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국회의원 3억은 애교, 시장 20억까지… ‘뇌물성 파티’ 단체장 북콘서트
지역 기업들에겐 거절할 수 없는 ‘생존 고지서’
인사권 무서운 공무원들 ‘강제된 자발 참여’
국장급 100만원, 과장급 70만원, 최하 30만원설
책값 2만원 납부가 오히려 비정상으로 ‘눈밖에 나’
모금액수 상한선·신고 의무 없는 ‘현금 세탁소’
결혼·부음처럼 경조사, 신고·관리감독 사각지대
선거비용은 국고보조금 보전, 모금액 고스란히 축재

오는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직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출판기념회가 봇물 터지듯 열리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경우 2억~3억원 수준의 모금을 하고 있지만 현직 시장과 군수는 막강한 인사·예산편성·각종 인허가권을 앞세워 작게는 5억원에서 많게는 20억원까지 모금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현직 단체장들의 출판기념회가 아무런 감시와 감독도 받지 않는 ‘합법의 탈을 쓴 뇌물 창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8일 디지털타임스 취재를 종합하면 인구 50만명 이상 대도시 단체장이 출판기념회를 열 경우 단 하루 만에 최소 10억원 이하에서 최대 20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재선이나 3선이 유력한 단체장의 행사에는 최소 5000명에서 1만명의 인파가 동원되는데 최소 10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의 돈봉투가 오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경기도 북부의 모 시장은 한번의 출판기념회로 20억원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지역 사회에 파다하다.
참석자 1인당 평균 20만원을 냈을 경우를 가정하면 1만명 참석 시 20억원, 5000명 참석 시 10억원의 현금이 마련된다. 시장과 군수의 개인통장으로 들어가는 돈이고 아무런 검증도, 감시도 받지 않는다.
이날 행정안전부와 교육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17개 시·도, 226개 시·군·구)의 통합 재정 규모는 약 310조원, 전국 시·도 교육청의 예산은 약 100조원에 달한다. 현직 기초 단체장의 경우 세금 집행권은 물론, 각종 개발 사업 인허가권, 행정 처분 권한, 산하 단체 인사권까지 한 손에 쥔 ‘황제’로 군림한다. 시장·군수의 부인들은 ‘왕비’로 통한다.
공직 사회 내부에는 구체적인 ‘단가표’까지 나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공직자는 “승진에서 혜택을 봤다거나 부단체장 보직 이동이 절실한 국장급은 100만원, 승진이 급한 과장급은 50만~70만원이 기본 상식선”이라며 “팀장급이라고 해도 30만원 이하를 넣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한 자치단체 공무원은 “일반 회사로 말하자면 절대적 인사권을 가진 ‘사장님’인 단체장의 출정식을 모른 척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다른 공무원 역시 “역설적으로 진짜 책값인 2~3만원을 넣는 건 비정상으로 취급받는다”며 “차라리 안 가면 중간이라도 간다. 적은 돈을 내면 오히려 찍힐 수가 있다”고 했다.
기업으로 가면 단위는 더 커진다. 아파트 등 각종 건축 인허가, 관급 공사 수주, 용역 계약 등에 따라 경영실적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지역 중소기업체 한 관계자는 “출판기념회 때 수천만원의 목돈을 한 번에 인출하는 경우는 드물다”면서도 “다만 기업인들의 성의표시는 최소 수백만원 단위 이상인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교육감의 경우 단체장들에 비해서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실질적 권한은 더 막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감은 학교 신설 및 증개축 공사, 급식 식자재 납품, 스마트 기기 보급 등 조 단위의 이권 사업을 집행한다. 지역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장보다 더 무서운 게 교육감”이라며 “학교 공사 수주나 납품권을 따내기 위해 교육감 출판기념회에 ‘성의 표시는 필수’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문제의 핵심은 현행 법령의 사각지대다. 출판기념회 수익금은 정치자금이 아닌 ‘출판물 판매 수익’ 혹은 ‘경조사비’로 분류된다. ▲모금 한도 무제한 ▲선관위 신고 의무 없음 ▲내역 비공개 ▲비과세라는 ‘4무(無)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수금(收金)’ 행렬은 선거가 임박할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선거 90일 전인 올 2월 초까지 출판기념회를 잇따라 개최한 현직 단체장은 파악된 인원만 최소 30여명에 달했다. 광역단체장 중에서는 강기정 광주시장, 김영록 전남지사, 최민호 세종시장, 김관영 전북지사가 출판기념회 및 북콘서트를 열어 세를 과시했다. 교육감 중에서는 정근식 서울시교육감과 김대중 전남교육감,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이 대열에 합류했다.
