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여행자] 리시케시로 숨어 들어가 두어 달을 보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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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매해 겨울을 인도의 보드가야에서 카페 일을 하며 지내다 보면, 이제는 '요가를 하러 갈 때가 되었구나'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매일 아침 출근해 밤에 퇴근하는 긴 하루, 하루의 휴일도 없는 인도인들의 일상을 따라 살아간다. 부처의 발걸음을 따라 수행하러 온 순례자들을 위해 커피와 케이크를 준비하는, 즐겁고도 힘겨운 보드가야의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시작될 즈음이면 나는 간단히 여행 배낭 하나를 꾸린다. 몸과 마음을 수련하기 위해 인도 요가의 성지라 불리는 리시케시로 숨어 들어가 두어 달을 보내는 일은 거의 매해 반복되는 나만의 루틴이다.

어느 날 아침, 리시케시의 요가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고요한 마음으로 혼자 요가원 근처 '마드라스 카페'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식사는 숙소에서 직접 만들어 먹지만, 이날은 오래전부터 '언젠가는 먹어봐야지' 했던 시금치 도사(쌀로 만든 크레페 안에 시금치를 얇게 바른 남인도 음식)가 유난히 당겼다. 오전 요가 수련이 늦게 끝난 데다, 음식을 직접 만들 기력도 조금 모자랐다. 다행히 점심시간 직전이라 식당에는 한 테이블의 커플만 앉아 있었고, 다른 공간은 한산했다.
혼자 앉기 편한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메뉴를 받자마자 시금치 도사를 주문했다. 일반 도사보다 가격이 조금 있어서 과감히 음료는 시키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보통 식전에 음료를 먼저 주문한다.) 싸 온 생수를 조금씩 마시며 목을 축이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푸른 색감의 커다란 삼각형 시금치 도사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도사 안에는 양념한 시금치가 얇게 발려 있었고, 넉넉한 양의 시금치 카레도 함께 나왔다.

바삭한 도사를 손으로 큼지막하게 뜯어 시금치 카레를 감싸 집은 뒤, 삼바(매콤한 야채 수프)에 푹 적시고 코코넛 처트니(코코넛 소스)를 듬뿍 얹어 먹었다. 시금치 카레에는 땅콩이 씹혀 고소함이 더해졌고, 야채를 오래 우려 만든 삼바와 달콤하면서도 살짝 매콤한 코코넛 처트니가 환상적인 조합을 이뤘다. 너무 맛있어서 혼밥의 어색함도,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틈도 없이 국물 한 방울, 바스락 부서지는 도사 한 조각까지 싹싹 긁어 단숨에 다 먹어버렸다.
밀의 주된 생산지인 북인도에서는 로띠나 난 같은 밀가루 빵이 주식이다. 반면 쌀을 주로 재배하는 남인도는 쌀이 주식이다. 쌀가루와 렌틸콩을 갈아 만드는 도사는 남인도에서 시작된 음식이지만, 워낙 인도 전역에서 일상적인 식사로 자리 잡아 리시케시가 위치한 북인도에서도 쉽게 맛볼 수 있다.
도사는 먹는 재미도 있지만 보는 재미까지 있어 자주 생각나는 음식이다. 함께 곁들여 나오는 삼바는 혀가 얼얼해질 정도로 짜릿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한 번에 날아가는 느낌을 주고, 코코넛이 씹히는 처트니는 달콤한 맛 덕분에 단숨에 기분을 좋게 만든다.

도사는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면 더욱 신기하다. 눈앞에서 반죽을 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결국 군침이 돈다. 나는 도사에 마음을 빼앗겨 일주일 동안 매일 반나절씩 남인도 음식을 배우러 다닌 적도 있다. 그만큼 도사는 우리의 눈과 입맛을 동시에 사로잡는다.
미리 발효시킨 쌀가루 반죽을 두껍고 단단한 팬 위에 한 주걱 붓고, 일정한 방향으로 얇게 펴준다. 힘을 너무 주면 반죽에 구멍이 나기 때문에 일정한 압력으로 손목을 돌려가며 고르게 펼쳐야 한다. 그리고 원하는 양념을 넣어 삼각형이나 사각형으로 접거나 길게 돌돌 말아 완성한다. 가장 일반적인 메뉴는 감자 양념을 넣은 마살라 도사이고, 가볍게 먹고 싶다면 플레인 도사도 깔끔하고 좋다.
가끔 도사 전문점에 가면 1미터 크기의 거대한 도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머리와 콧수염을 오일로 정성껏 다듬고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가 위풍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한 손으로 기다란 도사가 담긴 접시를 들고 오던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도사를 손으로 바삭 소리를 내며 뜯어 한 입 베어 무는 순간의 즐거움. 아마 그 맛은 직접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최윤성 '망고 요가 트래블'의 1인 여행 기획자. 국내외 요가 여행을 진행하고, 틈틈이 산티아고 순례길 인솔을 한다. 겨울에는 인도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만들며 생활하는 여행자로 살고 있다.
글 사진 최윤성(여행가)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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