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제일 싸다”…AI 열풍이 밀어 올린 노트북·휴대폰 값
전기·물 등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도 필요…칩플레이션 지속될 듯

[주간경향] 최근 새 노트북을 구입하기 위해 사이트를 찾아보던 A씨(42)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5년 전부터 써온 회사의 노트북 신규 모델이 기존 것에 비해 50만원 가까이 뛰었기 때문이다. A씨는 “성능도 있지만 익숙한 회사 제품이 좋겠다고 생각해 신규 모델을 보고 있었는데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다”며 “조금 기다렸다가 살까 했는데 인터넷을 살펴보니 ‘오늘이 가장 싸다’는 식으로 빨리 사라는 의견이 많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컴퓨터용 핵심 부품 가격이 줄줄이 급등세를 보이면서 소비자들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지난 2월 4일 PC 가격 비교 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조립 PC(퍼포먼스 PC·16GB)의 가격은 현재 152만원으로 지난해 10월(100만원) 대비 약 50% 상승했다. 다나와 표준 PC 게임용(16GB)의 경우에도 260만원으로 지난해 10월(179만원)보다 45%가량 뛰었다. 노트북의 경우 삼성(갤럭시북)과 LG(그램)의 2026년형 최신 모델은 비슷한 사양의 직전 모델에 비해 약 30만~70만원 올랐다. 인공지능(AI) 관련 기능 등의 추가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가격 부담이 커진 것이다. 반도체 품귀 현상에 따른 가격 인상으로 전기차, 스마트폰 등 관련 품목의 가격이 상승하는 이른바 ‘칩플레이션(Chipflation)’ 현상은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왜 오르나
노트북, 전자기기 등의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는 이유의 핵심엔 AI가 있다. 전 세계적인 AI 열풍으로 데이터센터가 급증하면서 여기에 들어가는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뿐 아니라 중앙처리장치(CPU), 전자회로기판(PCB) 등 핵심 부품들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기본형 D램 가격이 반년 만에 5~6배 뛰었다. PC용 범용 D램의 최저가격(삼성전자 DDR5-5600 16GB)은 다나와 기준 지난해 9월 6만9246원에서 올 2월 초 현재 37만9780원으로 5.5배 올랐다.
AI 학습을 위해서는 더 많은 데이터센터가 필요한데, 핵심 부품으로 고성능 컴퓨팅을 위한 GPU(그래픽처리장치)·CPU(중앙처리장치) 서버, 대규모 데이터를 저장하는 스토리지, 빠른 데이터 전송을 위한 네트워크 스위치·라우터, 안정적 운영을 위한 UPS(무정전 전원공급장치) 및 항온항습기(냉각 시스템) 등이 있다. 이중에서도 CPU와 스토리지는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노트북, 컴퓨터에 들어가는 모델과 차이가 있지만, 이들에 대한 수요가 늘고 그 여파로 일반 소비자용 CPU 등의 생산이 줄어들면서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스마트폰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주요 부품 재료비, 특히 메모리 가격 상승이 가장 큰 부담 요인”이라며 “(이러한 재료 가격 상승이 스마트폰 등) 제품 가격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그저 ‘시장의 방향’이라고 두고 봐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드러났듯 노트북, 스마트폰 등은 오늘날 업무, 노동, 일상생활 등을 지속하기 위한 필수재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제품들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를 경우 서민층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실리콘 웨이퍼는 반도체 제조의 핵심 소재이기 때문에 컴퓨터, 통신제품, 소비가전제품 등 사실상 모든 전자제품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한정된 웨이퍼들은 현재 대부분 HBM(고대역폭 메모리) 생산에 투입되고 있다”며 “환율 이슈도 있고 일시적인 병목현상이라는 진단도 있지만, AI 관련해 최소 수년간은 이런 식의 과잉 수요가 지속될 것이고 제조공장이나 자원에는 한계가 있기에 소비자용 전자기기들도 장기적으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전자기기 가격 상승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는 반도체 외에도 전기, 물, 광케이블용 구리 등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 수석연구원인 케이트 크로퍼드는 <AI 지도책>(2022)에서 “AI의 뼈대는 광물이고 AI의 혈액은 전기”라고 강조한 바 있다. 대규모 학습을 위해 막대한 하드웨어 및 자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특히 AI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학습, 추론 등을 위해 필요한 전력량이 크게 늘어난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는 “AI를 제한하는 것은 칩이 아닌 전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 로드아일랜드대학교 AI연구소에 따르면 오픈AI가 지난해 8월 출시한 최신 모델인 ‘GPT-5’가 질문 1건당 소비하는 전력은 평균 18.35Wh(와트시)로, 이전 세대인 ‘GPT-4’(건당 2.12Wh)에 비해 약 8.7배의 전력을 소모할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오픈AI 측은 챗GPT 학습 및 추론에 소모되는 구체적인 전력량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모량은 415TWh(테라와트시)이고, 이는 전 세계 전력 소모량의 1.5%에 해당하는데, 2030년에는 데이터센터 전력 소모량이 945TWh로 약 2배 오르고 전체 전력 소모량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3%로 뛸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에너지부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데이터센터가 소모하는 전력은 미국 전체 전력 소비의 4.4%를 차지했는데, 5년 뒤인 2028년에 이 비중이 6.7~12%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필연적으로 전기 부족 및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에서 데이터센터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미 버지니아주의 경우 지난해 8월 전기요금이 전년 동월 대비 약 13% 급등했다. 데이터센터 고밀집 지역인 일리노이주 역시 같은 기간 약 12% 올랐다. 전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송전탑 등 인프라 비용이 늘어나는데 일반 주민들이 이런 확충에 필요한 요금까지 부담하고 있다. 녹색전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 기업 가운데 데이터센터별 전력 사용량을 공개하는 곳은 LG CNS뿐이며 대부분의 기업이 전력량, 사용하는 물의 양 등을 제대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AI와 기후의 미래>를 쓴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장은 “LLM(대형언어모델) 기반의 인공지능은 들어가는 에너지가 늘어날수록 성능이 향상된다. 사실상 에너지 확보 싸움의 양상”이라며 칩플레이션 같은 현상이 강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어 “현재 엔비디아 같은 하드웨어 업체만 흑자를 보고 있고, 여전히 오픈AI 등 AI 기업들은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다. AI 서비스가 저렴해 보이지만 이는 승자독식을 노리기 위한 과정으로, AI가 (경제적으로든 들어가는 자원 등의 부담 차원에서) 전혀 저렴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며 “독일은 2027년부터 모든 데이터센터가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등의 내용을 담은 에너지효율법을 통과시켰는데, 한국도 지속 가능한 AI 정의를 위한 국가적 정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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