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오션 되는 비만약 시장] 美 정부 “의약품 가격 내려라” 압력 노보,올 영업익 5~13% 감소 전망 FDA는 비승인 조제 비만약 제동 전문가 “더 이상 황금알 산업 아냐” 국내제약사 차별화 된 기술력 필요
일라이 릴리의 체중 감량제 젭바운드(왼쪽)과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동일한 활성 성분을 사용한 복합조제 의약품의 대량 판매와 마케팅에 제동을 걸면서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의 경쟁 구도가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FDA의 조치를 두고 비만 치료제 산업이 공급자 우위 국면을 지나 본격적인 경쟁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최근 위고비로 시장을 선도해온 노보 노디스크마저 실적 둔화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만큼 비만약 시장이 레드 오션으로 접어드는 것으로 분석된다.
8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마틴 머캐리 FDA 국장은 7일(현지 시각) 성명을 내고 FDA 승인을 받지 않은 복합조제 의약품을 승인 의약품과 동일하거나 제네릭 제품인 것처럼 홍보·판매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법 집행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머캐리 국장은 특히 비만 치료제 성분인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의 활성 성분이 비승인 조제약에 대량으로 사용되고 이를 온라인을 통해 대규모로 마케팅하는 행태를 문제로 지적하며 “이 같은 위반 사항을 적절히 시정하지 않을 경우 압류와 금지명령 등 추가 법적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FDA의 성명 발표 직후 원격 의료 기업 힘스앤드허스는 위고비와 동일한 활성 성분을 사용했다고 홍보해온 조제 세마글루타이드 알약 제공을 중단했다. 앞서 힘스는 지난 5일 위고비 알약의 복제약을 위고비보다 1/3 수준인 월 49달러(약 7만 원)에 판매한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이에 노보와 일라이릴리 등 비만 치료제를 판매하는 주요 제약사들의 주가가 급락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미 보건 당국이 복합 조제약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복합 조제약은 기존 제약 성분의 용량을 조정해 처방하는 약으로, FDA 승인이나 임상시험 없이 출시할 수 있다. 안전성 문제가 언제든 불거질 수 있기에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에서는 약품 공급이 부족하거나 환자가 기성 약품에 알러지를 보이는 등의 특수 상황에만 복합 제조약을 허용하고 있다.
FDA의 조치는 최근 비만 치료제 공급 환경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마글루타이드(제품명 위고비·오젬픽)와 티르제파타이드(마운자로·제프바운드) 성분 주사제의 공급 여건이 개선됐다는 것이 FDA 결정의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노보 노디스크의 최근 실적 전망 하향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노보 노디스크는 3일(현지 시각) 실적 발표를 통해 2026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고정 환율 기준으로 전년 대비 5~13%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비만 치료제 개발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국 정부의 의약품 가격 인하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가격 인하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실적 발표 이후 뉴욕증시에서 노보 노디스크 주가는 하루 만에 14% 넘게 급락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특정 제품의 경쟁력 약화가 아닌 비만 치료제 시장이 가격 경쟁과 대체 기술 확산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했다. 독점적 성장 산업으로 평가받던 비만 치료제가 개발 경쟁과 제형 다변화 속에서 수익성이 빠르게 압박받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번 FDA 조치가 국내 제약업계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제약사들은 세마글루타이드 물질특허가 한국에서 2028년 6월까지 유지되는 점을 전제로 비만 치료제 개발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허가 올해부터 중국과 브라질 등 일부 국가에서 순차적으로 만료되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가격 경쟁 심화가 국내 개발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비만 치료제 개발 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한층 신중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노보 노디스크마저 가격 인하 압박 속에서 실적 전망을 낮춘 상황에서 복제약 개발에 성공한다해도 수익성을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제약사 중에서 현재 한미약품과 종근당, LG화학, 동아에스티, HK이노엔 등 다수의 국내 제약사들이 GLP-1 계열을 포함한 비만 치료제 개발을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의 경쟁이 빠르게 과열되는 상황에서 향후 국내 제약사들은 기술력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까지 함께 확보해야 하는 환경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비만 치료제 시장의 경쟁 심화는 비만 치료제가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산업’이 아니라는 점을 전 세계 제약 업계에 알리는 시그널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내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노보 노디스크를 비롯한 글로벌 빅파마들이 방어 전략을 강화하는 가운데 국내 비만 치료제 개발사들 역시 레드오션으로 접어든 시장 환경에서 기술력과 차별성을 앞세운 생존 경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위고비 복제품 논란, 저가 비만약의 함정은?”
박시은 기자 good4u@sedaily.com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박윤선 기자 sep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