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그리움의 다른 이름

동네 어른들은 개울가에 모여 돼지를 잡고, 집집마다 연기가 피어오른다. 온 마을이 마치 큰 잔치를 앞둔 것처럼 분주하고 활기가 넘친다. 그 시절 설날은 한 가정의 명절이 아니라 마을 전체의 축제였다.
고향은 언제나 마음속에서 먼저 열린다. 어머니의 손맛이 스며든 정갈한 음식들, 장작을 쪼개던 아버지의 묵직한 도끼 소리, 골목길을 가득 채우던 이웃들의 웃음소리가 마치 오래된 영사기처럼 필자의 기억 속에서 다시 돌아간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 소리와 냄새와 온기는 여전히 설 명절의 고향으로 이끈다.
고향이란 무엇일까? 고향은 단지 지리적 땅이 아니다. 그곳은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장소'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남아 있는 자리'이다.
윤동주는 고향을 '별을 노래하는 마음의 집'이라 불렀고, 이청준의 소설 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의 고요한 눈밭 위 귀향을 통해 회한과 사랑을 교차시킨다. 황순원의 에 나오는 마을 시냇물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첫사랑과 추억의 감정이 스며든 시간의 상징이다.
고향과 천국은 그 어딘가 닮은 이름이다. 고향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추억을 소환하는 곳이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 인생의 종착지를 '하늘 본향'이라 부른다. 히브리서 11장 16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육신의 고향이 첫사랑처럼 처음의 고향이라면 천국은 인간이 가장 그리워해야 할 '마지막 고향'이다. 고향은 추억을 품고 있지만 천국은 소망을 품고 있다.
고향은 우리가 떠나온 곳이라면, 천국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집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고향'은 하늘 본향을 향한 전초기지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는 자만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아는 법이다."
문학과 영화 속 고향의 느낌은 영혼의 향기처럼 다가온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고향 마을로 돌아온 청춘이 자연과 계절을 통해 마음의 허기를 채워가는 이야기다. 자극적인 도시를 벗어나 고향 밭에서 자란 채소와 엄마의 요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위로'였다.
"그래, 밥은 먹고 다니냐?" 그 말 한마디에 고향의 온도가 녹아 있다.
소설 에서 헤르만 헤세는 "고향이란 장소가 아니라'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영혼의 중심"이라 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고향 그 자체라기보다 그 시절의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고향의 의미는 무엇일까?
설 명절에 우리는 두 갈래 길목에 서 있다. 하나는 과거의 그리움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의 소망을 향한 길이다. 고향은 기억의 공간이고, 천국은 믿음의 목적지다.
이 둘은 삶의 앞과 뒤를 잇는 사랑의 다리다. 고향에 다녀오는 길, 어쩌면 우리 모두는 영원한 고향을 향해 가는 순례자인지도 모른다.
고향은 언제나 거기 있다. 그리고 천국은 우리가 가야 할, 또 하나의 고향이다.
설 명절, 그리움과 소망 사이에서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나'를 발견한다. 고향은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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