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주의 심장’된 아버지의 신장…세대 잇는 생명의 대물림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2026. 2. 7.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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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숨, 피어난 삶]
<4> 한 가정 한 세대 살리는 선물
서른살에 말기콩팥병 진단받은 딸
환갑 훌쩍 넘긴 아버지 신장 이식
두차례 자연 임신·자연 분만 성공
장기 이식 후 꾸준한 건강관리로
30~40년 넘어선 생존사례 늘어
윤혜은(오른쪽)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가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에서 지난 2017년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추적 관찰을 위해 가족과 함께 내원한 이은화(왼쪽) 씨를 문진하고 있다. 이 씨는 수술 후 결혼하고 자녀 2명을 출산하는 등 건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오승현 기자


“저는 생일이 두 개예요. 아버지가 주신 신장이 제 몸 안에서 다시 뛴 순간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버지의 생명 나눔을 통해 두 번째 인생을 선물받은 제가 두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외래진료실에서 만난 이은화(41) 씨는 ”아이들과 지내는 평범한 하루가 이토록 소중한 줄을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며 웃어보였다.

이 씨는 2016년 말 서른한 살의 나이에 말기콩팥병 진단을 받으며 일상이 멈췄다. 이 씨는 부모 앞에서 ‘아직 젊으니 뇌사자 이식을 기다리겠다’고 애써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은 뇌사 기증자보다 신장 이식 대기자가 더 많아 평균 대기 기간이 8~10년에 이른다. 하루 4시간, 일주일에 3회 혈액 투석에 묶여 있어야 하는 삶이 시작되자 막막함이 몰려왔다. 그마저도 부족했는지 혈액에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의 노폐물이 쌓이는 요독증으로 진행돼 식사는커녕 숨쉬기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응급실에 실려온 이 씨의 시계를 다시 돌린 것은 환갑을 훌쩍 넘긴 아버지였다. 당시 65세였던 아버지는 “60년을 넘게 살았으니 충분하지 않느냐”며 기꺼이 한쪽 신장을 떼어 주겠다고 나섰다. 네 자매 중 손위 언니 셋을 포함한 나머지 가족이 모두 A형인 반면 아버지는 O형이었고 기증 적합성 검사 결과도 문제가 없었다. 간과 신장 등 장기이식은 혈액형이 같거나 적합한 공여자(기증자)로부터 장기를 받아야 장기 손상을 줄일 수 있는데 O형 기증자의 장기는 다른 혈액형을 지닌 이들에게 이식 가능하다. 2017년 1월 17일, 주저 없이 수술대에 오른 아버지의 신장이 딸의 몸 안에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 씨가 두 번째 인생을 선물 받은 날이다. 일상을 되찾은 이 씨는 34세가 될 무렵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식을 치렀다.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자 아이를 갖고 싶은 열망이 커졌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다들 말렸다. 장기이식 환자에게 임신과 출산은 금기에 가까운 도전이다. 일단 이식받은 장기에 대한 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복용하는 약물의 영향으로 임신 자체가 쉽지 않다. 이식 받은 신장이 임신 후에도 안정적으로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이식 후 복용하는 약물 가운데 일부는 태아 기형을 유발할 수 있어 임신을 시도하기 전부터 중단해야 하는데 약물 조절에 실패하면 거부반응이 올 수 있다. 임신성 고혈압, 단백뇨 등 위험 요소도 산적하다. 이 경우 임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식한 신장까지 손상될 수 있다.

윤혜은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가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주치의인 윤혜은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아이를 진정으로 원하는 이 씨 부부의 단호한 의지를 읽었다. 다행히 관리만 잘하면 임신·출산이 가능한 상태였다. 이식 후 생존 출산율은 높지만 이 씨처럼 두 아이 모두 자연 임신과 자연 분만으로 낳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윤 교수는 임신 기간 중 지속된 무증상 세균뇨를 포함해 출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세밀하게 조율했다. 그렇게 2020년 첫째 채이(7)를, 2024년 둘째 은참(3)이를 품에 안았다. 아버지가 준 생명이 딸을 거쳐 두 손주에게로 이어지는 ‘생명의 대물림’이 완성된 것이다.

국내 첫 생체 간이식 주인공인 이지원(왼쪽) 씨가 당시 집도의였던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가운데)와 주치의인 김경모 소아소화기영양과 교수와 함께 30주년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이식 환자들의 성공적인 삶은 이식을 앞둔 환자와 가족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1994년 선천성 담도 폐쇄증에 따른 간경화로 첫돌이 되기도 전에 죽음 앞에 놓였던 이지원(34) 씨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생체 간이식을 통해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 살아 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은 뇌사자 장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돼 병세가 악화되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 뇌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간 손상 위험도 없어 이식 받는 간이 우수하다는 장점을 갖는다. 하지만 뇌사자 간이식에 비해 수술이 매우 까다롭고 합병증 발생 위험이 커 높은 생존율을 담보하기 어렵다고도 알려졌다. 생후 9개월에 아버지가 기증한 간의 일부를 이식받았던 어린 소녀가 성인이 돼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제 몫을 다하고 있는 모습은 국내 장기이식 여정의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됐다. 서울대병원에서 46년 전 신장을 이식받은 배 모 씨는 국내 최장기 생존 기록을 경신 중이다. 이 병원에서 단 한 번의 이식으로 30년 넘게 생존하고 있는 환자만 47명에 달한다. 흔히 이식 장기의 수명을 10~15년으로 생각하던 과거의 편견을 완전히 깨뜨린 결과다. 윤 교수는 “장기기증은 한 환자를 살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한 가정, 한 세대의 시작으로 이어진다”며 “제때 이식만 받으면 30~40년도 거뜬히 살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된 만큼 더 많은 이들이 건강하게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기증 문화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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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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