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5학년 때 ‘공통수학’ 선행하는데 왜 ‘수포자’ 늘까?

2월의 첫날이었던 지난주 일요일(1일) 낮, 서울 마포구의 학원 건물에서 아이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초등학교 2~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한 유명 수학학원의 입학시험이 치러진 날이었습니다.
전국 80여 개 지점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이 학원 시험에는 매년 초등학교 2~3학년 학생 만여 명이 응시합니다. 지난해 11월 첫 입학시험에 9,000여 명, 지난주에 치러진 시험에 5,000여 명이 몰렸습니다.
■ 초등 때부터 선행학습…"5학년에 고등 과정 시작"
이 학원에서는 초등 3학년에 들어가 1년 만에 초등 과정을 마치고, 이후 1년에서 1년 반 동안 중등 수학을 끝냅니다. 5학년부터는 고등 과정을 시작하는 겁니다.
선행 학습을 따라가기 위한 강도 높은 학습으로도 유명합니다. 초등 3학년 자녀를 이 학원에 보냈던 학부모 A씨는 "학원 수업은 2시간인데 이후 문제를 풀고 오답 풀이까지 마쳐야 집에 보내준다. 집에 와서 또 숙제하느라 7시간 넘게 하루 종일 수학만 한 적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학원만 선행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국 170여 개 지점을 둔 초등 대상 또 다른 수학 학원 역시 최근 학부모 설명회에서 '성공적인 입시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며 4학년 봄에 중학교 과정을 시작하고, 5학년 여름에는 '공통수학'을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학부모들은 선행학습의 이유로 '시험'을 꼽습니다. 고등학교 내신과 수능시험에 출제되는 문제를 '잘' 풀어내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 이상의 심화 학습이 필요한데, 이걸 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미리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국회 교육위원회 정을호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전국 16개 고등학교의 지난해 1학기 내신 기출문제를 분석한 결과 수학 과목 370개 문항 가운데 18.4%인 68개 문항이 교육과정을 벗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거주하는 초등학생 학부모 B씨는 "영어는 유치원 때부터 시켰지만 수학은 아직 때가 이르다고 생각해 집에서 학습지 정도만 풀었다. 학원에 갔더니 너무 늦었다고 해서 놀랐다"라고 전했습니다.
A씨 역시 "선행 없이 고등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들었다. 요즘 1년 정도 선행은 예습이지 선행도 아니라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 고등 40% "수학 포기하고파"…이유는 "어려운 수학 문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 수학을 배우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고 싶다"고 호소합니다.

사걱세가 지난달 발표한 학생 6,3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학 교육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중학교 3학년 학생의 32.9%, 고등학교 2학년의 40%는 "나는 수학을 포기하고 싶다"라고 답했습니다.
수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는 학생도 80%에 이르렀습니다.
학생들은 수학을 포기하고 싶은 이유로 '어려운 수학 문제(42.1%)'와 '수학 성적 부진(16.6%)'을 꼽았습니다. 선행 학습을 하는 이유, 또 수학을 포기하고 싶은 이유 모두 시험인 셈입니다.
학교에서도 이런 부작용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변별력', 즉 등수를 나누기 위해 시험을 어렵게 낼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서영준 전국수학교사모임 대표는 개인의 성취를 평가하는 게 아닌 학생들을 줄 세워야 하는 평가 방식 때문에 수학 교육에 왜곡이 생겼다고 지적했습니다.
서 교사는 "시험이 너무 쉬워서 2등급, 3등급이 되면 입시에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만점이 나오는 것은 피해야 한다"며 "혹시 모르니 굉장히 어려운 문제를 몇 개 내게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어려운 한, 두 문제로 인해 등급이 정해지니 학생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그걸 맞추기 위한 대비에 열중하게 됩니다. 서 교사는 그러나 "사실 내용을 보면 학교에서 안 가르쳐도 되는 것들"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손 대기도 힘들 만큼 어려운 문제를 접하며 수학을 아예 포기하는, '수포자'도 늘게 됩니다.
지난해 치러진 2026학년도 수능 수학(확률과통계)에서 주관식 3문제는 오답률이 90%가 넘었습니다. 전체 30문제 가운데 10문제는 절반 이상의 학생이 틀린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김홍임 경기 동패고등학교 수학 교사는 "수학은 위계 학문이라 연속선상에서 놓치는 부분이 있으면 격차가 점차 심해진다"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시험을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아예 포기하고 다른 과목에 시간을 더 쏟으며 차라리 수학을 많이 반영하지 않는 대학을 찾는다"라고 전했습니다.
김 교사는 또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학 교육 과정 자체가 '어렵다'는 점도 꼬집었습니다.
김 교사는 "AP(대학과목 선이수제)를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보는 경우가 있는데, 미적분 등을 따로 대비를 안 해도 이수한다"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대학교 1학년이 배울 내용이 고등학교 과정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입시를 위한 '등수 나누기'에만 열중하는 사이 학생들이 수학 교육을 통해 키워야 하는 추론 능력과 논리적 사고 등을 키울 기회를 잃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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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름 기자 (areu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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