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민법의 현재에 대한 최초의 입문서


이 책은 프랑스의 민법, 그 중에서 채권법의 중요한 제도들을 모아서 요령 있게 개관하는 최초의 것이다. 우선 그야말로 어렵게 2016년에 이르러서야 행하여진 채권법 대개정의 경과를 개관한 다음, 구체적으로는 원인(cause)론, 채무불이행과 불법행위에서의 일반조항주의, 계약불이행에 대한 구제책, 계약 해제, 결과채무와 수단채무, 채권자대위권('간접소권'이라고 한다), 채권자취소권('사해소권'이라고 한다), 사용자책임, 물건 관리자의 책임, 부당이득 및 불법원인급여 등을 다룬다. 대체로 각 법제도의 개요가 우리 민법과 ―필요하면 독일 등 다른 나라의 그것과― 대비하면서 서술되고 있다.
우리 채권법에는 채권자대위권(제404조 이하)과 같이 그 입법적 모국을 프랑스로 하는 제도가 있다. 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결과채무와 수단채무의 구분은 프랑스의 학설·판례에서 유래하는데, 주지하는 대로 일찍이 대판 1988.12.13, 85다카1491(집 36(3), 78)은 "의사가 환자에게 부담하는 진료채무는 질병의 치유와 같은 결과를 반드시 달성해야 할 결과채무가 아니라 환자의 치유를 위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현재의 의학 수준에 비추어 필요하고 적절한 진료조치를 다해야 할 책무, 이른바 수단채무라고 보아야 하므로, 진료의 결과를 가지고 바로 진료채무 불이행 사실을 추정할 수는 없다"라고 판시한다(이러한 태도는 대판 2001.11.9, 2001다52568(공보 2002, 17); 대판 2015.10.15, 2015다21295(법고을) 등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개별 법제도보다도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채권법의 핵심을 이루는 채무불이행 및 불법행위에 대한 입법 태도일지도 모른다. 이들에 있어서 프랑스는 애초의 독일민법과는 다르게 이른바 일반조항주의를 취하였고, 이는 우리 민법에서도 그대로이다. 그러나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은 민법학을 수행함에 있어서 극히 중요한 비교법적 작업에 있어서 프랑스가 차지하는 지위일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는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를 포함하는 독일법계가 아니라 독일 그 나라)에 일방적으로 치우쳐 있었다. 이를 상징적으로 말하여 주는 것은 우리 민법학의 제1세대를 대표하는 김증한 선생님이 그 정년 기념 강연에서 우리 민법학의 앞으로의 진로에 대하여 "우리는 요컨대 일본법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우리 자신의 독자적 이론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하는 데 있어서는 역시 독일법학이 가장 손쉬운 의거처가 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셨다는 사실이다(서울대 법학 제26권 2·3호(1985.10), 1면 이하). 그러나 일본민법학이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들의 민법전('법전계수')을 1910년 전후부터 제2차 대전 후까지 독일민법학의 강력한 영향 아래 해석·운용하는 과정('학설계수')을 거쳤다고 해서 우리가 민법학을 행함에 있어서 독일만을 '가장 손쉬운 의거처'로 삼는 데 신중하여야 한다는 것은, 바로 김 선생님이 애써 독일을 본받아 내세운 물권행위의 독자성 및 무인성 이론이 우리 민법의 관련 규정들을 해석함에 적절한지 의문이 많을 뿐만 아니라, 비교법적으로 통상 부정적으로 평가된다는 사실(이에 대하여는 우선 양창수, "한국법에서의 「외국」의 문제 ― 한국민법학 초기의 어떤 모습을 계기로 하여", 민법연구 제9권(2007), 12면 이하, 특히 13면 주 23 참조)로 뒷받침할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근자에 프랑스 민법을 공부하는 학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그 학문적 작업의 성과가 속출하고 있다. 그 맥락에서 이번에 채권법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그 중요 제도를 개관하는 책이 출간된 것은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으나― 역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편 이 책은 '유민총서' 제31권으로 나왔는데, 그 총서를 주관하는 '홍진기법률연구재단'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정면에서 법률가의 작업을 뒷받침함을 내세우는 민간의 법인이라는 것도 특필한 만하다.
양창수 전 대법관·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