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필요할 때만 슬며시 끼어드는 로봇, ‘인비저블 AI’가 온다
생활 속 자연스레 녹아든
에이전트 AI 시대 본격화
‘개입의 순간’에 주목하라

1년 전 우리는 생성형 AI가 제공하는 초개인화된 편리함에 매혹되면서도 동시에 감시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함께 느껴야 했다. 너무 빠른 기술 진보의 속도 앞에서 인류는 잠깐 ‘멈춤(Pause)’ 버튼을 고민했다. 하지만 올해 CES는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놨다. 기술이 인간처럼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을 입으면서 우리 삶에 ‘어떻게 스며들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줬다. 기술은 더욱 강력해졌지만, 그 존재 방식은 이전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섬세해졌다.
‘CES 2026’을 관통한 핵심은 로봇의 화려한 동작이나 거대언어모델의 파라미터 숫자가 아니었다. 전시장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질문은 AI가 인간의 삶에 어떤 거리로, 어떤 태도로 존재해야 하는가였다. AI는 더 이상 전면에 나서서 자신을 과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사용자가 필요를 느끼는 순간에만 슬며시 개입하고, 목적을 달성하면 다시 배경으로 물러나는 ‘인비저블(invisible) AI’의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국내 기업들의 활약으로 특히 올해 화제가 된 CES가 산업 현장에 남긴 과제는 무엇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월 1호(434호)에 실린 ‘더 섬세하게 스며든 AI 에이전트’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 알아서 조율하고 행동하는 AI
가장 뚜렷한 변화는 AI의 정체성이 ‘대화를 주고받는 존재’에서 인간의 삶을 대신 관리하고 조율하는 에이전트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여행 일정의 설계와 예약, 집 안 기기의 제어, 가족 구성원의 일정 통합 관리는 물론이고, 비행기 지연이나 날씨 변화 같은 변수가 발생했을 때의 대안 탐색과 실행까지 해준다. 이제 AI는 더 이상 조언자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주체로 변모했다. 사용자는 이제 “에어컨을 켜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AI가 이미 실내 온습도와 체온, 전기요금 구간, 과거의 생활 방식을 계산해 가장 쾌적한 환경을 스스로 실행해 두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기를 쓰는 존재에서 기기들이 만든 세계에서 ‘돌봄을 받는’ 존재로 자연스럽게 바뀌고 있었다.
삼성전자 전시관에서 만난 AI는 사용자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는 하나의 ‘존재’에 가까웠다. 사용자가 집을 나서며 남긴 짧은 한마디에 로봇청소기와 조명, 방범 시스템, 펫 케어는 물 흐르듯 작동한다. 이러한 경험은 집이라는 공간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사용자의 부재를 이해하고 반응하는 감각을 만들어냈다.
전제는 보안이다. 보안은 이제 단순한 기술적 방어 장치가 아니라 삶에 스며든 AI 경험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적 기반으로 작동한다. 집 안의 대화와 생활 리듬이 하나의 운영체제처럼 관리되더라도, 그 정보가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을 때 사용자는 비로소 AI를 믿을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이 성능과 가격 경쟁력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동안, 한국 가전은 ‘내 삶을 맡겨도 되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경쟁의 축을 이동시키고 있었다. 소비자들이 ‘더 똑똑한 AI’보다 ‘더 편안하게 신뢰할 수 있는 AI’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 결과다.
● 듣고, 보고, 기억하는 ‘라이프 로거’
웨어러블 기기의 변화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었다. 이어폰과 펜던트, 스마트 글라스는 더 이상 단순한 디지털 기기가 아니다.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을 대신 저장하는 ‘제2의 기억 장치’로 진화했다. 하루 동안의 대화와 아이디어, 약속을 자동으로 기록하고, 필요할 때 정확한 맥락만 꺼내준다. 인간이 늘 ‘메모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번번이 놓쳐버리는 순간들을 기술이 자동으로 기록하고 보관하는 것이다.

휴머노이드만이 전부는 아니다. 기존 가전에 필요한 만큼의 로봇 요소를 결합한 목적형 로봇이 한 걸음 먼저 현실로 다가왔다. 계단을 오르고 로봇 팔로 장애물을 치우는 중국 기업들의 로봇청소기는 가사 노동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소비자는 인간을 닮은 로봇만 원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가전 가격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실제 노동을 덜어주는 해법이 더 유효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은 그 ‘적정선’을 집요하게 찾아냈고, 가성비 로봇을 대량 생산할 준비를 이미 마쳤다.
‘CES 2026’은 이제 AI 경쟁의 중심이 단순 성능이 아니라 ‘인간의 맥락을 읽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인간의 삶을 섬세하게 이해하면서 ‘삶의 해상도(Resolution of Life)’를 높이는 기업이 경쟁 우위를 가져간다. 앞으로의 승부는 ‘무엇을 할 수 있는 AI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인간의 곁에 머물 것인가’에서 갈릴 것이다. 일부러 드러내지 않고, 보이지 않을수록 존재감이 커지는 기술, ‘인비저블’이야말로 AI 시대의 새로운 경쟁력인 이유다.
차경진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kjcha7@hanyang.ac.kr
정리=백상경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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