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숨기고 사익 편취'… 공정위, 김준기 DB 회장 고발

이성원 2026. 2. 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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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 지분 관계없는 재단 '지배'
2010년부터 지정 자료 고의 누락
DB하이텍 등 핵심 계열사 지원 동원
조직도 점선 표기 등 은폐 정황 포착
음잔디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관리과장이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DB의 동일인 김준기 회장이 공시대상기업집단 등 지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며 동곡사회복지재단과 산하 회사 등을 소속 현황에서 누락한 행위를 적발,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DB그룹 창업주 김준기 회장은 2021년 개인 자금이 필요해지자 그룹 내 공식 계열사가 아닌 '빌텍'으로부터 220억 원을 빌렸다. 빌텍의 재무 상황 대비 부담이 큰 금액이었으나, 빌텍은 직전에 DB하이텍에 부동산을 371억 원에 매각해 자금을 확보한 상태였다. 김 회장은 대여받은 자금을 중도상환 수수료 없이 수시로 상환과 차입을 반복했다. 금융기관이 아닌 일반 회사가 거액을 타 기업집단 총수에게 대여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빌텍을 김 회장이 은닉한 DB그룹의 '위장 계열사'로 판단했다.

공정위는 장기간 위장 계열사를 운영하며 그룹 지배력 유지와 사익 편취에 활용해 온 김 회장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지분 관계가 없는 회사를 '실질적 지배력'만으로 계열사로 인정해 총수를 고발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익편취와 기업집단 내 내부거래를 통한 부당지원이 여전히 만연하고 있다"며 "중대한 법 위반을 저지른 총수 일가 등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고발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김 회장이 첫 사례가 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김 회장은 2010년부터 최근까지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지정 자료)를 제출하면서, 동곡사회복지재단과 그 산하 15개 회사(강원일보, 빌텍, 삼동흥산 등)를 고의로 누락했다. 해당 회사들은 1999년 계열에서 제외됐으나, 실제로는 김 회장의 철저한 통제 아래 DB그룹 계열사처럼 운영됐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에서 '지분율 요건'이 아닌 '지배력 요건'을 적용해 위장 계열사 여부를 입증했다. 김 회장 측이 재단 회사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지 않았음에도, 인사·조직·자금 거래 등 다수의 증거를 토대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본 것이다.

음잔디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관리과장이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DB의 동일인 김준기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실제 재단 회사들은 그룹 핵심 계열사인 DB하이텍의 경영권이 흔들리거나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해결사'로 투입됐다. 2010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DB하이텍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삼동흥산과 빌텍 등 재단 회사들이 수백억 원의 대출을 받아 DB하이텍의 부동산을 매수했으며, 2022년에는 김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두 회사는 핵심 계열사인 DB아이엔씨의 지분 1%를 대리 취득하기도 했다.

그래픽=박종범 기자

김 회장 측의 은폐 수법은 치밀했다. 2016년부터 '재단 협력회사 운영담당'이라는 직위를 신설해 총수의 최측근들이 재단 회사들을 직접 관리하도록 했다. 또 2023년 작성된 그룹 조직도에는 재단 계열사들을 '점선'으로 표시하고, "관계사 배포 시에는 동곡재단 부분을 삭제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아울러 DB그룹과 재단회사 간 임직원 겸임을 비롯해 수십 년간 다양한 인사교류가 이뤄진 사실도 확인됐다.

공정위는 김 회장이 이러한 위장 경영을 직접 결정하거나 승인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특히 아들에게 회장직을 물려준 후 본인의 권한 침해를 우려해 "고위직 인사와 지배구조 사안은 동일인이 직접 결정·승인한다"는 내용을 내부 문서에 적시한 사실도 확인했다. DB그룹은 지난해 5월 기준 공정자산총액 14조8,000억 원으로 자산규모 순위 40위에 해당한다.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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