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붐’ 타고 글로벌 PC 공급망 뚫는 中 메모리

오로라 기자 2026. 2. 8. 16: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HP·델 등 PC 업체, 중국 D램 검증 돌입
전자기기 업계에서 ‘구세주’된 중국 메모리
중국 동부 장쑤성 화이안에 있는 반도체 칩 공장에서 일하는 한 직원. /연합뉴스

인공지능(AI)이 촉발한 극심한 ‘메모리 반도체 공급난’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중국 메모리가 글로벌 IT 기업의 구세주로 떠오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스마트폰·PC·자동차 등 모든 전자기기에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부품이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글로벌 3대 메모리 제조사가 생산 역량을 AI 데이터센터용 첨단 제품에 집중하며, 주요 전자기기 회사들의 범용 D램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졌다.

심각한 공급난이 수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계속되자 대체 공급처가 절실해진 글로벌 전자기기 회사들이 그동안 외면했던 중국산 메모리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선 “글로벌 공급망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던 중국 메모리의 반격이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글로벌 시장 점유율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한다. 중국 메모리 회사들이 AI 붐에 따른 첨단 반도체 수퍼사이클의 낙수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인데 한국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까지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공급망 침투하는 中 메모리

지난 5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글로벌 2·3위 PC 제조사인 미국 HP와 델이 중국산 메모리칩 사용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보도에 따르면 양사는 중국 최대 D램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의 제품을 받아 품질 검증에 나선 상태다. 현재 이 기업들은 미국 외 지역에서 판매하는 PC 제품에 중국산 메모리를 탑재하는 계획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메모리 공급사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의 제품 공급 능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CXMT 제품이 검증을 통과한다면 HP·델의 제품에 사상 처음으로 중국산 메모리가 탑재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닛케이는 “미국 PC 제조사가 반드시 CXMT의 D램을 사용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소비자 가전 업계에 중국 반도체 기업은 구세주가 된 셈”이라고 전했다.

대만 선두 PC 제조사인 에이서와 에이수스도 중국산 D램 사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제이슨 첸 에이서 회장은 최근 “중국 공급업체들의 새로운 생산 설비가 가동되면 메모리 부족 사태가 개선될 것”이라고 했고, PC 조립을 맡은 중국 하청 업체들에 중국산 메모리를 구매한다면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5위 PC 제조사인 에이수스도 중국 내 PC 생산 파트너사에 중국산 메모리칩 수급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이처럼 절박해진 것은 메모리 산업에서 비(非)AI 제품의 우선순위가 AI 제품에 비해 크게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AI 칩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마저 메모리 수급난을 이유로 올해 게이밍 그래픽처리장치(GPU)인 ‘지포스 RTX 50 시리즈’ 신제품 출시를 미루기로 했다. 2년 간격으로 GPU 신제품을 출시해 온 엔비디아에 있어 GPU 출시 지연은 이례적인 일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엔비디아 내부에서는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 중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진격하는 중국 메모리

CXMT·양쯔메모리(YMTC)는 글로벌 시장에선 판매가 미미했지만, 세계 1위 PC 제조사인 중국 레노버와 화웨이·샤오미·오포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메모리를 납품해왔다. 지정학적 고려로 서방 기업 공급망 진입이 어려웠지만, 내수 시장에서는 꾸준하게 실력을 쌓아온 것이다. 중국 메모리 회사들이 일단 글로벌 공급망에 첫발을 내딛는다면 단숨에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에선 CXMT가 올해 글로벌 D램 시장에서 8%가량, YMTC는 15% 안팎의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위협 요소로 꼽힌다.

메모리 공급난을 의식한 중국 기업들은 기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서 써왔던 ‘덤핑 전략’까지 거둬들이고 있어 수익성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탄탄한 수요에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자 중국 기업 역시 시장 수준이나 경쟁사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메모리 공급 과잉 시절 중국 기업은 한국 기업보다 50% 이상 싼 가격에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SK하이닉스가 공급 물량을 모두 채우지 못한 일부 낸드플래시 품목의 공급을 맡게 된 YMTC가 SK하이닉스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현상까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메모리 후발주자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메모리 인터커넥트칩 기업인 중국 몬타주 테크놀로지가 올해 홍콩 증시에 이중 상장을 준비하고 있고, D램·낸드 기업인 호신전자, XTX테크놀로지 등도 홍콩 증시 상장에 나서고 있다. SCMP는 “중국 반도체 회사들이 상장을 통해 기술적 타당성과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인정받게 되면 내수 기업에서 수출 기업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중국 반도체 업계의 커다란 전략적 변화가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