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녹색 별 3개 ‘여행 맛집’, 말의 두 귀 닮은 마이산으로

‘미쉐린 가이드’가 부여하는 별점이 레스토랑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이를 아는 이는 적다.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미쉐린 가이드’의 ‘레드 가이드’가 더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미쉐린 가이드’를 발간하는 프랑스 타이어 제조회사 미쉐린은 ‘그린 가이드’도 출간한다. 권위 있는 여행안내서 ‘론리플래닛’과 쌍벽을 이루는 여행지 추천서다. 전세계 이름난 여행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 훌륭한 유적지와 박물관 등을 대상으로 ‘녹색 별’을 부여한다. 최고점은 역시 별 3개다. 한국에도 별 3개 ‘최고 여행 맛집’이 있다.
2011년 일본, 홍콩, 타이,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에서 5번째로 발간된 ‘그린 가이드’ 한국편엔 총 20곳이 별 3개를 받았다. 서울 경복궁과 북촌, 창덕궁과 궁 후원(정원), 국립중앙박물관, 설악산, 해인사, 순천 선암사와 송광사, 경주 양동마을, 전주 한옥마을, 한라산, 성산 일출봉, 불국사, 석굴암, 도산서원, 병산서원, 고창 고인돌박물관과 마이산 도립공원이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데는 단연 마이산 도립공원이다. 다른 곳은 사계절 인파가 몰리는 국내 인기 여행지지만, 마이산 도립공원은 오지라 여겨졌던 진안에 있다. 한국인조차 찾는 이가 적은 데란 소리다. 왜 ‘대한민국 최고 여행 명소’로 꼽힌 걸까.
‘그린 가이드’ 한국편을 보면 마이산 봉우리에 대한 예찬이 적혀 있다. 봉우리는 빛이 닿아 무지개색을 띠고, 떠오르는 태양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봉우리 아래 은수사엔 아름다운 배나무가 있고, 탑사엔 찾은 이들의 염원이 투영된 돌탑이 ‘엄청난 우주’처럼 조성돼 있다고 극찬했다. 지난달 24일 마이산으로 향했다. 2026년은 붉은 말의 해다. 말의 해에 이곳만 한 여행지가 없다.

우주의 풍경 펼쳐진 탑사
마이산은 암마이봉(687.4m)과 수마이봉(681.1m)이란 큰 두개의 봉우리와 관암봉, 봉두봉, 광대봉, 삿갓봉 등 10여개의 작은 봉우리로 이뤄진 바위산이다. 하지만 흔히 마이산 하면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을 이른다. 중생대 백악기에 지각 변동으로 생긴 퇴적층이 암석이 된 다음 융기해 생긴 산이다. 전주에서 동쪽으로 32㎞ 떨어진 지점에 있다. 이 일대 형세가 기기묘묘한데다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 마치 남녀를 상징하는 듯해 예부터 풍수지리와 음양사상 연구자들의 관심 대상이 돼왔다. 실제 수행을 마치고 승천하려다 좌절된 부부 산신의 전설이 내려온다. 전설이나 설화는 이뿐만 아니다. 이성계의 조선 개국 설화가 깃든 산이다. 이성계가 꿈에 세상을 다스릴 ‘금척’(금으로 된 자)을 받은 산이 마이산이란 설화다. 그가 은수사에서 100일간 머물며 개국 의지를 굳혔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른 아침 9시. 마이산 일대엔 알싸한 겨울바람이 불었다. 산길을 걷는 내내 찬 기운이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전날 온 눈은 설탕 가루처럼 땅에 얇게 퍼져 반짝였다. 두꺼운 겨울옷을 여밀수록 번뇌가 사라졌다. 머리를 깨우는 찬 겨울 기운 덕분이다. 마이산은 출발지가 두곳이다. 남부주차장과 북부주차장이다. 둘은 산을 가운데 두고 이어져 있다. 오르는 길이 평탄하고 탑사와 은수사에 좀 더 가까운 남부주차장을 골랐다. 남부주차장에서 마이산으로 향하는 길 초입에는 여느 산처럼 먹거리 가게가 즐비하다. 유난히 ‘흑돼지구이’란 말이 눈에 띄었다. ‘흑돼지’ 하면 남원과 제주가 주요 사육지로 알려졌지만, 진안에서도 제법 맛 좋은 흑돼지가 생산된다. 진안군은 2000년대 초 외국 돼지 품종 버크셔와 재래종을 교잡해 탄생한 흑돼지에 ‘깜도야’란 이름도 붙였다. 튀김 노점에선 “몸에 좋고 여기에만 있는 인삼튀김 드시고 가시라”는 소리가 들렸다. 진안 마이산 북부는 국내 유일한 홍삼특구다. 매년 9월 홍삼 축제가 열린다.


