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웃으러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에 간다
편집자주
김도훈 문화평론가가 요즘 대중문화의 '하입(Hype·과도한 열광이나 관심)' 현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분석합니다.

나는 스탕달 신드롬을 믿지 않았다. 스탕달 신드롬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다가 감동에 어지러움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1817년 피렌체에서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보다가 무릎이 꺾이는 경험을 한 뒤에 생겼다. 독자들은 지금 바로 귀도 레니의 그림을 찾아보고 있을 것이다. ‘이게 뭐라고 기절까지 하냐’고 중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스탕달 이후로 많은 사람이 그림 앞에서 울고 떨고 쓰러지는 일이 계속 생겼다.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말이 생긴 연유다.
내가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걸 약간은 믿게 된 건 2002년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마티스의 ‘댄스’를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른 그림을 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스탕달에게 사죄했다. 늙은 양반이 철분이 부족해 하필 그림 앞에서 빈혈을 일으킨 것이 후대에 와전됐다고 확신한 나의 삐딱함을 사죄했다. 마티스의 ‘댄스’를 본 후로 나는 전시를 정말이지 사랑하게 됐다. 공인된 명화 따위 직접 보지 않아도 괜찮다던 순진한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루브르에서 수백 명에 둘러싸여 ‘모나리자’를 볼 이유가 있나? 있다. 모나리자를 일부러 보지 않는 건, 파리 처음 갈 사람이 ‘파리지앵처럼 여행할 생각이니 에펠탑 따위 올라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비슷하다. 무슨 소리. 거기 올라가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는 경험이 얼마나 근사한데. 나는 매번 해외에서 전시를 볼 때마다 한국을 원망했다. 왜 한국인은 안방에서 역사적인 명화를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걸까.

10여 년 만에 내 소망은 이루어졌다. 갑자기 세계적 작가들 전시가 폭발하듯 늘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전시를 보러 가는 건 영화를 보러 가는 것보다 더 힙한 일이 됐다. 내 생각에 그건 2015년 마크 로스코 전시로부터 시작됐다. 25만 명이 전시를 봤다. 홍보도 기가 막혔다. 연예인들을 전시에 초대했다. 그들이 “울었다” 혹은 “울 뻔했다”는 기사들을 내보냈다. 이건 로스코 그림에 얽힌 신화 중 하나다. 그의 그림을 본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는 예술적 도시 전설이다. 한국 전시는 그걸 아예 홍보 포인트로 잡았다. 나도 보러 갔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한 점 500억짜리 추상화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게 왜 마티스 작품과 비슷한 가격에 거래가 되는 건가’를 생각하느라 눈물이 나올 겨를이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다. 그때 눈물을 쥐어짜내며 찍은 셀피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면 평생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로스코 전시에 가서 셀피를 찍은 독자분도 분명히 계실 것이다. ‘난... ㄱ ㅏ 끔... 눈물을 흘린 ㄷ ㅏ’는 표정으로 찍은 그 사진 말이다. 지금은 지웠을 것이다. 부끄러운 순간이 박제돼 어쩔 수 없는 사람도 있다. 2023년 리움에서 열린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에서 그 유명한 ‘바나나’를 먹어 치우고 셀피로 남긴 서울대 미학과 학생이다. 그 학교 그 학과 사람들은 참 재미있다. 카텔란은 일종의 안티 미술가다. 우리가 ‘포스트모던한 현대 아티스트’라 부르는 사람들 중 하나다. 진짜 바나나를 덕트 테이프로 벽에 붙여놓은 이 작품은 이미 여러 사람이 먹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미학과 학생은 늦어도 너무 지루하게 늦었다.

아니다. 나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론 뮤익 전시에서 거대한 해골과 셀피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 여러분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라도 갔다면 찍었을 것이다. 관람객만 53만 명인 블록버스터 히트 전시였다. 나도 리움 카텔란 전시의 바나나 앞에서 셀피를 찍었을 것이다. 떼 먹는 포즈를 취하며 찍었을 것이다. 관람객만 25만 명인 전시였다. 로스코 전시도 25만 명이 관람했다. 모든 것은 로스코에서 시작됐다. 21세기 한국 미술관 블록버스터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더는 영화를 보러 가지 않는다. 대신 전시를 선택한다. 입장료는 더 저렴하고 사진을 찍어 뽐내기도 더 좋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론 뮤익 같은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은 감상용이라기보다는 경험용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한 장으로 자랑할 수 있다. 요즘 미술관은 더는 조용하게 감상하는 장소가 아니다. 줄 서고, 사진 찍고, 인증하고, 굿즈를 사는 곳이다. 가지 않으면 대화에서 밀리는 장소가 됐다. 지난 세기 영화가 했던 일을 미술이 하고 있다.
이제야 그 이름을 꺼내겠다. 데이미언 허스트다.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여는, 이미 예정된 블록버스터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론 뮤익보다 훨씬 유명한 이름이다. 동시에 악명 높은 이름이다. 영국 살던 시절 그의 유명한 포름알데히드에 절인 상어를 봤다. 포스트모던했다. 나는 포스트모던하다는 게 더는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근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볼 때마다 포스트모던하다고 한다. 모든 게 포스트모던해서 더는 뭐가 포스트모던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나는 허스트 전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여러분을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나도 갈 것이다. 절인 상어와 양 사체 앞에서 사진을 찍을 것이다. 인골에 8,601개 다이아몬드를 박은 대표작 ‘신의 사랑을 위하여’가 최근 합성 다이아몬드 인기로 점점 하락 중인 다이아몬드 시세의 영향으로 얼마나 싸졌는가를 계산하며 비웃을 것이다. 현대 미술은 꼭 사랑해야 할 필요는 없다. 미술을 비웃는 것이 현대 미술이니 여러분은 현대 미술을 비웃을 자격이 있다. 얼마나 더 구려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새 마블 영화를 보러 갈 자격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과도 같다. 참고로, 국립현대미술관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 관람료는 8,000원이다. 론 뮤익 전시보다 60% 올랐다. 허스트 작품은 워낙 육중해서 전시 예산 70%가 운송비다. 무거워서 보기도 전에 스탕달 신드롬이 올 것 같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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