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추적] '청담동 주식부자'의 10년, 이희진은 프로 골퍼가 되고 피해자는 빚더미에

김태현 기자 2026. 2. 9.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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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3년 만에 500억 재산을 쌓은 이희진과 10년간 매일 15시간씩 일하며 빚 2억을 갚은 피해자. 같은 시간, 전혀 다른 10년이었다.

[우먼센스] 박중혁(가명) 씨는 어느 날 밤, 어두운 방 안에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가 확인하려 한 것은 자신의 사망보험금이었다. 10억 원이라는 압도적인 부채 앞에서 자신의 목숨이 얼마의 가치로 환산될 수 있을지 가늠해 본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죽어서 보험금을 받는다고 해도 빚을 모두 갚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죽고 싶어도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른바 '채무의 옥쇄'에 갇힌 순간이었다.

과거 이희진씨 인스타그램 캡처

CBS 노컷뉴스에 따르면 박 씨의 비극은 2015년, 당시 '청담동 주식부자'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희진 씨를 만나며 시작됐다. 그는 이 씨의 말을 믿고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10억 원을 투자했다. 그중 4억 원은 본인 돈이었지만, 나머지 6억 원은 연로하신 부모님과 처가 식구들의 자금, 그리고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이었다. 한순간에 투자는 물거품이 됐고, 박 씨는 매달 350만 원이라는 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원금은커녕 이자만 갚기에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나날이 시작된 것이다.

10억 원의 빚, 자신의 목숨값을 계산해 본 남자 

그렇게 지옥 같은 10년이 흘렀다. 박 씨의 시계는 남들과 다르게 흐른다. 오전 9시, 세상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며 출근할 때 그는 15시간 야간 경비 근무를 마치고 녹초가 되어 귀가한다. 허겁지겁 한 끼를 때우고 단 4시간 잠을 청한 뒤,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켜 공장으로 향한다. 

격일로 경비직과 공장 일용직을 오가는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그는 10년간 빚을 8,000만 원까지 줄여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내와 이별했고, 친구들은 곁을 떠났으며, 어깨 근막은 완전히 파열됐다. 의사는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지만, 박 씨는 거절했다. 단 2주라도 일을 쉬면 350만 원의 이자를 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노컷뉴스는 박 씨와 같이 삶이 무너진 피해자는 확인된 것만 230여 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같은 시각, 70억 펜트하우스에서 시작되는 아침 

박 씨가 파열된 어깨 통증을 진통제로 누르며 공장 라인에 설 때, 서울 송파구 잠실의 한 초고가 주상복합 펜트하우스에는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비친다. 897억 원대 코인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희진 씨 거처다. 시세 70억 원을 호가하는 이 90평대 집에서 창밖으로는 롯데월드타워 전경이 비친다. 그의 두 자녀는 매달 약 200만 원 교육비를 내는 유명 영어유치원에 다닌다고 전해진다.

이희진씨가 티칭골프 실기테스트 합격 후 샤넬 라운지로 보이는 곳에서 축하파티를 열었다. 사진=CBS 노컷뉴스 제공

지난해 3월 보석으로 석방된 이 씨의 생활은 피고인의 처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여유롭다. 지난 10월에는 티칭 프로골퍼 실기 테스트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8홀에서 79타 이하를 기록해야 하는 엄격한 시험을 통과한 그를 위해 명품 브랜드 샤넬의 라운지에서는 성대한 축하 파티가 열렸다. 

'프로골퍼 이희진' 얼굴이 담긴 대형 현수막과 2단 케이크가 마련된 그곳에서, 이 씨는 지인들의 축하 속에 케이크를 잘랐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그는 롤스로이스와 람보르기니 등 수억 원대 슈퍼카를 몰았으며, 13억 원이 넘는 고가 골프 회원권으로 불과 6개월 동안 40차례 이상 라운딩을 즐겼다.

