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시선] 우리시대의영화㉒ 달콤한 인생-스스로 장르가 된 김지운 감독 그리고 한국형 누아르의 탄생

KBS 2026. 2. 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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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은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끌고 나간 감독 중 한 사람이다. 감독의 필모그래피 특징은 다양한 장르를 다룬다는 점인데 그는 종종 특정 장르의 유행을 이끌기도 한다. 특히 2005년 개봉한 <달콤한 인생>은 한국 누아르의 미학적 정점이다. <달콤한 인생>을 한국형 누아르의 탄생이라 말하는 이유는 이것이 동시대 영화인들에게 ‘필름 누아르’로 읽혔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에서 밤의 서울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세계 영화사의 어느 부분을 찢고 들어가 ‘필름 누아르’의 시공간으로 탄생하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낸 감독과 작품이 해외에서 언급될 때 우리는 놀라움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를 갈라파고스섬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감독들은 예술 영화의 본고장인 유럽, 상업영화의 중심인 할리우드, 그리고 가까운 일본과 홍콩 등 동아시아를 포함해 영화사 전체를 통찰하고 있다. 이들이 명백히 주류 세계와 같은 타임라인에 존재하고 있다.

이런 배경 위에서 동시대성을 갖춘 작가인 김지운 감독은 누아르 장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달콤한 인생>이 ‘누아르’의 양식화된 장르 문법을 따르면서도 이 문법을 비틀며 그것을 뛰어넘으려 한다는 점은 이를 증명한다.

영화 ‘달콤한 인생’ (사진 : 영화사봄 제공)


누아르 장르의 미학을 극단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과감함

누아르 장르는 문학으로 치자면 하드보일드와 유사하다. 단순한 의미로는 어두운 영화를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강렬한 명암대비, 범죄, 내레이션, 허무와 냉소 같은 요소들이 공통으로 등장한다. 관객을 낯설고 어둡고 불편하고 불안정한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점도 특징이다. <달콤한 인생>은 당시의 서울이라는 지형을 영화에 끌어들여 이 냉소적인 서울의 밤을 불안하고 어두운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이는 단순히 우울한 스케치가 아니다. 영화는 한국 사회가 선망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또 해체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이 도시의 욕망, 유능함이라는 이름의 폭력적인 힘과 서열의 콘크리트에 균열이 생긴다.

이병헌이 연기한 호텔 매니저인 선우는 조직의 보스 강 사장의 충성스러운 부하이자 해결사다. 그는 냉철하고 영민한 완벽주의자 같은 외피를 두르고 있다. 강 사장은 출장을 떠나면서 자신의 애인인 희수를 맡기는데 거기에는 그녀가 자신을 두고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을 감시하고 보고하라는 임무도 담겨있다.

팜므파탈과 남성성에 대한 위기는 누아르 장르에서 자주 보이는 구조이지만 김지운 감독은 이를 역전시켰다. 희수는 신민아 배우가 맡았는데 청순한 외모에 묘한 매력이 있는 첼리스트다. 조직의 구성이 차갑고 붉은 피의 세계라면 희수는 유연하게 휘어져 흔들리는 녹색 빛의 세계에 있다. 이 구도는 이들이 등장할 때의 공간과 빛의 질감으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선우를 둘러싼 세계가 철저한 위계와 수직적 힘의 관계를 보여주는 세계라면 희수의 세계는 그 명료한 직선을 벗어난 기하학적이고 비정형의 형태다.

선우는 보호자 입장에서 그녀를 공연장으로 데려다주고 귀가를 도우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적으로 얽히게 된다. 희수와 애인이 밀회하는 현장을 덮치고 힘으로 이들을 제압한 선우는 이를 강 사장에게 보고하는 대신 상황을 자신의 선에서 정리한다. 이때 희수는 순순히 그에게 통제되지 않는다. 희수를 다급히 뒤쫓은 선우는 희수를 붙잡아 돌려세우는데 골목의 모퉁이에서 이 두 힘은 재차 격돌한다. 누아르의 거친 조명 아래에서 드러나는 희수의 여드름 자국난 얼굴은 아름답다. 이 풋풋한 아름다움은 따로 때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말한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격자식의 수직적 구도의 공간은 이 장면에서 미묘하게 왜곡된다.

영화 ‘달콤한 인생’ (사진 : 영화사봄 제공)


영화 서사의 갈등과 함께 얽혀 들어가는 비극적 정서와 철학적 사유

선우는 희수의 둘 사이에 이성적 기류가 느껴지는 장면은 없다. 그러나 절대적인 존재인 강 사장과 조직에서 새로운 힘의 구심점으로 올라서고 있는 선우, 그리고 외부의 압력인 백사장 이 세 개의 힘이 부딪치며 선우는 배신자로 몰려 추락하게 된다. 선우는 폐공장에 매달린 채 피를 흘리고 땅에 파묻히기도 한다. 이는 또 다른 층위의 내부 서사에 닿아 선우의 죽음과 부활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유명한 대사가 등장한다.

“너 왜 그랬냐?”

선우는 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반복해 오답을 말하며 조직으로부터 완전히 축출된다. 그리고 스스로 죽음에서 기어 나와 복수를 시작한다. 최후에 선우는 강 사장과 대면해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그의 질문을 되돌려 준다.

선문답 같은 두 사람의 답 없는 질문은 내레이션과 함께 폭력으로 난자한 영화의 이미지들과 연결되며 독특한 잔상을 남긴다. 불친절한 서사가 만든 공백은 관객을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킨다. 선우와 강사장 사이에서 선악을 구별하기란 모호하다. 이 회색지대의 모호한 도덕성은 세계가 가진 혼란과 트라우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상태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너는 나한테 왜 그랬냐?”

둘은 같은 질문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한다. 마침내 서로를 마주한 두 사람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닮아있다. 어쩌면 이 질문은 스스로를 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흔들렸어?’
‘나 흔들렸을까?’

흥미로운 점은 여기 어디에도 진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을 흔들리게 만든 것은 실상 형체 없는 것으로 그들이 기대했던 것, 희망했던 것,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 것으로 역시 내레이션의 선문답과 연결된다.

도시의 밤이라는 공간에서 발견하는 밀도 높은 미장센

영화에 담긴 밤의 서울은 리얼리즘의 공간이 아닌 과잉이라 할 만큼 철저하게 표현주의적 공간이다. 이 영화에서 촬영감독을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달콤한 인생을 찍은 김지용 촬영감독은 이 영화가 데뷔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어둠이 매력적인 것은 그가 빛을 잘 설계하는 촬영감독이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의 제작 환경에서는 흔하지 않은 촬영과 조명을 함께 운용하는 촬영감독인 점은 달콤한 인생이 누아르의 장르 미학을 구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 '달콤한 인생' 이야기

1. <달콤한 인생>은 58회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었다.

2. 국내 개봉을 한 날은 2005년 4월 1일로 만우절이다.

3. 김지용 촬영감독은 데뷔작인 <달콤한 인생>으로 청룡영화상에서 촬영상을 수상했다.

4. 영화의 시작에 나오는 내레이션 속 이야기는 혜능의 6조단경을 변형해서 사용했다.


글 : 영화평론가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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