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윤 어게인’에 꽁꽁 묶인 장동혁의 유일한 돌파구

개헌은 참 어렵습니다. 왜 어려울까요? 정치 양극화 때문입니다. 증오와 확증편향 때문입니다.
대략 2000년부터 정보화 혁명, 2010년부터 모바일 혁명이 시작됐습니다. 정당의 권력이 총재에서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원에서 강성 당원과 지지층으로 이동했습니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팬덤이 정치를 좌지우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돈벌이에 눈먼 유튜버들은 “저들을 다 쓸어버려야 한다”며 증오를 부추깁니다. 강성 당원과 지지층은 점점 더 극단화하고 있습니다.
개헌의 요체는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것입니다. 선거 제도를 바꿔서 다당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정치를 살릴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습니다.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학자나 정치인들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그러나 확증편향과 증오에 휩싸인 강성 당원과 지지층은 전문가들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세상을 선과 악, ‘우리 편’과 ‘저쪽 편’으로 나눠서 봅니다. 제왕적 대통령을 우리 편이 차지해서 저쪽 편을 다 쫓아내고 싶어합니다.
다당제를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양당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쪽 당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해 강제로 해산”하거나 “선거에서 0으로 만들어버리자”고 합니다. 우리 편만의 일당 독재를 원합니다.
문제는 이들의 희망과 달리 현실에서는 절대로 저쪽 편을 다 쓸어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대 양당 체제에서 당내 권력은 강경파가 차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양당의 주도권을 강성 당원과 지지층이 장악하면서 결과적으로 정치 양극화가 더 심화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른바 ‘개딸’과 이른바 ‘윤 어게인’의 적대적 공존입니다.
거대 양당 체제가 일시적으로 무너지는 바람에 개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뤄진 2017년 궐위 대선 때였습니다. 2017년 5·9 대선을 전후해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와 ‘입법 연대’를 하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의석을 합치면 200석이 넘었기 때문에 입법은 물론이고 개헌도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먼저 적폐청산을 해야 한다” “행정명령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며 거절했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 민주당 압승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청산 우선론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민주당은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부산시장을 넘겨줬습니다. 2022년 3·9 대선에서 정권을 빼앗겼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처럼 궐위 대선으로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런데 개헌에는 매우 적극적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초에 개헌에 반대하던 것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대선 직전인 지난해 5월18일 광주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 대통령 결선투표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등 권력구조 개편과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포함한 개헌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이르면 2026년 지방선거, 늦어도 2028년 총선에서 국민투표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대통령 당선 뒤 7월17일 제헌절에도 강한 개헌 의지를 밝혔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헌법 전문 수록, 국민 기본권 강화, 자치 분권 확대, 권력기관 개혁까지.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헌법의 모습입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국민 중심 개헌’의 대장정에 힘 있게 나서 주시리라 기대합니다. 개헌 논의 과정에 국민의 뜻이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대통령으로서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개헌 논의는 진전이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8월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은 대야 강경파인 정청래 대표를 선출했습니다. 국민의힘도 대여 강경파인 장동혁 대표를 선출했습니다. 여야 간 대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으면 개헌 논의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개헌을 밀어붙이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입니다. 사실 역대 모든 국회의장은 개헌론자였습니다. 국회의장이 되면 제왕적 대통령제로는 정치를 발전시킬 수 없고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우원식 의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올 신년사에서 “6월 지방선거에 맞춰 하나라도 합의할 수 있는 것부터, 개헌의 첫 단추를 끼우는 해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월2일 임시국회 개회식에서는 “국민투표법을 설 연휴 전까지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야 개헌을 할 수 있습니다.
국민투표법은 재외국민 때문에 2014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지만,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민투표를 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가 장단을 맞췄습니다. 2월3일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지방선거에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기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국민투표법 개정도 이른 시일 안에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2월4일에는 장동혁 대표가 교섭단체대표 연설을 했습니다. “이재명 정부 임기 내에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완전히 옮길 수 있도록, 헌법 개정, 특별법 제정, 청사 건설 등 제반 사항을 함께 검토하고 함께 추진해 나가자”고 했습니다. 장동혁 대표 입에서도 개헌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다음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올해 추진할 첫번째 과제로 개헌을 꼽았습니다.
“국민투표법 개정과 개헌입니다. 조금 진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대통령 신임 정무수석과 여당 원내대표가 모두 지방선거 원포인트 개헌을 이야기했고, 조국혁신당도 이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마침 어제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처음으로 개헌을 꺼냈습니다. 상임위 심사 중인 국민투표법 개정은 계속 소통은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설 전후를 지방선거 동시투표를 위한 국민투표법 개정 시한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설득해볼 작정입니다.”
국민투표법 개정안 상정에 대해서는 “(여야) 합의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지만, 합의가 안 된다고 그냥 미뤄놓고 하지 말아야 하는 건 또 아니지 않으냐”고 했습니다. 국민의힘이 반대해도 강행 처리할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우원식 의장은 국민의힘 지도부를 집중적으로 설득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합니다.
장동혁 대표는 사실 개헌에 찬성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장동혁 대표가 말한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을 위해 개헌이 필요합니다. 행정수도를 옮기려면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것은 관습헌법’이라는 헌법재판소의 2004년 결정을 깨야 합니다. 새로운 법률을 제정한 뒤 위헌법률심판을 통해 헌법재판소 판례를 변경하는 방법도 있지만, 복잡합니다. 헌법에 “대한민국의 수도는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을 넣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둘째, 한동훈 전 대표 제명 이후 궁지에 몰리고 있는 장동혁 대표에게는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합니다.
조선일보에 ‘국민의힘, 망해야 산다’는 제목의 칼럼까지 등장했습니다. “정권 잃고도 혁신 거부, ‘윤 어게인’이 지도부 장악, 합리적 보수 떠나간다.” “그럴 바엔 빨리 망하자, 진영 논리로 표 주지 마라, 그래야 보수도 나라도 산다”는 부제가 달렸습니다.
고성국씨가 “전두환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을 당사에 걸자”고 요구하고, 김영삼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는 “국민의힘이 수구 집단으로 변질됐다”며 김영삼 대통령 사진을 내리라고 요구하는 등 노선 갈등이 격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동혁 대표에게 개헌은 훌륭한 정치적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 강령에는 “2·28 대구 민주운동, 3·8 대전 민주 의거, 3·15 의거, 4·19 혁명, 부마항쟁,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 등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 정신’을 이어간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장동혁 대표는 곧 국민의힘 당명을 바꾸며 강령을 개정할 예정인데 이 내용을 삭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동혁 대표는 지난해 11월6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려 했지만, 시민단체의 항의로 묵념만 하고 돌아간 일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국민의힘은 그간 5·18에 대해 여러 차례 진정성 있는 사과도 했고, (당) 강령에 5·18 정신을 계승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의힘은 진정성을 갖고 저희들의 마음이 전달될 때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겠다.”
“이미 국민의힘에서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동의한다고 말씀드렸다. 헌법 개정 논의 자체가 진행되지 않고 있고 단독으로 진행할 문제도 아니다. 여야 이견이 없기 때문에 헌법 전문에 반영될 것이다.”
지금이 바로 장동혁 대표가 했던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개헌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개헌 그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여야의 대화와 타협으로 개헌에 성공한다면 그 자체가 정치 복원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장동혁 대표는 정치를 그리 오래 한 사람이 아닙니다. 1.5선 국회의원입니다. 이제 정치를 좀 할 때가 됐습니다. 개헌에 성공하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정치인으로 승격할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개헌을 위한 단독 회담을 제의하면 이재명 대통령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동혁 대표의 결단을 기대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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