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대상된 겨울 철새 '떼까마귀'... 단지 쉴 곳이 필요했다
"기존 태화강서 먹이 활동하던 개체, 김해로 옮겨왔을 가능성"
구조적 원인으론 '숲 부족 현상', '먹이 부족' 등이 거론
도심에서 떼까마귀는 공존 불가능... "좋은 잠자리로 유도해야”
편집자주
이야기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행위를 ‘스포일러(스포)’라 합니다. 어쩌면 스포가 될지도 모를 결정적 이미지를 말머리 삼아 먼저 보여드릴까 합니다. 무슨 사연일지 추측하면서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한 장의 사진만으로 알 수 없었던 세상의 비하인드가 펼쳐집니다.



“박쥐 같아서 소름이 끼쳐요.”
퇴근길 김해 도심,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스팔트 바닥에 흰색 액체가 떨어진다. 위를 올려다보던 시민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자리를 피한다. 전깃줄 위 수천 마리의 까만 까마귀들이 빼곡히 줄지어 앉아 있다. 지나가던 시민이 인상을 찌푸리며 전봇대를 강하게 주먹으로 친다. 까마귀들이 '까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날아오르자, 하늘에 검은 물감을 뿌린 듯하다.
겨울 철새 '떼까마귀'가 경남 주요 도래지 중 하나였던 울산이 아닌 김해시 부원동 일대에서 목격되고 있다. 김해평야에서 먹이 활동을 하던 떼까마귀들이 해 질 무렵 도심으로 몰려와 전깃줄과 가로수에서 집단 취침을 하는 모양새다. 김해시 추산 개체 수는 5,000마리 안팎이다.



상인과 건물주들은 분변과 씨름 중이다. 떼까마귀가 자주 앉는 전깃줄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은 “입구 쪽이 이렇게 엉망이 됐는데 손님들이 오겠냐”며 직접 손전등을 들고 까마귀를 쫓아 내고 있다. 인근 건물주 송경주(62)씨는 “차에 묻은 배설물이 닦이지도 않는다”며 “쫓아도 결국 다시 돌아온다. 대책이 없다”고 낙담했다. 주민들은 체감상 “작년보다 확실히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시민들도 공포와 불편을 호소한다. 밤 9시경 부원동 사거리를 매일 지난다는 주민 최복란(64)씨는 “외손주 돌봐주고 집에 돌아갈 때쯤 늘 머리 위 전깃줄에 까마귀 떼가 앉아 있다”며 “시커먼 게 위에 잔뜩 있으니 볼 때마다 놀라고, 혹시 똥에 맞을까 봐 위만 보며 걷게 돼 위험하기도 하다”고 진저리 쳤다.



도심 떼까마귀 출몰은 김해만의 현상이 아니다. 수원, 화성, 평택 등 경기 남부에서도 도심에 잠자리를 마련한 떼까마귀들로 겨울철마다 비슷한 민원이 반복되고 있다. 숲이나 산 등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휴식하던 떼까마귀가 도심까지 이동하는 상황이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떼까마귀 개체수는 전체적으론 감소 추세를 보이지만, 일부 도시로 밀집되면서 체감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유성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 연구사는 “한국을 찾는 떼까마귀 개체 수가 최근 감소 추세를 보인다는 보고가 있었다”며 “태화강 인근을 먹이 활동과 잠자리로 이용하던 일부 개체가 새로운 먹이터로 김해평야를 선택하면서 인접 도심을 취침지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자체도 저마다 대응에 나섰지만 효과는 아직 미지수다. 김해시는 지역 환경단체와 협력해 주 2회 조류 퇴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수원시도 주요 민원 지역을 중심으로 저녁 시간대 주 5일 순회하며 레이저 장비 등을 활용해 까마귀를 분산시키고 있다. 전명옥 수원시 환경정책과 팀장은 “지난해 12월 이후 출몰 빈도가 일주일에 2, 3일 수준으로 줄어드는 등 일정 부분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도심 확장과 서식지 훼손이 이어지는 한 떼까마귀 문제 역시 도시가 떠안게 된다고 지적했다.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도시화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미래에 이런 현상은 어디서든 반복될 수 있다”며 “한 지역에서 쫓아내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새로운 민원을 만드는 방식이 보편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계에선 떼까마귀가 도심을 일시적으로 선호했을지라도, 장기적으론 새로운 서식지로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포식자가 적고 전깃줄 위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떼까마귀는 느낄 수 있지만, 숲이나 야산이 더 적합한 휴식지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결국 민원 피해가 적은 자연 서식지로 유도하는 관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겨울 저녁 도심을 뒤덮은 검은 군무는 인간과 자연이 공유하는 공간이 계속해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떼까마귀가 내려앉은 도시의 밤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최주연 기자 juic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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