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두바이쫀득쿠키가 떠올린 부산의 추억

최영 문화기획자·전 부산진문화재단 사무처장 2026. 2. 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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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문화기획자·전 부산진문화재단 사무처장

처음 생긴 지하철을 타고 서면역에 내려 지하상가를 걸었을 때의 그 경이로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목적지인 동보극장까지 좌우로 늘어선 온갖 패션가게들의 화려함은 10대 소년의 눈을 사로잡았다. 영화를 본 후 태화백화점을 돌아다니는 것도 큰 재미였는데 갖가지 신상품들을 ‘아이쇼핑’하며 전층을 휘젓고 다녔다.

2, 3년 후 지하철이 남포동까지 연장돼 광복동 거리로 진출했을 때는 고급브랜드 매장의 거대한 쇼윈도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부산극장이나 부영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국제시장 골목골목을 누비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그 시절 십대에게는 두세 달 용돈을 알뜰히 모아 개봉영화를 보고, 백화점 지하상가 브랜드거리 대형시장을 누비고 다니다 레코드가게 구석에서 수십 개의 음반을 뒤적이며 장고 끝에 한 장의 LP를 건져나오는 것이 최고의 사치이자 문화생활이었다. 그러다 스무살이 넘어 서울의 명동 강남거리를 가보고 부산보다 훨씬 큰 백화점에 들어가봤을 때의 놀라움은 오히려 고향의 거리를 평범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 우리에겐 시내구경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심에 나가기만 해도 온갖 구경거리들로 가득찬, 즐거운 시청각적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를 거치며 도심의 화려한 풍경은 모든 이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십대 시절의 추억이 서린 광복동거리에는 이제 한집 건너 점포임대 딱지가 붙었을 정도로 빈점포가 많고 여전히 거대한 쇼윈도 안에는 화려한 상품이 걸려있지만 예전만큼 지나가는 행인의 눈길을 붙잡지는 못했다. 안타깝지만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며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한 결과라 생각하니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은 간단한 생필품부터 옷가지 음식 가전·가구까지 거의 모든 상품을 집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한다. 슬리퍼 신고 집 앞 편의점에 가는 것 말고 차를 타고 나가 사야하는 물건, 먹어야 하는 음식에는 꼭 가서 먹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지만 움직인다. 먹고 마시고 사고 입는 것이 최소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소비가 아니라 내 라이프스타일을 규정 짓는 경험적 행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비에 문화가 결합돼 한 개인의 자아와 정체성을 만들고, 타인과 공유하고 공감하며 취향공동체를 만들기도 하고, 집단적 행동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활동이 되기도 하는 다층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사람을 찾아오게 하는 힘은 화려함이 아니라 독특함, 꼭 거기 가야지만 느낄 수 있는 개성과 매력, 그로 인해 내 삶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나와의 교감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부산에도 전통적인 서면 상권이 전포동으로 확장되고, 해운대 광안리 바닷가에서 이면도로와 골목으로 젊은이들이 몰리고 있지 않나 싶다. 대형마트 등장으로 쇠락을 우려했던 전통시장 중에서도 부전 부평깡통시장처럼 부산을 찾는 관광객의 필수코스로 각광받는 곳도 있다. 그렇게 전국 각지에 무슨 길 하며 이제는 골목경제학이라는 이론까지 등장했다.

얼마전 와이프와 외출했다가 두바이쫀득쿠키(두쫀쿠)가 유명하다는데 한번 사러 가보자며 서면에서 전포사잇길로 발길을 옮겼다. 검색해서 몇 군데를 찾긴 했는데 이미 늦은 오후여서인지 가게 문에는 매진 푯말이 붙었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가게 앞에는 당일 마지막 판매시간에 맞춰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실패에 굴하지 않는 와이프는 다음 날 오픈런을 시도해 ‘그 귀한 아이’ 2개를 득템해 돌아왔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나도 한입 베어물었는데, 그순간 모래를 씹는 듯한 이물감에 입이 아닌 코로 비명이 새어나왔다. 약간 그런 느낌이 있다고 한다며 첫째는 태연히 엄마와 ‘그놈’을 맛있게 나눠먹었다. 최고 셰프가 만들었다는 두쫀쿠도 그 집 아이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했다고 하니 트렌드를 못따라가는 아저씨가 나 하나만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혈액이 부족한 겨울에 헌혈센터가 ‘그 녀석’을 기념품으로 활용해 대박이 났다는 뉴스를 봤다.


획일적인 상품성이 대중을 사로잡던 시대에 독보적인 개성만 있으면 전 세계와 교감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우리 부산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두쫀쿠를 씹다가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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