사계절이 다 운치 있는 마이산은 이날 겨울만의 매력을 뽐냈다. 찬 바람은 달았고 나무 사이를 비집고 쏟아지는 햇살은 특별했다. 작열하지 않아 좋았다. 마음을 놓게 하는 햇살이었다. 과한 건 무엇이든 불편하다. 작은 호수를 지나자 ‘마이산 부부 공원’이란 글자가 적힌 기둥을 만났다. 음양설을 제대로 반영한 구조물이다. ‘돌탑 체험장’도 나타났다. 크고 작은 돌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10여분 더 걸어가자 ‘마이산 탑사’가 나타났다. 입장료는 어른 3천원, 청소년 2천원, 어린이 1천원. 카드 결제만 가능하다.
한국불교태고종 사찰인 마이산 탑사는 참으로 독특한 절이다. 가보지 않은 목성과 화성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그린 가이드’ 심사위원들이 ‘엄청난 우주’라고 표현한 게 이해됐다. 천지탑, 오방탑 등 수십개의 자연석 탑이 우후죽순 서 있었다. 위쪽엔 아담한 불당도 있다. 사람들이 탑과 탑이 만든 길을 따라 불당으로 올라갔다. 그들을 따라가며 사람들이 돌을 보며 빈 소원을 생각했다. 탑에서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자 거대한 바위가 보였다. 그 바위 틈새로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황금빛이었다. 크고 작은 황금 불상 여러개가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었다. ‘지금 금값이 최고치라는데.’ 누군가는 속으로 생각했으리라.
탑들 앞엔 설명서가 있다. 병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약사탑이란 설명이다. 탑엔 절대 손을 대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도 있었다. 잘못하면 공든 탑이 무너진다. 탑들은 1m부터 15m까지 높이가 다르고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세찬 바람에도 결코 무너진 적이 없단다.


이 기기묘묘한 풍광은 한 사람의 고집 때문에 탄생했다고 한다. 1885년께 임실에 살던 이갑룡(1860~1957) 처사가 도를 닦기 위해 이곳으로 이주해 30여년간 홀로 탑을 축조했다. 141년 전 ‘나는 자연인이다’ 주인공인 셈이다. 그가 축조한 100기 넘는 탑 중 80기만 남았다고 알려졌다. 그는 음양의 이치와 팔진도법을 적용해 탑을 축조했다. 팔진도법은 중국 삼국시대 제갈량이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전투 전략이다. 8개 방위에 군대를 배치하는 게 골자다. 탑사엔 이 처사의 석상과 사진 등이 있다. 최소한 그가 탑사와 깊은 관계인 것만은 증명된 셈이다. 더 알려진 내용이 있다. 그는 효령대군 15대손 이성우의 차남인데, 부모상을 계기로 인생의 허무를 뼈저리게 느껴 전국 산을 돌았다. 그러다 25살 때 마이산에 정착했다. 솔잎 등으로 생식하며 수도하던 중 신의 계시로 탑을 쌓게 되었다. 진안문화원이 2009년에 펴낸 ‘마이산’을 보면 이갑룡 처사 이전에도 탑은 존재했다고 한다. 다만 저자 최규영도 평생 탑을 쌓고 수리한 이 처사의 공을 인정했다. 탑 중 천지탑은 이 처사가 3년이나 공들여 쌓은 탑이다. 양탑과 음탑 2기로 구성돼 있다. 이 탑에서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는 얘기도 전해져온다.
짜르르, 짜르르. 소리가 들리는 데로 눈을 돌리자 탑사 마당에 있는 소원 나무가 보였다. 수많은 소원이 적힌 금빛 종이가 바람에 흩날렸다. 그중 한장을 읽고 배시시 웃고 말았다. ‘파이썬 자격증 빅데이터 분석 기사 자격증 따서 한화에 꼭 취직 기원/ 나와 맞는 여친 사귀고 나이 들어서도 결혼 잘해서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기.’ 이 소원을 적은 이를 위해 기도했다. 구체적인 바람에 반하고 말았다. 그 바람엔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염원을 이루는 필살기로 간절함만 한 게 없다. 단언컨대 간절함이 비기다.

