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한류, ‘공영 OTT’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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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넷플릭스 강점기'라는 자조가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0%대가 낯설지 않은 시대에 그래도 넷플릭스에 올라타기만 하면 ‘한 방’ 터뜨릴 수 있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만 않는다.
넷플릭스에 ‘간택’되기만 하면 쉽게 글로벌로 나갈 수 있다는 기대는 제작자들에게는 달콤한 유혹이다. 분명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한국 콘텐츠가 세계 주류로 합류하는 데 결정적인 발사대 구실을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우리 문화산업의 운명을 외국 플랫폼에 맡겨둘 수 있을까. 지속 가능한 한류를 생각한다면 이제 최소한의 자구책이 필요한 시기다.
외국산 플랫폼 의존의 양면
이 기사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현상을 ‘단기적 침체가 아닌 구조적 약화'로 진단했다는 점이다. 수년간 마진 축소와 비용 상승으로 중간 예산의 영화 제작이 줄어들면서, 신인 감독이 성장하고 기존 감독이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많은 인재가 투자가 안정적이고 제작 일정을 예측할 수 있는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제작자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서두에 ‘넷플릭스 강점기’라는 자조에서도 드러났듯 많은 제작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과장이 아니다. 한국 문화산업이 현재 심각한 구조적 문제에 봉착한 것은 사실이다. 넷플릭스의 2024년 글로벌 콘텐츠 투자액은 162억달러(약 22조원)이며 2025년에는 180억달러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콘텐츠 투자액도 2016년 150억원에서 2022년 8천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투자 덕분에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전세계에 알려졌다. ‘오징어 게임'과 ‘폭싹 속았수다' 같은 작품의 글로벌 흥행은 K콘텐츠의 저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그림자도 있다. 넷플릭스 전체 예산 대비 한국 콘텐츠의 투자 비중은 4%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 콘텐츠의 시청 시간 점유율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국내 콘텐츠 제작 역량과 그 수익화 사이의 괴리가 여기서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구조적 의존이다. 검증된 감독과 스타 배우가 아니면 투자받기 어려워졌고, 중소형 제작사들은 예산을 맞추기 위해 신인 배우를 기용하려 하면 투자자들이 외면했다. 톱배우를 쓰기엔 출연료를 감당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중소 규모 영화를 투자·배급하던 회사가 줄줄이 문을 닫았다. 허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국제 정세
관세만의 문제가 아니다. 플랫폼 정책 역시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들이 수익성 강화로 전략을 선회하면서 콘텐츠 투자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거나, 사업적 판단에 따라 특정 지역 시장에서 철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분야는 다르지만 최근 쿠팡 사태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입장차만 보더라도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문화 유통망을 외국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국가 소프트파워 차원에서도 위험하다. K콘텐츠는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한국의 이미지와 영향력을 형성하는 핵심 자산이다. 이 자산의 유통경로가 타국 기업의 경영 판단에 좌우된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문화적 운명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토종 OTT에 이 역할을 맡기면 되지 않을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티빙과 웨이브는 2020년대 내내 적자를 이어왔다. 티빙은 2023년 1420억원, 2024년 71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웨이브 역시 2022년 1178억원, 2023년 791억원의 적자를 냈다. 양사를 합산한 누적 결손금만 수천억원에 이른다.
적자를 줄이기 위해 양사는 합병을 추진 중이지만, 주주 간 협상 지연으로 일정은 불투명하다. 합병이 이뤄진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적자 기업 간 결합이 곧바로 경쟁력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간 플랫폼은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언제든 전략을 바꿀 수 있다. 검증된 대형 프로젝트에 투자가 집중되고, 실험적이거나 중소 규모의 작품은 외면받기 쉽다. 이것이 민영의 규칙이다. 허리를 키우는 역할까지 민간에 기대하기는 어렵다.
공영 OTT가 필요한 이유
공공 배달앱 사례를 떠올려보자. 경기도의 ‘배달특급', 대구의 ‘대구로' 등은 저렴한 중개수수료로 소상공인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을 주며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25년 상반기 기준 ‘땡겨요’의 월간 활성 사용자는 144만 명, ‘먹깨비’는 38만 명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급성장했다. ‘배달의민족’이나 ‘쿠팡이츠’의 수천만 명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민간 배달앱의 수수료 인하와 가맹점 관리 강화 등 간접적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콘텐츠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민간 플랫폼이 외면하는 영역, 즉 중소형 독립영화, 신인 감독의 실험작, 지역 콘텐츠 등이 유통되고 제작자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공공성'이 강한 플랫폼은 꼭 필요하다.
공영 OTT의 역할은 영상 콘텐츠에 국한되지 않는다. 웹툰과 웹소설 시장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가 시장을 양분하면서 중소 플랫폼은 생존이 어려워졌다. 개인 창작자는 대형 플랫폼의 정책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플랫폼이 요구하는 포맷과 장르에 맞추지 않으면 노출조차 어렵다.
공영 OTT가 웹툰·웹소설·오디오드라마 등 다양한 창작물을 담을 수 있는 확장성을 갖춘다면, 한국 스토리 산업 전체의 허리를 키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기 전 단계의 원천 지식재산권(IP)이 발굴되고 유통되는 공간, 그것이 공영 OTT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콘텐츠 제작자로서 오래전부터 품어온 바람이다. 공영 OTT가 한국 방송 프로그램의 아카이브 구실을 했으면 한다. 과거의 명작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가 흩어져 있거나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시니어 세대에게 익숙한 옛 프로그램들은 추억의 매개체이자 문화적 자산이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가 이런 아카이브에 투자할 이유는 없다.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적 가치는 수익성으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한국 영상문화의 역사를 한곳에 모아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거야말로 공공 플랫폼이 해야 할 일이다.
겉만 화려하고 속이 곪지 않으려면
허리를 키우려면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왓챠 같은 기존 OTT에 공공 지분을 늘려 확보할 수도 있고, 새로 구축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수익성보다 공익성을 우선하는 플랫폼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작 지원, 유통 플랫폼 확충, 공정한 수익 분배 체계, 창작자 권리 보호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콘텐츠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이런 공영 OTT에 대한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프랑스의 살토(Salto)나 영국의 브릿박스(BritBox)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우리가 교훈 삼을 것이 분명히 있다.
가디언의 우려 섞인 지적이 아니더라도 한류의 화려한 외면 뒤에서 속이 곪아가는 건 사실이다. 소수의 대형 IP와 톱스타에게만 의존하는 구조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글로벌 K스타일 시대에 한국 문화산업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든든한 허리에서 나온다. 그 허리를 키울 수 있는 것은 민간의 경쟁 논리가 아니라 공공의 역할이다. 지금이 공영 OTT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다.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칼럼니스트는 업계 경력 20년 이상의 콘텐츠산업 전문가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며, 콘텐츠 제작과 금융이 전문이다.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졸업하고 LG인터넷과 SBS콘텐츠허브 등에서 방송·게임·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IBK기업은행에서는 콘텐츠 금융과 관련한 시스템 구축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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