기초단체장의 열기는 더 뜨거웠다. 서울에서만 이수희(강동)·박강수(마포)·김경호(광진)·박준희(관악)·정원오(성동)·오승록(노원) 구청장 등이 행사를 치렀고, 지방에서는 김경일 파주시장·정명근 화성시장·우범기 전주시장·박정현 부여군수 등 전국 각지에서 20여명의 현직 시장·군수·구청장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특히 광역단체장과 대도시 기초단체장의 행사에는 주최 측 추산 1만여 명에 육박하는 구름 인파가 몰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행법상 출판기념회는 선관위 신고 의무가 없어, 언론에 보도되지 않거나 비공개로 진행된 행사까지 포함하면 실제 개최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단체장 측 인사는 최근 개최한 출판기념회에서의 수익 규모를 묻는 질문에 “기자 본인은 자신이 받은 축의금이나 부조금 내역을 국세청에 신고하거나 타인에게 그 돈의 액수를 공개하느냐”고 반문했다. ‘출판기념회는 공익적 목적을 담고 있어 개인의 경조사와는 다른 성격’이라고 재차 질문하자 “출판기념회라는 게 사실 그렇다. 돈 모금에 있어서는 경조사처럼 취급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주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이덕춘 변호사는 “나 또한 출판기념회를 열어봤지만, 수익금을 단 1원도 신고하거나 공개할 필요가 없었다”며 “누가 얼마를 냈는지, 어디에 썼는지 소명할 의무도 없는 법적 사각지대가 맞다”고 꼬집었다.
출판기념회는 수사기관도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분야다. 출판기념회 수익금을 뇌물죄 등 금품수수로 엮을 만한 제도가 부재한 데다, 현장에서 현금으로 이뤄지는 거래에 대한 추적도 쉽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출판기념회에 카드 단말기를 설치해 논란이 일었던 노영민 전 의원이 차라리 투명했다는 재평가가 나온다. 카드 결제는 출처 확인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디지털타임스와의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출판기념회는 법적으로 성격이 애매모호하다”며 “갑자기 수천만원이나 수억원 이상의 현금이 인출돼 특정 계좌에 찍히는 등 명확한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수사 대상으로 간주해 일일이 체크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의심이 간다는 이유로 출판기념회 모금함을 열어보거나 출판사 계좌를 열어볼 경우 오히려 과잉수사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정치인이나 선거를 다루는 범죄는 더욱 예민하다”고 덧붙였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역시 “공직선거법에 따른 기간 준수 여부만 확인할 뿐, 모금 액수나 방식은 선관위 소관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익명을 요구한 공직선거법 전문변호사는 “솔직히 현장에서 얼마를 받아 챙긴다 해도 대가성 입증이 어려워 뇌물죄 적용이 상당히 어렵다”며 “단체장 재임 중 개최 금지나 수익금 전액 신고 의무화 등 입법적 결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선거법상 출마자들은 선거가 끝난 후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 비용을 돌려받기 때문에 출판기념회 수익금은 고스란히 개인 재산을 증식시키는 용도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초까지 정치인 북콘서트 현황. [각 시도지사 등 취합]](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8/dt/20260208211020256imhr.png)
김윤정 기자 kking152@dt.co.kr, 안소현 기자 ashright@dt.co.kr, 윤상호 기자 sangho@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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