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에 물린’ 저소득·저신용자들
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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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이자를 ‘뱀에 물려 있는’ 상태라고 흔히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똑같이 낮은 신용등급이라도 은행과 제2금융권 신용대출 사이에 ‘금리단층’이 존재한다. 2025년 8월 기준 저신용자(개인신용평점 700점 이하) 신용대출 금리(연이율)는 은행권 7.57%, 카드·캐피털 15.04%, 저축은행 15.65%로 격차가 8%포인트(p) 정도다.
중신용자(800점대) 신용대출 금리도 은행권이 5.43%, 카드·캐피털 13.31%, 저축은행 14.65%로 8~9%p 크게 벌어져 있다. 연속적인 금리 그래프에서의 차이를 넘어, 대출업권 장벽에 따라 일종의 단층이 형성된 것이다. “어려운 사람 대출이자가 더 비싸다.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이재명 대통령, 2025년 9월9일 국무회의)은 고리대금업을 지칭하기보다는 이 단층을 조준한 말이다.
반면 고신용자(900점 이상) 신용대출 금리는 은행권 4.92%, 카드·캐피털 8.20%, 저축은행 5.65%로, 이는 ‘단층’이라고 부를 만한 격차는 아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더 넉넉해지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처럼, 남의 돈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집단·계층일수록 ‘고금리 2금융권’에 몰려 분포해 있다. 신용대출 차주들을 신용점수대로 나눠보면 은행은 중·고신용자가 82.5%고, 캐피털은 저신용자가 83.7%, 저축은행은 저신용자가 86.0%다.
일국 경제에서 ‘금융중개’ 부문은 사회의 수많은 경제주체가 맡긴 돈을 누가(가계·기업), 얼마나, 어떤 가격(금리)에 빌려가고 또 빌려주느냐를 다루는 영역이다. 이자는 미래보다는 현재 소비를 더 선호하는(시간 할인) 인간 본성과 그 인내에 대한 보상이면서, 동시에 연체율이라는 상환 위험이 반영돼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돈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불평등에서 이자는 발생한다. 저축은행·캐피털 대출자일수록 대출 가능성을 우선 고려할 뿐 금리는 그 뒤에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실에서 돈을 더 많이 빌려쓰는 집단·계층은 정작 ‘더 많이 가진’ 고신용·고소득자다. 저소득·저신용자일수록 금융이라는 사회적 자산을 빌려쓰기도 어렵고, 빌리는 대가도 연 15% 정도로 비싸다.
한국은행이 2025년 10월 국회에 제출한 ‘신용도별 차주 가계대출 현황’ 자료(개인 차주 표본 100만 명의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는 흥미로운 분석 추정치를 제시한다. 2025년 6월 말 우리나라 금융권에서 고신용자(신용점수 840점 이상, 1301만 명)의 대출금리를 0.1%p 인상하면 1인당 연간 11만원씩(총 1조4300억원)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이렇게 늘어난 이자액을 저신용자(개인신용평점 664점 이하, 186만1천 명)에게 각각 나눠주면 1인당 77만2천원씩 이자가 줄어든다. 이를 금리로 환산하면 저신용자 대출금리를 1.9%p 낮출 수 있다.
나아가, 저신용자 대출금리를 한 자릿수로 낮추기 위해 필요한 고신용자 대출금리 인상폭은 0.3%p(1인당 연 33만원 추가 부담)로 추산됐다(한은 기준금리 변동폭은 일반적으로 0.25%p다). 대출자 대다수가 중·고신용자인데다 1인당 대출액도 훨씬 많아 마치 승수효과처럼, 작은 폭의 고신용자 금리 인상(양보)에도 큰 폭의 저신용자 금리 인하가 가능해진다는 결론이다.
더욱이 고소득·고신용자의 대출 상당액이 부동산·주식 같은 비생산적 부문에 투자로 흘러간 반면, 자녀교육비·생계·가게영업에 쓸 돈을 구하는 사람이 고금리에 허덕이는 풍경은 “잔인한 금융”을 넘어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이라는 문제를 던진다. 소득·고용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결정되는 대출금리도 국가가 공정·정의 관점에서 정책으로 다뤄야 할 사회경제적 자원 배분의 한 영역이다.
한겨레 선임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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