하기(3~4인분)

시금치 360g, 베이컨 12줄, 무염버터 2큰술, 송송 썬 쪽파 ½컵, 그라나 파다노 치즈 20g, 깻가루 2큰술, 식초 1작은술

만들기

1 시금치는 뿌리·줄기·잎이 떨어지지 않게 다듬는다.

2 식초 푼 물이 담긴 유리 볼에 ①의 뿌리가 아래로 향하도록 넣고 잠시 담갔다가 건져 흐르는 물에 씻고 물기를 턴다. 

3 베이컨은 1줄씩 도마에 펼쳐놓고, 가운데에 ②를 올려 돌돌 말아준다. 

4 프라이팬에 무염버터를 녹인 뒤 ③을 나란히 올리고 앞뒤로 굴리며 노릇하게 굽는다.

5 접시에 ④를 담아 그 위에 쪽파와 깻가루를 듬뿍 뿌리고, 그라나 파다노 치즈를 그라인더로 눈송이처럼 갈아 완성한다. 

[시금치 요리] 들깨 시금치 불고기 뚝배기
준비하기(3~4인분)

시금치 400g, 쇠고기(불고기용) 400g, 마른 당면 50g, 청양고추 1개, 홍고추 ½개,들깨 양념(들깻가루·진간장 4큰술씩, 다시마 우린 물 1컵, 다진 파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들기름·맛술 2큰술씩, 올리고당 1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시금치는 다듬어 씻은 뒤 물기를 턴다. 

2 쇠고기는 사방 5㎝ 크기로 얇게 썬다.

3 마른 당면은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찬물에 담가 불린다. 

4 청양고추·홍고추는 송송 썬다. 

5 유리 볼에 다시마 우린 물, 들깻가루, 진간장, 올리고당을 넣고 잘 섞어 양념을 만든다.

6 뚝배기에 들기름을 두르고 ①, ②를 담고 볶다가, ⑤를 붓고 다진 파, 다진 마늘, 맛술을 넣고 끓인다.

7 ⑥에 ③, ④를 담고 소금·후춧가루로 간을 맞춰 끓여내 완성한다.

김민선 기자 | 사진 임승수·고승범(사진가) | 요리&스타일링 이보은(요리 연구가, 쿡피아 쿠킹스튜디오 대표), 성나은·한유진(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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