법치주의의 공백 속에 방치된 정의 

과거 비인가 투자자문업으로 실형을 살았던 이 씨는 출소 후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현재 그는 스캠 코인을 발행해 시세를 조종하고 897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 중이다. 심지어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동업자에게 상장 비용을 속여 18억여 원을 정산하지 않은 혐의로 또다시 피소됐다.

가해자가 은닉한 것으로 의심되는 재산으로 '프로골퍼'의 꿈을 이루고 다복한 가정을 꾸리는 동안, 피해자들은 법원의 손해배상 판결문조차 휴지 조각으로 변해버린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 "수만 명에게 경제적 살인을 저지르고도 떵떵거리며 산다"는 피해자들의 울분은, 수개월째 피의자 소환조차 지지부진한 수사 기관과 느슨한 법망을 향해 뼈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다.

480억 원짜리 건물, 그중 159억 원은 수표로

이희진의 재산 목록을 하나씩 펼쳐보면 입이 벌어진다.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검찰 수사 기록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이희진 측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재산은 5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출소한 지 불과 3년 만에 쌓아 올린 부였다.

이희진씨 장인 박 아무개 씨가 임원으로 있는 법인이 소유하고 있는 청담 레인 에비뉴 건물(왼쪽)과 청담동 네이처포엠 오피스텔. 사진=네이버 지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수 비(정지훈)가 소유했던 청담동 레인에비뉴 빌딩이다. 이희진의 장인 박 아무개 씨가 대표로 있는 법인이 2021년 약 480억 원에 매입했는데, 이 중 159억 원은 전액 수표로 지급됐다. 소유권 이전 직후 이 건물은 우리자산신탁에 신탁 처리되어 검찰의 추징을 교묘히 비껴갔다.

청담동 네이처포엠 오피스텔, 제주 JW메리어트 레지던스, 가평 북한강변 별장까지. 이 모든 부동산은 배우자와 동생, 장인, 심지어 운전기사가 등기 임원으로 있던 차명 법인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정작 이희진 본인 명의 재산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검찰 조사에서 그는 '리스한 카니발만 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상은 롤스로이스와 람보르기니를 갈아타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2024년 9월 이희진은 과거 주식 사기 추징금 122억 6000만 원을 완납했다. 그가 5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쌓은 것과 같은 시기였다. 같은 기간, 박중혁 씨 건강은 무너지고 있었다. 

'개미'들의 신앙이었던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씨는 2013년경부터 케이블 금융 프로그램과 각종 예능에 출연하며 자신을 '자수성가한 주식 전문가'로 포장해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그는 SNS에 수십억 원대의 슈퍼카 부가티와 람보르기니, 청담동의 화려한 수영장 딸린 고급 빌라 사진을 도배하며 재력을 과시했다. 소위 '개미 투자자'들에게 그는 성공의 아이콘이었고, "나처럼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곧 신앙이 되었다.

2023년 피카코인 시세조종 연루 의혹을 받는 이희진씨가 사기·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그 화려한 껍데기는 철저히 기획된 소품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는 인가받지 않은 투자자문업체를 차려놓고, 헐값에 미리 사둔 비상장 주식을 '곧 상장돼 몇 배가 뛸 것'이라고 속여 투자자들에게 비싸게 팔아치웠다. 이 수법으로 2014년 7월부터 2016년 8월까지 230여 명에게서 130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아 2020년 3월까지 복역했다.

만기 출소한 그가 이번에 손을 댄 것은 가상화폐, 즉 코인이었다. 복역을 마치고 나온 이희진의 수법은 더욱 대담해졌다. 2020년 출소 직후, 그는 주식 대신 가상화폐로 눈을 돌렸다. 피카코인, 고머니2, 트리클 등 이름바 '스캠 코인(사기 코인)'을 발행한 뒤, 허위 정보를 퍼뜨려 가격을 폭등시키고 고점에서 매도해 시세 차익을 챙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를 사실상 '스캠코인'으로 판단했다. 실제로 이 코인들은 업비트와 코인원 등 국내 주요 거래소에서 모두 상장폐지됐다. 이번에 당한 피해자는 무려 4만 명, 피해액은 897억 원에 달한다.

