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파더스·나락보관소 판결 가른 ‘공익성’…“법이 현실 변화 따라가야”[취중생]

김임훈 2026. 2. 7. 09:0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도 세대도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양해들’로 돌아온 ‘배드파더스’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해 온 ‘배드파더스’가 지난달 26일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양해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사진은 6일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 홈페이지의 모습.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 홈페이지 캡처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해 온 ‘배드파더스’가 지난달 26일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양해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하면서 사적 제재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점화되고 있습니다. 법원은 같은 사적 제재 사안이라도 ‘공익 목적’과 ‘정보의 정확성’ 여부에 따라 처벌 수위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김주석 판사는 지난달 28일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한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 운영자 김모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삐뚤어진 정의감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조회수 수익과 후원금 등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점, 사실 확인 절차가 미비했던 점을 양형 이유로 설명했습니다.

반면, 대법원은 2024년 1월 배드파더스 대표 구모씨에 대해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를 확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를 일반에 공개해 인격권과 명예를 훼손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해 의무 이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려는 사적 제재 수단의 일환”이라면서도 “공적 관심 사안에 사회의 여론 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가해자 신상공개를 통한 사적 제재라는 측면에서 두 사건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법원의 판단이 극명히 엇갈린 것입니다. 핵심 요인은 ‘수익 추구’와 ‘정보의 정확성’ 여부였습니다. 배드파더스는 대가 없이 활동하며 허위 정보로 인한 피해가 없었던 반면, 나락보관소는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제보에만 의존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점이 결정적 차이로 작용했습니다.

전 배드파더스 대표 “법원 소장 안 받으면 처벌 못해”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을 운영하는 구모씨는 지난 4일 SNS에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는 사적제재가 아니라 양육비 미투”라는 취지의 글을 게시했다. X 캡처

대법원 선고로 사실상의 ‘면죄부’를 얻은 배드파더스는 ‘양해들’로 이름을 바꾸어 최근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구씨는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양육비 채무자가) 법원의 소장을 안받는 것 만으로 모든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며 현행 제도의 한계로 사적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여성가족부가 2025년 4월 발표한 ‘2024년 양육비 이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양육비 이행률은 여전히 40%대에 머물고 있으며, 소송 과정만 평균 2년 이상 소요되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일본의 자경단 유튜브 채널인 ‘신주쿠 109’는 사기 현장에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는 이른바 ‘돌격’ 영상을 통해 101만명의 구독자를 모았습니다. 해당 채널은 범죄 근절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월 800만엔(약 7500만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는 경제적 동기를 숨기지 않으며 일본 내에서 하나의 ‘주류 콘텐츠’로 자리 잡았습니다.

2023년 5월 게재된 일본의 연구 논문 ‘유튜버 자아의 기술: 신자유주의 일본에서의 디지털 자경단, 남성성 그리고 주목 경제’는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일본의 남성들이 사적 제재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고 위엄을 되찾으려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논문은 이들이 ‘범죄 소탕을 통한 사회 기여’라는 대의명분과 ‘수익 및 유명세’라는 사적 욕망 사이에서 모순을 느끼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고 봤습니다.

전문가들은 사적 제재를 방치할 경우 법적 안정성과 사회적 신뢰가 무너질 수 있어 엄격한 대응과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적 제재에는 현행 법체계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시민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면이 있다”면서도 “공익 목적이라도 부차적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불법을 수반한 사적 제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법 시스템이 공정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위법함을 알면서도 사적 제재에 열광하는 이중적 사회 분위기가 고착화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대중이 사적 제재라는 ‘우회로’에 주목하는 것은 현 사법 시스템이 국민의 법 감정과 현실적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당국이 피해 구제를 위한 제도적 허점을 보완해 국민의 법적 효능감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제2의 ‘배드파더스’와 ‘나락보관소’가 탄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김임훈 기자

Copyright © 서울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