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취약지 강원에 살다] 1. 19개월째 병원에 사는 하늘이
공공후견인 한순희씨 출산 동행
소이증 등 장애 가진 하늘이 출생
1여년간 서울 오가며 수술 진행
장애아 회복 치료 지원 병원 부재
질병을 앓는 건 개인이지만, 한 사람의 문제로 볼 수 없다. 사람을 둘러싼 사회 환경은 그 몸에 영향을 미친다. 지역은 질병의 원인일 수도, 질병을 극복하지 못하는 장벽일 수도 있다. 강원도민일보는 강원도에 살고 있는 ‘아픈 몸’의 이야기를 전한다. 개인의 몸이 지역 의료·복지 구조, 국가 정책 아래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살핀다. ‘아픈 몸, 의료취약지 강원에 살다’는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이야기다.

주치의·후견인·간병인이 지켜낸 19개월…장애영유아 지원 시스템 부재에 멈춰선 ‘하늘이의 걸음마’
2025년 2월 14일. 공공후견인인 한순희(68)씨가 홀로 소아과를 찾았다.
“강원도 아이에요, 선생님.” ‘강원도’는 한순희씨가 유일하게 붙들 수 있는 말이었다.
마주앉은 박진성 강원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심장수술, 기관식도샛길수술을 한 9개월 영아였다.
병원엔 소아중환자실 전담의가 없었다. 그나마 있던 소아과 전공의 한 명도 의정갈등으로 자리를 비웠다.
박 과장은 “안 된다”고 거절했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아이는 중환자 경험이 많은 큰 병원에 머물고 있었다. “여기(강원대병원)에 와서 결과가 안 좋아 질수도 있었”다.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그래도 없으면 다시 이야기해보시지요.” 한순희씨를 돌려보냈다.
한 달 뒤, 한 씨가 다시 박진성 과장을 찾았다. 전국을 뒤져봐도 한 살 된 장애아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 도내 장애영유아시설 ‘0곳’
우려했던 일은 없었다. 하늘이가 달고 온 건 가정용 인공호흡기였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강원대병원 소아중환자실로 자리를 옮긴 아이는 금세 인공호흡기를 뗐다. 두 달 뒤엔 일반 병동으로 병실을 옮겼다. 아이는 침대 난간을 붙잡고 우뚝 섰고, 하나 둘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이 무렵 맹은경 속초시청 희망복지팀장도 하늘이의 상황을 알았다. 중증 지적 장애를 가진 엄마 김미소(32·가명)씨와 함께 속초시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는 아이였다. 의료급여 수급자인 하늘이 의료비는 국가 지원과 세브란스 후원금으로 지급이 가능했다.
문제는 간병비였다. 국가 지원도, 김미소씨 자체 마련도 어려웠다. 민간 모금 재단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두드렸다. 사연에 공감한 후원자들이 많았다. 3600여만원의 ‘돌봄’ 비용이 만들어졌다. 제도 바깥의 도움이었다.
아이는 19개월 간 병원에서 컸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 1년 1개월. 강원대병원 중환자실 2개월, 일반병동 6개월. 의료진과 간병인이 아이의 부모이고 가족이었다. 유아차, 조끼, 겨울바지, 내복…. 매일같이 하늘이를 보는 이들이 아이에게 옷을 사입히고 유아차를 끌어줬다.
“보호자가 있었다면 이미 가정으로 돌아갔을 거예요.” 박진성 과장이 말했다. 2026년 1월. 강원대병원 입원 8개월차, 주치의 박 과장이 “하늘이는 급성기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상태”라는 소견을 냈다.
다시 퇴원의 시간이 왔다. 모금한 간병비는 1월 기준 940여만원이 남았다. 24시간 아이 돌봄시간으로 환산하면 한 달 반 남짓이 가능한 금액이었다.
“사회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 시설 입소밖에 없어요. 장애아동은 정말 심한 약자예요. 시설은 갈 수 없고요.” 맹은경 팀장이 말했다.
강원도 내에는 ‘고아원’으로 불리는 아동양육시설이 8곳 있다. 하지만 장애아동은 논외다. 장애아동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복지시설 체계에서 움직인다는 게 강원도 관계자의 설명이다.

