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음악’ 추천해달라고? 이거라면 쉽지 [어제 들은 음악]

오지은 2026. 2. 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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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면 정신이 든다.

지금 호주랑 칠레는 겨울이라는데 미친 척하고 갈까? 사실 이미 미쳐 있어서 척을 할 필요도 없지만···. 정신이 드는 기분을 그리워하고 겨울을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낸다.

모두가 아름다운 음악인데 너는 어떤 이유로 꼽히지 못한단 말이냐.

'겨울에 어울리는 음악'을 꼽아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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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시절과 추억이 뒤섞이며 삶의 배경음악이 되곤 합니다. 뮤지션이자 작가인 오지은이 요즘 듣는 노래,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을 소개합니다.

겨울이 오면 정신이 든다. 이 감각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공감하고 있을 텐데. 차가운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올 때 나는 정말로 정신이 든다. ‘아, 맞다, 그렇지’ 이런 느낌이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 뚜렷이 보이는 기분, 땅의 열기와 생명력, 푸른 이파리, 붉은 꽃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진실 같은 것이 보이는 듯한 기분, 아이큐가 10 정도 올라가는 기분인데 그럼 그냥 기분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기분도 기분으로서는 진짜니까?

겨울은 마음껏 쓸쓸해하기 좋다. 사진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만난 풍경. ⓒ시사IN 조남진

반대로 여름은 괴롭다.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계절의 에너지를 좋아하는 걸까? 막연히 추측해본다. 나에겐 그것이 버겁다. 6월부터 조금 각오를 한다. 자 이번에도 버텨보자. 최대한 실내에 있으면 돼. 버티다 보면 지나가게 되어 있어. 정 힘들 땐 남반구 여행을 생각해본다. 지금 호주랑 칠레는 겨울이라는데 미친 척하고 갈까? 사실 이미 미쳐 있어서 척을 할 필요도 없지만···. 정신이 드는 기분을 그리워하고 겨울을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낸다.

얼마 전 음악을 추천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음악인이라서 그런지 종종 그런 부탁을 받는데 항상 자신이 없다. 일단 노래를 많이 알지 못한다. 떠올리려고 하면 좋아하던 노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갑자기 솔직해지자면 ‘베스트’라는 감각이 조금 불편하기도 하다. 열 곡을 꼽는다면 열한 번째 음악에 감정이입을 한다. 모두가 아름다운 음악인데 너는 어떤 이유로 꼽히지 못한단 말이냐. 그런 이유로 보통 거절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쉽게 수락을 했다. ‘겨울에 어울리는 음악’을 꼽아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거라면 쉽지. 내가 항상 듣는 음악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하면 된다. 대부분이 앙상하고, 쓸쓸하고, 겨울 같으니까.

가장 많이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열어서 선정 이유를 하나씩 쓰니 금방 채워졌다. 드뷔시의 프렐류드 1-8번에 대해선 이렇게 썼다. ‘눈의 결정을 음악으로 만든다면 아마 이럴 것.’ 플리트우드 맥의 ‘랜드슬라이드’는 이렇게. ‘나이가 들어 쓸쓸함이 가득 찼을 때 그걸 이렇게 아름답고 단단한 결정으로 만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엘라 피츠제럴드의 ‘왓 아 유 두잉 뉴 이어스 이브?(What are you doing new year’s eve?)’는 이렇게. ‘새해 하루 전날에 너는 뭘 할 거야? 하고 묻는 따뜻하고 씁쓸한 사랑의 마음.’

외로움도 쓸쓸함도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지만 그걸 안전하게, 아름답게 즐길 수 있다면 상당히 좋은 맛이 아닐까. 음악도 책도 영화도 그래서 좋다. 실제로 내 인생을 망치지 않으며 이 맛을 느끼게 해주니까. 어른의 맛은 쓴맛, 녹차도 커피도 다크 초콜릿도 쓴맛, 인생을 알아야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맛. 내가 겨울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집이 따뜻하고, 창문이 있고, 내 옆에 강아지 흑당이와 고양이 꼬마가 보드랍게 누워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가운 눈에 덮이지 않고 따뜻한 음료를 손에 쥐고 겨울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 푹신한 이불 아래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창 밖의 눈은 녹아 있으니까. 그러니까 쓸쓸해질 수 있는 계절에는 오히려 마음껏 쓸쓸해지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치스럽게 안온하게.

오지은 (뮤지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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