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일 하러 온 외국인들, 불법 ‘배달 콜’ 잡고 있다
“나 중국인이에요.”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캠퍼스 인근 한 파스타 식당 앞.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손톱을 깎는 한 남성 배달 기사에게 말을 걸었더니 이렇게 말하고선 오토바이를 타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본지 기자가 이후 이 식당을 방문한 배달 기사 10명에게 물었더니 5명이 중국·베트남 등에서 온 외국인이었다.

국내 배달 업계에 ‘외국인 라이더(기사)’가 급속도로 유입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고용허가제에 따라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공장에서 받는 시급보다 배달 수입이 더 높아 외국인들이 라이더로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과 직접 대화할 필요가 없고 스마트폰과 오토바이만 있으면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을 배달 업계로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배달 자격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법 배달을 하다 적발되는 일도 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작년 한 해 택배·배달 직종에 불법 취업했다가 적발된 외국인 수는 486명이었다. 집계가 시작된 2023년(117명)보다 4배 이상 늘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배달 기사를 하려면 거주·결혼 이민·영주권 등의 비자를 취득해야 한다. 배달 기사는 이용자 주소나 전화번호 등 민감한 개인 정보를 다루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E-9) 근로자 등은 지정된 제조업체나 농어촌 사업장이 아닌 곳에선 일할 수 없다. 유학 비자(D-2)를 가진 외국인도 배달·택배 업종에선 일할 수 없다.
그런데도 최근 배달 일에 뛰어드는 외국인 대다수가 E-9 비자 등으로 입국한 사람들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고용허가제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와 놓고는 회사를 그만둔 뒤 불법 체류자 신세로 배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의 한 배달 대행업체 사장은 “한국인과 결혼해 결혼 이민 비자를 받았거나 한국에 사업체를 세워 영주권을 받은 사람들은 애초에 배달업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외국인 라이더 상당수가 불법적으로 일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외국인이 불법 배달을 하다가 적발되면 강제 출국 조치를 당하고 한국 재입국이 금지된다. 그런데도 이들이 불법 라이더로 뛰어드는 건 중소기업이나 식당 서빙일보다 벌이가 훨씬 좋기 때문이다. 배달 대행업체 관계자는 “성수기 기준으로 하루 13~14시간 일하면 한 달에 1000만원 가까이도 벌 수 있다”고 했다.
한국 배달 단가는 중국·동남아 등과 비교해 훨씬 높다. 한 외국인 라이더는 본지에 “한국에선 배달 단가가 한 건당 2500~3500원 선이고, 비가 오거나 거리가 멀면 몇 천 원씩 할증도 붙는다”며 “중국 본토에선 배달 단가가 건당 1000원 미만인데 적게는 2~3배, 많게는 5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라고 했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등 대형 배달 플랫폼은 대행업체를 통해 라이더를 고용한다. 대형 플랫폼에 배달 주문이 접수되면 대행업체들이 고용한 기사가 배달을 하는 구조다. 이런 고용 방식이 ‘불법 외국인 라이더’를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대행 업체는 한국인 이름으로 된 배달 기사 계정을 확보해 놓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해 배달에 투입하고 있다고 한다. 한 배달 업체 관계자는 “한국인 명의 계정 1개당 월 20만~30만원 수준”이라며 “소규모 업체는 친인척 명의까지 빌려서 외국인 배달원을 뽑고 있다”고 했다. 대행 업체들은 외국인 라이더에게 한국인 라이더보다 더 높은 배달 수수료를 떼 간다고 한다. 외국인을 불법 고용할수록 대행 업체로선 이득인 셈이다.
서울 영등포구 구로·대림동 등엔 중국인 라이더, 경기도 외곽 지역엔 동남아 출신 라이더들이 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대림동 일대에는 브로커를 통해 중국인만 고용해 운영하는 배달 대행 업체도 있었다. 중국계 배달 앱 ‘헝그리판다’가 최근 서울 일부 지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뒤로 외국인 라이더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고 식당 업주들은 말한다. 헝그리판다는 비자 정보를 묻지 않고 이름과 나이, 사는 곳만 입력하면 바로 배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불법 외국인 라이더 상당수가 한국 운전면허가 없는데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외국인 라이더들은 접촉 사고가 나면 뺑소니를 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국 주소 체계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 라이더가 잘못 배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서울 대림동에서 분식집을 하는 이모(31)씨는 “외국인 라이더들의 오배송이 최근 늘고 있는데 이들과 소통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외국인 라이더들 때문에 배달 콜(호출)이 감소하고, 배달료 단가도 낮아진다’는 국내 라이더들의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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