검찰총장에서 이희진의 방패로… 초호화 전관 군단

이희진의 코인 사기 재판은 3년째 진행 중이다. 그가 구축한 법적 방어선은 견고하다. 그의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린 변호사만 25명이 넘는다. 그중 최소 10명이 검사·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문무일 전 검찰총장. 문재인 정부 검찰 수장을 지낸 그는 노무현 측근비리특검, 조현아 땅콩회항, 성완종 리스트 등 굵직한 사건을 지휘했던 검찰 특수통이다. 여기에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남부지검 출신 금융통 검사, 드루킹 특검 파견 검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까지 라인업이 화려하다. 변호사 비용만 수십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초호화 변호인단만큼이나 검찰의 공소 유지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검찰이 이희진에게 적용한 주된 혐의는 형법상 사기다. 2023년 당시에는 코인 범죄를 처벌할 가상자산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기죄는 범죄행위와 피해자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소장에 명시된 피카코인 피해자는 1만 5000여명인데, 검찰이 피카코인 사건에서 제출한 피해자 진술조서는 단 2건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이 같은 허술한 공소유지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122억 추징금은 국고로, 피해자 손에는 한 푼도

이희진 씨는 2024년 9월 과거 주식 사기 사건 추징금이었던 122억 6000만 원을 완납했다. 이 숫자를 좀 더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박중혁씨가 10년 동안 빚을 갚느라 허리띠를 졸라매며 모은 2억 원의 61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박 씨가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 350만원을 기준으로 하면 무려 291년치다. 하지만 이 엄청난 돈은 모두 국고로 들어갔을 뿐, 피해자들의 손에는 단 한 푼도 돌아가지 않았다.

2019년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피해자들에게 돌아갈수 있는 법이 존재하긴 한다. 부패재산몰수법은 추징된 범죄자의 재산이 피해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피해액이 명확해야 하고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한 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결국 피해자들이 돈을 조금이라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민사소송밖에 없다.

37명의 피해자들은 이희진과 그가 자주 출연했던 방송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10년 만에 승소 판결을 받았다. 1인당 평균 배상액은 약 1300만 원으로, 투자금 10억원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방송사로부터 받게 된 배상금 400만 원 중 일부를 소송비용으로 다시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법원이 소송비용의 95%를 원고가 부담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인데, 방송사 측은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선임했고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이희진 씨는 아직까지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들은 강제집행을 위한 재산명시 신청을 했고, 차명 재산에 대한 사해행위 취소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또다시 긴 법정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897억원대 코인 사기 피해자들의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이희진의 형사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재판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야 비로소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검찰은 270억원 상당 재산을 동결했지만 청담동 건물과 제주 레지던스, 가평 별장 등 대부분의 재산이 신탁되어 있거나 가족 및 법인 명의로 되어 있어 추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피해자 4만 명은 지금도 기다리고만 있다. 

"10년 전,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가. 10년 후, 누가 벌을 받고 있는가."

박중혁 씨는 올해 마흔이 됐다. 지난 10년을 오롯이 빚에 쫓기며 살았다. 이희진은 그 10년 중 3년 6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냈고, 출소 후 3년 만에 5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쌓았다고 추정된다. 바라던 티칭 프로 자격까지 취득했다. 

반면 박 씨는 오늘도 찢어진 어깨를 붙들고 공장에 출근한다. 또 다른 피해자는 어머니를 요양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단 몇 백만 원이 없어 쩔쩔매는 피해자가 수두룩하다. 그 시기 이희진 씨는 송파 펜트하우스 거실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볼지도 모른다. 

10년 전 이희진 씨에게 사기 당한 사기 피해자 230명이 묻는다. 10년 전,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가. 10년 후, 누가 벌을 받고 있는가. 이 질문에 법과 검찰, 법원은 아직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먼센스>는 이희진 씨에게 관련한 입장 등을 물었으나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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