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피’ ‘천스닥’ 견인한 로봇주…상승 흐름 어디까지 갈까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1월27일 한국 증시가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돌파하며 '오천피' 시대가 개막했다. 코스닥도 4년 만에 1000포인트 고지를 다시 밟으며 '천스닥'을 달성했다. 차익 실현 매물과 미국 증시의 영향으로 2월2일 코스피 시장에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되는 등 조정 국면도 있지만, 여전히 랠리는 계속되고 있다. 주가 랠리의 주역은 명확하다. 지난해 하반기까지 지수를 방어하던 반도체주가 조연으로 물러난 뒤 주연 자리를 꿰찬 로봇주였다. 올해 초 국내 증시는 사실상 로봇주 독무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증권가에서는 '오천피' 돌파의 일등공신으로 현대자동차를 지목한다. 시작은 1월5일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신모델 시연 이후다. 이날을 기점으로 현대차에 대한 시장의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단순 완성차 제조·판매사가 아닌 로봇과 인공지능(AI) 기술이 결합된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재평가되며 로봇 대장주에 등극했다.

현대차, 코스피 5000 견인차로
이후 현대차 주가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지난해 12월30일(종가 기준) 29만1000원이던 주가는 1월22일 장 중 59만원까지 급상승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60조원대였던 시가총액은 100조원을 돌파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은 시가총액 3위(2월4일 기준)에 랭크됐다. 이뿐만 아니라 아틀라스 개발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IPO)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기아와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 그룹주도 동반 강세를 보였다.
현대차는 로봇주 열풍을 견인했다. 기존 로봇 대장주이던 두산로보틱스는 1월30일 장 중 13만600원까지 터치했고, 현대그룹 계열 물류 자동화 기업 현대무벡스는 1월23일 5만400원이라는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특히 유진로봇의 주가 상승세는 괄목할 만했다. 지난해 12월30일 종가 기준 1만4400원에서 2월4일 3만2750원으로 127%가량 올랐다.
대형주가 다진 길로 중소형주들이 질주했다. 중소형 로봇주의 지난해 12월30일 대비 2월4일 주가 등락률은 휴림로봇 92.48%, 에스피지 91.38%, 레인보우로보틱스 60.89%, 해성에어로보틱스 60.18%, 티엑스알로보틱스 34.32%, 케이엔알시스템 30.81%, 티로보틱스 25.67%, 하이젠알앤엠 24.70%, 삼현 12.13% 등이었다.
로봇주 열풍은 이차전지주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산업용·휴머노이드 로봇이 장시간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배터리가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간 반도체가 증시를 주도하면서 이차전지주는 이렇다 할 악재가 없음에도 상대적으로 탄력이 제한된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로봇주가 부상하자 시장의 유동성은 이차전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 결과 1월 한 달간 포스코퓨처엠·LG에너지솔루션·에코프로비엠·에코프로·삼성SDI·SK이노베이션·LG화학·SKC 등 주요 이차전지 종목은 모두 강세를 보였다. 증권가에서는 이를 주도주 장세 이후 나타나는 순환매의 한 국면으로 보고 있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로봇주가 급등한 가운데 로봇에 사용되는 배터리 상용화 기대감이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며 "이차전지주가 로보틱스 상승세를 이어받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로봇주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한다.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휴머노이드 로봇 공급망 재구축에 나서면서 국내 기업이 수혜를 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의현 미래에셋자산운용 ETF운용본부장은 "미국은 믿고 맡길 수 있는 피지컬 AI 파트너가 필요한데, 한국이 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한국은 메모리·파운드리·배터리·로봇·자동차 산업을 모두 갖춘 나라"라고 설명했다.

"버블 구간 지나 시장 성장·재편 이뤄질 것"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단기간에 급등한 지수에 대한 피로감과 밸류에이션 부담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로봇주 종목들의 현재 주가가 미래 성장성을 감안해도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투자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기업은 사업의 실체가 불분명함에도 로봇 사업 진출이나 개발 착수 등 단발성 뉴스에 의존해 주가가 널뛰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식음료·담배 가공기계 제조업체인 협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협진은 최근 사명을 '앤로보틱스'로 변경하고 로봇 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한 뒤 주가가 두 차례 상한가로 직행했다. 그 결과 1000억원 미만이던 협진 시가총액은 열흘 만에 2000억원대까지 치솟았다.
거품론은 일부 현실화하고 있다. 실제 주요 로봇주 종목들은 1월23일 전후로 주가가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진 결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로봇주 종목 상당수는 주가 상승분의 일부를 반납해야 했다.
매파로 분류되는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후보 지명으로 금리 인하 지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내 증시에 충격을 안긴 2월2일 '블랙 먼데이'에는 주가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이날 외국인과 기관의 순매도가 이어지면서 레인보우로보틱스·두산로보틱스·원익홀딩스·하이젠알앤엠·삼현·한라캐스트·뉴로메카·에스비비테크·로보스타·알에스오토메이션·에스피지·엔젤로보틱스·에브리봇 등 로봇주는 일제히 음봉을 그렸다.
다만 전문가들은 거품이 형성되는 시기가 있더라도 장기간에 걸쳐 시장이 성장해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버블→자금 유입→인력 확충과 기술 발전→생태계 조성→시장 성장→시장 재편'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초기 시장이 형성되고, 기술적 발전이 가속화되는 단계에서 관련 기업들의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며 "일부 검증되지 않은 기업들에 대한 투자 집행도 많아지면서 관련 시장 내 버블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송 연구원은 이어 "대규모 자금의 유입은 시장 성장의 기초체력이 된다"며 "자본의 확충은 우수 인력의 유입과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고,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산업 내에 공유되면서 산업 발전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