은처럼 맑은 물의 은수사
은수사에선 한가지 할 일이 있다. 여행객 대부분이 지나친다. 북을 두드리는 일이다. 경내엔 큰 북이 설치돼 있다. 북 앞 나무판엔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이고 자기야말로 자신을 의지할 곳’이란 글이 적혀 있다. 북채를 잡고 북 중앙을 세번 치라는 지침도 있다. 은수사 방문의 진짜 맛은 이 북에 있다. 세번 쳤다. 둥, 둥, 둥. 울릴 때마다 마음에 가득했던 어둠이 벗겨져 날아갔다. 그 자리엔 명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채워졌다. 반가운 것인지, 숭상해야 하는 것인지, 추앙해야 하는 것인지, 도통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한결 밝아졌다.


드디어 본격적인 마이산 등반에 나섰다.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엔 나무 데크길이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40여분 올라갔다. 숨이 찼다. 길 양쪽에 듬직하게 서 있는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에 햇살이 비쳤다. ‘그린 가이드’에 적힌 무지개색을 발견하진 못했지만 깨달은 게 있었다. 무지개색만큼 이 두 봉우리가 영롱하고 웅장하다는 것을 말이다. 가파른 나무 데크길을 통과하자 암마이봉 등반로 입구에 도착했다. 곧 낙담하고 말았다. 암마이봉은 추위로 등반이 금지돼 있었다. 경사도가 70~80도이니 그럴 만도 했다. 본래 수마이봉 등반은 금지돼 있다. 올라온 길 반대편에 가파른 흙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내려가면 북부주차장에 도착한다.
이튿날 북부주차장을 찾았다. 남부주차장 쪽 마이산 투어가 아기자기하다면 북부주차장 쪽 마이산 여행은 웅장하다. 북부주차장에 도착하면 마이산 두 봉우리의 전체 모습이 보인다. 남부주차장 쪽 투어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북부주차장 말고도 두 봉우리를 온전히 볼 수 있는 데가 있다. 진안마이산휴게소 장수 방향과 익산 방향 두곳엔 정자와 작은 공원이 있다. 이곳 정자에 오르면 마이산 두 봉우리의 온전한 형체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북부주차장에서 10여분 더 올라가면 ‘사양제 수변공원’이 나타난다. 공원 전체를 둘러싼 나무 데크길이 조성돼 있는데, 대략 2.3㎞다. 이곳은 사진가들의 단골 촬영지다. 호수에 비친 마이산 두 봉우리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쨍한 하늘과 역광 때문에 시커멓게 변한 산만 앵글에 담았다. 언 호수 위로 눈이 쌓여 물에 반사되는 산을 카메라에 담을 순 없었다. 호수는 그저 흰 도화지 같았다. 언 호수 위로 걸어가 그 도화지에 물에 비친 두 봉우리를 그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목숨을 걸어도 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고요가 마음에 스몄다. 보너스다. 인근엔 산약초타운과 스파 시설을 갖춘 ‘진안 홍삼스파’도 있다. 진안 홍삼스파는 마이산 두 봉우리를 바라보며 노천탕에서 몸을 녹일 수 있는 공간이다. 바로 옆에 있는 ‘홍삼빌 호텔’이 운영하는데, 현재는 가동하지 않는다. 리모델링해 시설을 확장할 계획이다. 가을에 재개장한다.



가위박물관 투어도 빼놓을 수 없다. 주차장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박물관이다. 용담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에서 고려시대 가위가 출토된 게 박물관 건립의 출발이었다. 대략 1500여점이 소장돼 있다. 그중 80%가 인천의 한 대학교수가 기증한 가위다. 그가 세계여행을 하며 수집한 가위라고 했다. 유럽 귀족들이 포도를 손으로 먹기 싫어서 만든 포도가위부터 야전병원에서 쓰인 가위까지 희한하고 특이한 가위가 많다. 물론 우리나라 엿장수 가위도 있다. 영국 조지 4세(1762~1830) 왕이 소유했던 고급 가위도 있다. 정교하고 아름답다.
마이산은 등반하지 않아도 여행객의 마음을 충만하게 하는 산이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다. 보는 위치에 따라 참으로 달리 보이는 산이 마이산이다. 타자도, 나 이외의 모든 것도, 아니, 나 자신도 결국 어디서 보느냐가 중요하다.
♣H6진안/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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