■ 사랑받는 아이
“하늘이가 복이 많아요.” 한순희씨가 말했다. 순간마다 ‘고비’가 있었다. 하늘이는 선천성 질환 여러 개를 갖고 태어났다. 하지만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의료진이 있었다. 수술을 마친 아이는 회복기 치료를 받을 병원이 필요했다. 이때 박진성 과장이 주치의가 돼줬다.
일반 병동 이동은 또 하나의 난제였다. 13개월 장애아를 돌볼 간병인이 필요했다. 그 무렵 강원대병원 간병팀에 지원서를 냈던 양미영(58)씨에게 아이가 배정됐다. ‘한 살 아기가 있다. 그런데 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향한 병실이었다.
돌이 갓 지난 아기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했다. 아이는 기도를 절개했다. 계속해서 가래가 찼다. 양미영 씨는 ‘바를 정(正)’자를 그려본 날이 있었다. “서른 번이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12시간 동안 석션(흡입기를 통해 가래를 제거하는 행위)을 한 횟수요.”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밤도 있었다. 그러면 “경고 알림을 듣지 못할까봐 아이 옆에 꼭 붙어” 잤다.
양미영씨도 사정을 들었다. “엄마는 심한 지적 장애가 있어서 아이를 돌볼 수가 없다고 하던데요.” “할머니는 요양원에 있고요.”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면서 양미영씨는 마음이 섰다. 아이를 맡아 돌보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렇게 지난 1월 말 아이돌보미 교육도 이수했다. “선생님 교육 받으러 가면 하늘이 우울해지겠네.” 회진을 돌던 간호사가 하늘이에게 눈을 맞추며 말했다.
한순희씨는 부산의 영아재활원도 고려하고 있었다. 강원대병원 전원을 문의할 무렵 전국을 수소문해 겨우 찾은 시설이었다. “대기자가 많아 2026년 9월에 입소가 가능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야기를 들은 양미영씨가 맞섰다. “재활원에 보낼 거면 지금부터 손 뗄게요.” 하늘이도 양미영씨도 서로에게 정이 들고 있었다. “더 정이 들기 전에”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어떻게 시설에 보내요. 우리 애기, 어디 눈밭에 버리는 것 같잖아요.”
박진성 과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늘이에게 고정적으로 정을 붙일 수 있는 가족이 필요해요. 계속 바뀌는 어딘가에, 우주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지 않을까요?” 부산의 시설 입소가 반갑지 않았다. 한순희씨가 말한대로 강원도 아이였다. 부산은 너무 멀었다.

■ 홀로 뛰는 후견인
아이는 2월 말이면 퇴원 수속을 밟아야 한다 → 강원도에는 장애영유아 거주시설이 없다 → 간병인이 아이의 가정 돌봄 의사를 밝혀왔다 → 현재로선 간병인과 아이를 매칭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 → ….
한순희씨의 머릿 속은 복잡했다. 이 모든 숙제가 다시 그에게로 왔다.
엄마 김미소씨의 후견인을 맡았을 때부터 그랬다. 모든 게 홀로 부딪혀야 할 ‘숙제’였다.
공공후견인이 된 지 한 달도 안 됐을 때의 일이다. 한순희 씨는 허리가 아프다는 미소씨를 정형외과에 데리고 갔다가 임신 사실을 알았다. 임신 7개월차였다. 장애인 성폭력이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어느 놈이든 다 잡는다고 했다. 하지만 가해자를 특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일단 하늘이부터 살려놓는 게급했다. 아이는 초음파 검사에서 이상 소견을 받았다. 심장에 구멍 세 개가 있었고(심방중격결손, 심실중격결손), 오른쪽 귀가 보이지 않았다(소이증). 아이 출산까지 병원 이곳 저곳을 뛰어다녔다. 거주지 속초에서 50분 거리의 강릉아산병원(강원 영동권역 상급종합병원)은 수술이 어렵다고 했다. 강원권역모자의료센터(정부가 지정한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기관)인 강원대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태어나고도 한순희씨는 수차례 서울을 오갔다. 왕복 450㎞ 거리였다. 아이의 수술은 1년여 간 이어졌다. 수술 하나에도 보호자가 필요한 절차가 여러 개였다. “체력이 딸렸어요. 한 번은 정말 쓰러진 적이 있었다니까요.” 장애인 지원 봉사를 하던 홍현표(62)씨가 따라붙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속초를 떠나 “하루를 꼴딱 서울에서 보내고 녹초가 돼 돌아오는” 일상이 반복됐다.

■ 장애영유아 논의기구가 없다
2026년 2월 4일. 어린이병동 당직 근무를 서던 박진성 과장이 답답함을 호소했다. 아이 퇴원까지 고작 한 달이 남아 있다.
“입원 7개월 동안 정해진 게 없어요. ‘저 길이 괜찮은 것 같은데?’ 하고 이야기가 나와도 결론이 없어요. 당장 다음 달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간병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중환자실로 내릴 수도 없어요. 퇴원이 가능한 아이를….”
박진성 과장이 보기에 재활은 강원도에서도 충분히 가능했다. 이미 강원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물리치료, 작업치료, 기립기 서기를 주 단위로 반복하고 있었다. 또 다른 거주 조건은 소아응급 진료였다. 가래가 자주 끼는 탓에 열이 오르고 폐렴 증세가 있으면 바로 병원을 찾아야 했다. 이같은 소아 치료가 속초에서는 어려웠다. 박진성 과장이 소아응급실 당직을 설 때마다 수많은 소아 환자가 영동권역에서 오고 있었다. 이왕이면 춘천에 머물기를 바랐다.

“지원이 신청주의라서요.” “후견인이 말씀을 안하셨어요.” “아이를 알고 있는데….” “들어본 것 같아요. 청력 장애가 있다고 했나요?” “하늘이 상황이 이런 줄은 지금 알았아요.” 지자체 장애인 부서 관계자들은 퇴원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야 하늘이 상황을 인지했다.
2월 6일. 속초시청으로부터 한순희씨에게 연락이 왔다. “시설을 알아볼테니 아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의사 소견서를 받아달라”는 요청이었다.
박진성 과장이 호소했다. “의료, 행정, 복지 관계자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담당기구가 없어요. 아이는 계속 병원을 돌고 돌거예요. 의료기관은 할 수 있는 일을 할게요.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하는 플랫폼이 필요해요. 지역사회에서 이런 기능을 해준다면 병원은 하늘이 같은 아이를 더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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