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구조물은 철거, 한한령은 유지…한국에 병 주고 약 주는 중국의 속내
‘찔끔 완화’에 그친 한한령…한국 콘텐츠 일방 소비에 대한 ‘문화 격차’ 경계
(시사저널=모종혁 중국 통신원)
1월21일 제주도 성산일출봉. 눈발이 휘날리는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서도 수많은 관광객이 제주 최고의 자연경관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중 중국인이 압도적이어서 한국인보다 훨씬 많았다. 주목할 점은 중국 관광객의 구성이었다. 절반은 단체관광객이었지만, 절반은 개별관광객이었다. 대학원생 양메이(24)는 남자친구와 함께 서울, 부산에 이어 제주를 찾았다. 양메이는 "이틀 전 제주공항에 도착했고 오늘은 버스를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돌고 있다"며 "교통카드와 모바일 지도 앱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동남아시아와 접경한 중국 윈난성 시솽반나에서 활동하는 사업가 왕하오(56)는 아내와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해 1주일 동안 서울, 경주, 부산을 여행했다. 본래 한국은 부부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일본 여행 자제령을 내리면서 대체 여행지로 선택했다. 1월31일 왕하오는 "역사에 관심이 많고 시솽반나에 없는 바다를 보고 싶어 경주와 부산에서 각각 2박 했다"면서 "서울과 전혀 다른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교통이 편리하고 어디서든 간편결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어 다시 오고 싶다"고 밝혔다.
이는 필자가 지난 1월 잠시 귀국해 만났던 중국인들과의 대화 내용이다. 제주를 찾는 중국 관광객이 늘어난 현실은 통계 수치로 증명된다.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작년에 제주를 방문한 외국 관광객은 전년보다 17.7% 증가한 224만 명이었다. 이 중 중국인이 절대 다수인 70.2%로 158만 명에 달했다. 지난해 9월29일부터 3명 이상 중국 단체관광객에 대해 한시적으로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면서, 제주는 국내 다른 지역으로 중국 관광객이 쏠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중국인은 전년보다 14.8% 늘어나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갈등' 일본 대신 한국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
오히려 중국과 제주를 잇는 항공 노선이 증가하며 개별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최근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급증한 중국 개별관광객으로 밤마다 북적인다. 이들은 단체관광객과 달리 서귀포에서 숙박해 지역경제에 끼치는 공헌도가 높다. 한한령 이전에 제주를 방문했던 중국인은 대부분 단체관광객이었고, 제주 거주 중국인이 운영하는 업소를 주로 이용했다. 매일올레시장의 한 상인은 "요즘 중국인 개별관광객들은 서귀포에 묵으며 도민이 운영하는 다양한 업소를 찾아 소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대신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은 또 다른 통계로 드러난다. 주중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3개월 동안 주중 대사관과 중국 내 총영사관 등에 제출된 중국인의 한국 비자 신청 건수는 33만613건이었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34% 늘어난 수치다. 개인이 신청한 여행비자는 28만3211건으로 45% 급증했다. 2024년 말과 2025년 초에는 계엄 여파로 중국 관광객이 감소했다. 그러나 이를 고려해도 평년보다 많이 증가했다. 지난해 12월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항공편의 탑승률은 85.2%로 연중 가장 높았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공식적인 환영 입장을 밝혔다. 2월2일 정례 브리핑에서 린젠 대변인은 "중한 간 인적 왕래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일은 양국 국민 간 거리를 좁히고 상호 이해와 교류를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도 대폭 늘어났다. 지난해 중국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은 315만여 명으로, 전년보다 36.9% 증가했다. 중국 당국이 2024년 11월부터 무비자 정책을 시행한 이후 인천공항에서 1~2시간 사이에 갈 수 있는 상하이, 칭다오, 베이징 등을 찾는 한국인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국의 문화 교류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2016년에 내린 한한령을 완전 해제하지 않고 있다. 한한령의 핵심은 중국인의 한국 여행 자제,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중국 내 상영 금지, K팝 가수의 중국 내 공연 금지였다. 지난 1월 중국을 국빈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한한령이) 조금씩 단계적으로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중화권에서도 같은 시각이 나왔다. 2월1일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한국 문화 콘텐츠에 대한 중국의 제한 조치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연합조보는 "중국 업계는 당국의 허가 여부를 알 수 없어 관망 중인 상태"라며 "수요가 큰 베이징과 상하이부터 한국 문화 콘텐츠가 상영된다면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한령 해제의 가장 큰 걸림돌로 중국 내 여론을 지목했다. 과거처럼 한국의 콘텐츠가 대거 유입돼 중국인이 일방 소비하는 문화 격차를 당국과 적지 않은 중국인이 경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호주 맥쿼리대 미디어학자 사라 키스는 "중국은 관광, 브랜드 협업 등 자국 산업의 발전과 얼마나 직접 연계되느냐를 따질 것"이라고 했다.
물론 중국은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사안을 이행하고 있다.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무단 설치한 인공 구조물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난 1월말 중국은 PMZ에 있던 인공 구조물의 일부를 PMZ 밖으로 이전했다. 중국 외교부는 "기업이 자체적인 경영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조정한 배치"라고 밝혔다. 이번에 이전한 건 관리시설로, 2개의 양식시설은 그대로 남아있다. 한국 정부는 관리시설이 다른 용도로 전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우선 이전을 요구해 왔다. 상업적 양식시설에 대한 해결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격화하는 미·중, 중·일 갈등에 한국 중요성↑
중국은 산업 협력을 강조하는 신호도 보내고 있다. 1월8일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중국이 자급자족을 가속화하고 한국 기업과의 경쟁 구도가 형성됐으나 중국은 여전히 한국 반도체 수출의 최대 시장"이라며 "양국의 산업 사슬은 상호보완적 구조로 되어 있어 협력은 필수불가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기적 연구개발, 인재 양성, 시장 확대, 공동의 외부 위험 관리 등 실질적 협력을 제안했다. 환구시보는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로 국수주의 성향이 강하고 당국의 속내를 간접 대변한다.
이처럼 최근 중국은 한국에 병 주고 약 주는 조치를 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격화된 미·중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의 노골적 압박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자 동북아 안보 지형에서 중요한 한국을 완충지대로 삼고 싶어 한다. 완전한 자기편이 될 수 없어도, 미·중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한다면 중국에 힘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글로벌 공급망이 급속히 재편되는 가운데 한국은 중국에 필요한 반도체와 중간재를 공급하는 경제 파트너다. 중국은 대다수 산업에서 '굴기'했으나 반도체는 아직 못 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이후 촉발된 중·일 갈등에서도 한국의 입장이 중요하다. 중국은 대만 유사시 한국과 주한미군이 나서길 원치 않는다. 지난 1월 시진핑 주석은 이 대통령에게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야 한다"고 압박했다. 사드 배치 이후 한국에 대한 강경 조치가 오히려 한국에서 반중 감정을 고조됐다는 학습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면서 반중 정서는 세계적으로 증폭됐다. 앞으로도 중국은 한국에 조금씩 약을 주는 행보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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